‹ 목록으로 디딤돌이 되기로 했다

2화

아침 식사 자리엔 채린이 없었다. 식탁 위엔 평소와 같은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강섭은 벌써 자리에 앉아 죽을 뜨고 있었고, 하인들은 조용히 시립해 있었다. 이도현은 빈자리를 보고서야, 처음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채린이 없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그의 눈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채린 아가씨는 어디 있지." 그가 시녀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스스로도 그것을 느꼈다.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시녀의 대답이 짧고 사무적이었다. 시녀는 이도현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말을 마쳤다. '몸이 좋지 않다고?' 전생의 기억이 그를 다시 찔렀다. 소설 속에서 이도현은 화가 나면 채린을 방에 가두고 손찌검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다친 그녀는 늘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어제까지의 이도현이라면 아무 의심도 없이 넘겼을 것이다. 숟가락을 들고, 죽 한 그릇을 비우고, 그대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강섭이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아침부터 어디 가느냐." 이강섭이 물었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이강섭은 더 묻지 않았다. 아들의 얼굴에서 무언가 달라진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숟가락을 든 손이 잠시 멈췄을 뿐이었다. 이도현은 식사를 미룬 채 곧장 채린의 방으로 향했다. 걸음이 빨라졌다. 그 자신도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 채린의 방문 앞엔 시녀 하나가 서 있었다. 시녀는 이도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몸을 굳혔다. 문 앞을 가로막듯 반쯤 몸을 틀었다. "도련님, 아가씨는 지금..." 시녀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말끝이 흐려진 채로 시녀는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를 감추려는 태도가 분명했다. "비켜." 이도현이 짧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그 한마디에 시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마치 매질을 예상한 사람처럼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저 반응은.' 이도현은 그 짧은 순간에도 이상함을 느꼈다. 단순한 명령 하나에 이렇게까지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시녀는 더는 막지 못했다. 이도현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채린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소매를 걷어 상처를 살피던 중이었다.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그녀의 팔을 비추고 있었다. 팔목에 남은 자국이 선명했다. 오래된 상처와 얼마 전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함께 있었다. 멍든 자국은 푸르스름했고, 그 위로 겹쳐진 흉터는 이미 하얗게 아물어 있었다. 한 번의 사고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쌓인 흔적이었다. 채린이 놀란 얼굴로 소매를 급히 내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소매를 내리는 동작이 지나치게 다급했다. "공, 공자님..."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도현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발이 문지방을 넘은 채로 멈춰 섰다. 눈은 여전히 방금 본 팔목의 상처에 머물러 있었다. '저것이 내가 한 짓인가.' 머릿속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생의 기억 속 장면들과 지금 눈앞의 상처가 겹쳐졌다. 소설 속 문장으로만 읽었던 장면이었다. '이도현은 화가 나면 채린을 방에 가두고 매질을 했다.' 그저 몇 줄의 서술로 지나갔던 문장이, 지금은 살아 있는 상처로 눈앞에 있었다. "그 상처는..."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별것 아닙니다." 채린이 시선을 피했다. 익숙한 대답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변명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오래 반복해 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무감한 어조였다. '별것 아니라고?' 이도현은 손끝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채린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무릎이 닿는 순간, 채린이 흠칫했다.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채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어깨가 좁아지고, 팔이 안으로 말려들었다. 맞을 것을 예상하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그 반응이, 어떤 말보다 더 명확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이 아이는 지금도 내가 무섭구나.' 슬픔보다 앞선 것은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이도현은 뻗은 손을 그대로 멈췄다. 더 다가가면 채린이 더 크게 움츠러들 것 같았다. "미안하다." 그가 말했다. 채린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공자님?" 그녀가 되물었다. 이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팔목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상처를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겼다. +++ 방을 나온 이도현은 복도에서 시녀장을 붙잡고 물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 빛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채린 아가씨의 상처, 알고 있었는가." "물론입니다, 도련님." 시녀장이 태연히 대답했다. 전혀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오늘 날씨를 묻는 것 같은 질문에 대답하듯 자연스러웠다. "알고도 방치했다는 말이군." "그것이... 도련님께서 그리하신 일이니, 저희가 감히 어찌..." 시녀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곤란한 표정이었지만, 그 곤란함의 이유는 이도현이 기대한 것과 달랐다. 시녀장은 이도현의 잘못을 곤란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도현이 이제 와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을 곤란해하고 있었다. 이도현은 그 대답에서 진짜 충격을 받았다. 시녀장의 표정엔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이도현이 이제 와서 묻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도련님께서 하신 일을 저희가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녀장이 덧붙였다. 마치 당연한 이치를 설명하듯 침착한 어조였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어.' 그것이 슬픔을 넘어 모멸감으로 번졌다. 귀족의 폭력이 당연한 권리로 통용되는 세계. 그 세계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 이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해서 답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시녀장은 이미 자신이 무언가 잘못 대답했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소이를 불러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이는 이도현의 부름을 받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몸이 굳어 있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였다. "내가... 너에게 심하게 대한 적이 많았지." 이도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이의 얼굴이 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그 짧은 순간, 소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답이 자신을 안전하게 할지 계산하는 눈빛이었다. "아, 아닙니다, 도련님.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소이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동작이 지나치게 빨랐다. 몸 전체가 뒤로 살짝 물러나 있었다. 그 다급함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두려움에 익숙해진 거야.' 이도현은 그렇게 판단했다. 소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조차 감추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진심을 말하는 순간 더 큰 화가 돌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괜찮다. 솔직히 말해도." 이도현이 다시 말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습니다, 도련님." 소이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도현은 더는 묻지 않았다. 묻는 것 자체가 소이에게는 또 다른 압박이 될 것 같았다. 이도현은 그날 하루 종일 공작가 곳곳을 돌아다녔다. 하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폈다. 마당을 쓸던 하인은 그를 보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부엌에서 나온 하인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몸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갔다. 훈련장 근처를 지나던 무사들도 그를 보면 시선을 낮추고 걸음을 서둘렀다. 어디를 가든 같았다. 자신을 마주치면 시선을 낮추고, 몸을 움츠렸다. 그 누구도 그를 향해 편안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의 거리를 재는 듯한 몸짓들이었다. '이것이 내가 만든 세계였다.' 그는 정원 한구석에 서서 그렇게 되뇌었다. 정원의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이도현은 지나가는 하인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들 각각의 몸에 남았을 상처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강섭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예전에 훈련장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검을 쥔 자의 힘은, 약한 자를 지키는 데 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칼이 아니라 흉기다." 그날 이강섭은 목검을 든 이도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었다. 어린 이도현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검술 훈련이 지루해서 얼른 끝나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그때는 지루한 잔소리로만 들렸던 말이었다.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나는 지금까지 흉기였다.' 이도현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순간, 속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불쾌함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하루 동안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인공은 한도경이다. 나는 그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소설 속 결말을 알고 있었다. 한도경이 영웅이 되는 이야기였고, 이도현은 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이도현은 그 결말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스스로 그 자리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짓밟혀도 좋다. 그것으로 자신이 만든 상처들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원의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이도현은 눈을 감고 그 결심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겼다. 채린의 팔목에 남은 흉터, 소이의 떨리던 목소리, 시녀장의 태연한 대답.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든 결과였다. 하지만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는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한도경이 이미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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