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현재.
전령이 다녀간 지 이틀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답을 정하지 못했다.
식당 문을 열지 못한 채 뒷방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나무 창틀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식탁 위에는 어제 끓여둔 된장국이 그대로 식어 있었다.
손님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국냄비를 다시 데웠다.
'소하와 도현이 나를 지목했다니.'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되씹었다.
전령이 두고 간 서찰에는 두 사람의 이름과 관직만 짧게 적혀 있었을 뿐, 자세한 사정은 나오지 않았다.
성녀 소하, 근위기사단장 도현.
십칠 년 전 내가 밥을 먹이고 이름을 불러주던 그 아이들이 맞나 싶어, 나는 서찰을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혹시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아니면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밥집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문에 '오늘은 쉽니다'라는 종이만 붙여두고 뒷방에 틀어박혔다.
그날 저녁, 다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발굽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마을 어귀부터 흙먼지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러 필의 말이 줄지어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식당 문을 열자, 화려한 예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하얀 성직복에 금실로 수놓인 문양이 가슬가슬했다. 성녀원의 표식이었다.
옷자락 끝에는 은사로 십자 문양이 촘촘히 박혀 있어, 걸을 때마다 은은한 빛이 반사되었다.
그 뒤에는 이 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남자가 갑주를 입고 서 있었다.
갑주 어깨 부분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손잡이에 보석이 박힌 장검이 걸려 있었는데, 그 검 한 자루만으로도 이 마을 밥집 열 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여자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알아챘다.
목소리에 남아 있던 특유의 떨림, 울음 끝에 살짝 올라가는 억양.
십칠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그 습관이 나를 붙잡았다.
"소하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왔어요, 선생님." 소하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녀의 팔이 내 등을 감싸는 순간, 성직복에서 향긋한 향유 냄새가 났다.
예전에는 흙먼지와 땀 냄새만 나던 아이였는데.
뒤에 서 있던 거구의 남자도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도현이... 맞니?"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낮게 깔려 있어서 처음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네, 선생님." 도현이 낮게 대답했다.
십칠 년 만에 마주한 두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소하는 왕국 성녀원의 수장이 된 성녀였고, 도현은 근위기사단을 통솔하는 단장이었다.
두 사람 뒤로는 시종 여럿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시종들은 각자 손에 상자와 서찰을 든 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에 매달려 이 광경을 구경했다.
"저것 좀 봐, 성녀님이잖아." 누군가 수군거렸다.
"저 갑주는 근위기사단장 문양인데." 다른 누군가 속삭였다.
"밥집 아줌마가 저 사람들이랑 무슨 사이지?"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는 그 시선들 속에서 갑자기 내 낡은 옷차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앞치마에는 오늘 아침 국물이 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손끝에는 파를 다듬다 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였다.
소하의 성직복은 한 벌만 해도 이 마을 반년 치 생활비는 되어 보였다.
도현의 갑주에는 왕실 인장이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밥집 주인일 뿐이었다.
'이 아이들과 나 사이에... 이렇게 큰 간극이 생겼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앞치마 끈을 풀어 뒤로 감췄다.
"선생님, 서준 저하께서 위독하세요." 소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멈췄다.
서준.
왕세자 저하의 이름이었다.
"저희 말고는 아무도 저하를 도울 수 없어요." 소하가 매달리듯 말했다.
"성녀원의 치유 마법으로도, 왕실 의술로도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아니면... 방법이 없어요."
소하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현도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갑주가 바닥에 닿으며 철컹, 소리를 냈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구의 남자가 무릎을 꿇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더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반갑고, 고맙고, 대단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내가 밥을 먹여 키운 아이들이 이렇게 되다니.'
그런 생각이 스치는 동시에, 서준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선 무게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도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목을 조여왔다.
도성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과, 다시는 그곳에 발 딛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떠올랐다.
"조금... 생각할 시간을 줘." 내가 겨우 말했다.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와서, 나 스스로도 당황했다.
소하와 도현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마차에 올랐다.
두 사람이 마을 밖으로 떠나는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시종들도 하나둘 말에 올라 뒤를 따랐다.
말발굽 소리가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마차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내 등 뒤에 꽂혀 있는 게 느껴졌지만,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데, 문틈으로 서찰 한 장이 떨어졌다.
방금 도현이 두고 간 것이었다.
봉투에는 낯익은 문양이 찍혀 있었는데, 왕실 인장과는 다른, 좀 더 소박한 무늬였다.
서찰을 펼치자, 낯선 필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현목 대군께서, 조만간 다시 뵙기를 청하십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현목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대군이라니... 왕족이 왜 나를 찾는다는 거지.'
서준의 병세와 이 이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이름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서찰을 손에 쥔 채, 뒷방으로 돌아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식어버린 된장국 냄비가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내일이면 소하와 도현이 다시 올 것이고, 나는 그때까지 답을 정해야 했다.
하지만 서찰 속 낯선 이름 하나가, 내가 정해야 할 답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