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저택 전체가 낯선 소음으로 가득했다. 마차 바퀴 소리, 병사들의 군화 소리, 그리고 강만수의 목소리.
평소라면 이 시간에 저택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 정원사가 가지를 치는 소리 정도가 전부였다. 오늘은 달랐다. 마당 가득 마차와 말이 들어차 있었고, 갑옷을 걸친 병사들이 저택 안까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흙 묻은 군화가 대리석 바닥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국가를 위한 헌납이다. 명예로운 일이지."
강만수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마치 훈장을 받으러 가는 사람처럼.
나는 계단 아래, 순희 아주머니의 손에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아주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나를 붙잡은 힘이 너무 세서 손목이 아플 정도였는데, 그 아픔이 오히려 위로가 됐다. 적어도 이 손은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전쟁이 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저택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세금 징수관들이 몇 번이나 다녀갔다. 부엌에서 하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곡물 가격이 올랐다는 이야기, 이웃 영지에서 젊은 남자들을 죄다 데려갔다는 이야기, 국경 쪽 마을이 불탔다는 이야기. 해동왕국이 이웃 국가와 전면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하인들 사이에서도 돌았다. 그때는 그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강만수는 나를 '물자'로 헌납하기로 결정했다.
정확히는, 전장에서 필요한 잡일꾼이나 소모 인력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명목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지만, 실제로는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서류 몇 장, 도장 하나면 끝나는 일. 세금 몇 푼 아끼는 것보다 손쉽게 집안의 짐을 던다는 점에서, 이건 강만수에게 오히려 이득이 되는 거래였다. 나는 그 방식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남아로서 가치 없는 둘째, 그리고 어제 그가 목격한 불길한 힘까지.
어제 일이 스쳤다. 정확히 뭘 봤는지는 모르지만, 강만수의 눈에 서린 공포는 분명했다. 그 공포가 오늘, 이런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안 됩니다, 주인님." 순희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저택 안에서는 절대 내지 않는 목소리였다. "도윤이는 아직 여섯 살입니다. 전장에 보낼 나이가—"
"열 살짜리도 보내는 마당에 여섯이 뭐가 문제냐." 강만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잘라 말했다. 서류를 넘기는 손짓이 그렸다, 지웠다 하듯 무심했다. "이 집안에 도움도 안 되는 놈,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는 거야."
정리라는 말이 정확했다. 그는 나를 아들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눈에서 완전히 치워버릴 수단으로 전쟁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서류에 적힌 내 이름조차 제대로 읽었을지 의심스러웠다.
옆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명단을 확인하며 물었다.
"강도윤, 여섯 살, 맞습니까?"
"맞다." 강만수가 짧게 대답했다. 그 말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병사가 명단에 표시를 하고 다음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내 존재가 이 저택의 장부 위에서 숫자 하나로 정리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름, 나이, 처분. 그게 전부였다.
형 강현민이 계단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갈색 머리, 자기애로 가득한 눈빛. 그의 입가에 걸린 웃음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사라져줬으면 좋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나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때리던 손이,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얌전히 난간을 잡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난간을 톡톡 두드리는 그 여유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 번쯤, 그가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적이 있었나. 없었다. 기대할 이유가 없었다.
괜찮다.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나는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머니가 죽은 순간부터, 아니 태어난 순간부터.
순희 아주머니가 나를 끌어안았다. 크고 두꺼운 팔이 나를 감쌌다. 앞치마에서 부엌 냄새가 났다. 마늘과 기름 냄새, 그리고 땀 냄새. 익숙한 냄새였다. 거친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도윤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람으로 대해준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나는 참았다. 참는 법은 이미 익숙했다.
"…예." 짧은 대답.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주머니는 뭔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자신이 목에 걸고 있던 낡은 나무 목걸이를 풀어 내 손에 쥐여줬다.
"이거라도 가져가라. 별거 아니지만."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부적이었다.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손끝으로 만져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걸 옷 안쪽 깊숙이 넣었다.
병사 하나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시간 됐다. 타라."
순희 아주머니의 손이 내 손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잡고 있던 온기가 사라졌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병사 하나가 나를 마차에 태웠다. 나무로 짜인 낡은 마차, 바닥에는 짚더미가 깔려 있었다. 짚더미에서는 마른 풀 냄새와 오래된 땀 냄새가 섞여 났다. 나 말고도 두 명의 아이가 더 있었다. 열 살쯔음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나보다 조금 더 어린 여자아이. 둘 다 겁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보지도 못했다. 남자아이는 자기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떨었고, 여자아이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말을 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이 마차에 탄 아이들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마차가 출발했다.
덜컹, 덜컹.
바퀴가 돌 위를 지날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창밖으로 저택이 점점 작아졌다. 순희 아주머니가 마당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저택의 담벼락에 가려 사라졌다. 강만수와 강현민은 나오지 않았다. 배웅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창틀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전생의 기억 속, 야근하다 트럭에 치여 죽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도 갑작스러웠다. 이번에도 갑작스러웠다. 다른 점은, 그때는 죽음이 끝이었고 지금은 아직 시작이라는 것뿐이었다.
마차는 사흘을 달려 국경 근처 야영지에 도착한다고 했다. 병사 하나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마차 안에서 셀 수 있는 건 시간뿐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걸 두 번 보면, 세 번째 밤에는 전장 근처에 도착한다는 뜻이었다.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도 헌납된 거야?"
"응." 나는 짧게 대답했다.
"몇 살이야."
"여섯."
남자아이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리네. 나는 형이 대신 가라고 해서 왔어. 우리 형은 이 집안 유일한 아들이거든."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느 집이나 비슷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필요 없는 자식, 대신 죽어도 되는 자식. 그런 자식을 골라내는 방식은 다들 비슷했다.
사흘 뒤, 나는 전장에 서 있을 것이다.
마차가 흙길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섰다. 나무들이 빽빽해지고 빛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뭇가지가 마차 옆면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마차 밖에서 병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 근방에 마물이 나온다던데."
"헛소리 마라. 그런 게 있으면 벌써 정찰대가 처리했겠지."
"그래도 조심하는 게 낫지 않아? 지난달에 이 길로 지나간 상단이 실종됐다는 얘기도 있고."
"상단이야 도적 만났겠지. 이 시국에 그런 게 한둘이냐."
두 병사의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말투였지만, 그 말투 뒤에 깔린 미묘한 긴장은 숨기지 못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짚더미 속으로 몸을 더 파묻었다. 마물이든 뭐든, 지금 나에게는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어차피 죽을 각오로 실려 가는 몸이었다. 마물에게 죽는 것과 전장에서 소모품으로 죽는 것, 그 차이가 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흐느끼는 소리였다. 남자아이가 그 아이의 등을 토닥였지만, 위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창밖을 봤다. 나무들 사이로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마차 안에도 어둠이 찼다. 병사들이 등불을 켰는지, 마차 벽 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스며들었다 사라졌다 했다.
그날 밤, 마차가 급정거했다.
쿠웅.
뭔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