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비가 오면 지붕이 샌다. 3층 창고 방, 내가 배정받은 유일한 공간이다. 원래는 계절 지난 옷가지와 부서진 가구를 쌓아두던 곳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내 방이 되었다. 정확히는 강만수가 "쟤는 저기서 자라"고 한마디 던진 뒤로 그렇게 됐다.
나무 판자 틈으로 빗물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양동이 위치를 옮겼다. 세 개의 양동이. 위치는 늘 조금씩 달랐다. 비가 어느 방향에서 들이치는지에 따라 새는 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나도 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익숙한 일이었다.
똑, 똑, 똑.
빗방울이 양동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소리를 세는 버릇이 있었다. 백을 넘기면 잠이 왔다. 오늘은 마흔셋에서 잠이 깼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올해로 여섯 살이다. 정확히는, 이 몸으로 여섯 해를 살았다는 뜻이다. 진짜 나는 서른두 살까지 서울 어딘가에서 야근을 했었고, 어느 밤 골목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다. 마지막 기억이라고는 편의점 도시락과 팀장의 문자 메시지, 그리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 기억은 한 살 무렵, 어머니가 죽던 날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서지은. 사파이어색 머리를 가진 여자. 나와 같은 색이었다. 그날 나는 요람에 누워 울고 있었고, 어머니는 피를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의 기억이 왜 굳이 그때 터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두 개의 삶을 한 몸에 쌓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른두 살의 기억과 여섯 살의 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의 몸을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특히 이런 집에서는 더 그랬다.
괜찮다. 익숙해졌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김순희 아주머니였다. 밤색 머리를 단자 모양으로 틀어 올린,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걸걸한 사람. 손에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무서웠다. 저 큰 몸에 저 걸걸한 목소리라니, 여섯 살짜리 눈에는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존재였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평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밥 가져왔다. 얼른 먹어."
식은 죽 한 그릇. 나는 말없이 받았다. 죽은 늘 식어 있었다. 따뜻한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굶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이 집에서 삼 년째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필요한 최소한의 말만 했다. 강만수와 강현민 앞에서는 특히 그랬다. 침묵은 내가 스스로 골라 쥔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아이는 실수를 많이 한다. 실수를 많이 하는 아이는 매를 많이 맞는다. 이 집의 산수는 간단했다.
"오늘도 그놈들이 못살게 굴었냐." 순희 아주머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었다. 어제 강현민이 계단에서 내 발을 걸었고, 나는 무릎이 까졌다. 오늘 아침에는 강만수가 지나가면서 괜히 뒤통수를 한 번 쳤다. 별일도 아니었다. 이 집에서는 그게 평범한 하루였다.
그녀는 알면서도 넘어가 주었다. 그게 우리 사이의 규칙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그녀는 못 본 척한다. 그렇게라도 서로 마음을 덜 쓰는 게, 이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래도 뭐 먹기라도 해야지. 얼른 먹어."
그녀가 방을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고 거친 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손길만큼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좀 따뜻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게 창고 방 안에서 식은 죽을 앞에 놓고 받는 손길이라니.
죽을 반쯤 먹었을 때, 손끝이 근질거렸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소매 속에 숨겼다.
회복마법. 이 세계에 떨어진 뒤 알게 된 내 안의 이물질. 정확히 언제부터 이 힘을 인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세 살 무렵, 혼자 놀다가 손가락을 베었을 때였던 것 같다. 상처를 손으로 감싸 쥐었는데, 몇 초 만에 피가 멈추고 살이 붙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 힘이 나타날 때마다 손끝에서 옅은 푸른빛이 돌았다는 것을. 강도윤이라는 이 몸의 머리색과 똑같은 색이었다. 어머니의 머리색이기도 했다. 사파이어색.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물려받은 게 이 색깔과 이 힘이었다.
힘을 숨기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집에서 특별한 건 곧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강만수는 아들이 아들다운 것도 못 견뎌하는 사람이었다. 첫째 현민이 자기와 똑같이 자라주는 것만이 유일한 만족이었고,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그 만족을 방해하는 잉여였다.
강현민은 강만수와 똑같은 갈색 머리였다. 성격도 비슷했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 많았고, 나를 괴롭히는 게 취미인 것처럼 굴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착한 척을 잘했고, 뒤에서는 발을 걸거나 물건을 숨겼다. 어른의 정신을 가진 나는 그 얕은 수를 매번 파악했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여섯 살짜리가 열여섯 살짜리한테 항의해봤자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오히려 내가 거짓말한다고 몰릴 게 뻔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참았다. 참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순희 아주머니가 나가고 나서, 나는 소매를 걷어 손끝을 들여다봤다. 옅은 푸른빛이 손끝에서 아지랑이처럼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지난주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무릎에 얹었다. 상처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그때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다행이다.
그 다행이라는 단어를 나는 얼마나 자주 썼는지 모른다. 이 집에서 살아가는 건 결국 다행인 순간을 하나씩 세어가는 일이었다. 오늘도 안 걸렸다, 다행이다. 오늘도 매를 덜 맞았다, 다행이다. 오늘도 밥을 먹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창틀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함께 불어왔다. 나는 죽 그릇을 옆으로 밀어두고 무릎을 세워 앉았다. 손끝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평소보다 좀 오래 남았다. 아마 아까 순희 아주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게 이상하게 마음을 풀어놓았던 모양이다. 경계가 흐트러졌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 나는 몸이 굳었다. 순희 아주머니가 나가는 소리라고 착각했다. 아니었다.
강만수였다. 대머리가 진행 중인 갈색 머리, 술과 도박으로 얼굴에 핏기가 몰린 사내가 문가에 서 있었다.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고, 걸음걸이가 약간 흔들렸다. 낮술을 한 게 분명했다. 이 시간에 술 마신 사람 특유의, 눈이 반쯤 풀린 얼굴이었다.
"거기서 뭐 하냐."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재빨리 손을 소매 안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늦었다. 손끝의 빛은 이미 그의 시야에 걸려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존댓말. 이 집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문법이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조절하는 데에 온 신경을 썼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손끝이 아직 미약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재수가 없었다. 아니, 재수가 아니라 실수였다. 순희 아주머니가 나가는 소리에 안심하고 손을 너무 오래 들여다본 내 잘못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나는 실수의 원인을 따지고 있었다. 어른의 습관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원인을 분석하는 게 먼저 나왔다. 그게 지금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이 뜨거웠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건 뭐예요, 하고 되물을 수도 없었다. 되묻는 순간 내가 이 힘의 존재를 인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
그의 눈이 내 손끝과 내 얼굴을 번갈아 오갔다. 술에 취해 흐릿하던 눈빛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나쁜 신호였다. 취한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차릴 때는 대체로 안 좋은 일이 뒤따른다는 걸, 나는 지난 삼 년간 몸으로 배웠다.
"너… 지금 이거…"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손목을 쥔 힘이 점점 강해졌다. 아플 정도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소리를 내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것도, 몸으로 배운 것이었다.
빗소리가 창을 두드렸다.
쿵. 쿠쿵.
바람이 지붕을 흔드는 소리까지 겹쳤다. 이 방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흔들리는 건 방이 아니라 내 심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손목을 놓고 뒷걸음질 쳤다. 마치 뭔가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나는 그동안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낯선 얼굴. 지금까지 그가 나를 볼 때 짓던 표정은 무관심이나 짜증이었다. 이건 그것과 전혀 다른 종류였다.
"이 새끼가…"
그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뒷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가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문이 쾅 닫혔다.
쾅.
그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렸다. 창틀에 쌓인 먼지가 살짝 떨렸다.
망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손끝을 다시 소매 안으로 숨겼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목에는 그가 쥐었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자국에 손을 얹었다. 습관처럼, 아니 반사적으로 힘을 흘려보낼까 하다가 멈췄다. 지금 이 상황에서 또 그 빛을 만드는 건 자살행위였다.
삼 년 동안 지켜온 침묵이, 손끝의 작은 빛 하나로 부서지려 하고 있었다. 삼 년. 말을 아끼고, 눈을 아끼고, 존재감을 아껴가며 버텨온 시간이었다. 그 모든 노력이 방금 그 몇 초 사이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강만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짐작이 갔다. 이 세계에는 마법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마법사는 특별한 존재였고, 특별한 존재는 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종류였다. 강만수에게 나는 원래도 잉여였는데, 이제는 잉여를 넘어 '이상한 것'이 되어버렸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더 거세졌다. 나는 양동이 위치를 다시 옮겼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똑, 똑, 똑.
빗물이 새로 옮긴 양동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세지 않았다. 대신 방문 밖에서 들려올지도 모를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강만수가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아래층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정이 나에게 좋은 방향일 리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빗소리 사이로,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