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다섯 살, 도둑의 눈

3화

촌장의 집 앞에 이안이 섰다. 새벽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혼자였다. 도현에게는 산에 갈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몰래 나온 길이었다. '거짓말은 최소한으로.' 그것이 이안의 원칙이었다. 완전히 지어낸 말보다 반쪽짜리 진실이 들키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다섯 살의 몸으로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산에는 갈 생각이었다. 촌장을 만난 뒤에. 집 앞 마당에는 낡은 절구와 장작더미가 쌓여 있었다. 문 옆에 걸린 짚신 몇 짝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안은 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다섯 살배기 아이가 촌장을 찾아와 대책을 논하는 광경이 얼마나 기이하게 보일지, 그는 이미 계산을 마친 뒤였다. 그럼에도 걸음을 옮긴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촌장님." 이안이 문 앞에서 불렀다. 안에서 촌장이 나왔다. 그는 이안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밤새 이무기 이야기로 마을 어른들과 술잔을 기울인 듯,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아이가 여긴 왜 왔느냐." 촌장이 물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안이 정중히 답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촌장은 그것을 기특함이 아니라 이질감으로 받아들였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은 이 나이에 흙바닥을 뒹굴며 놀거나, 어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는 것이 전부였다. 이안의 태도는 그 범주에서 지나치게 벗어나 있었다. "말씀? 네가 무슨 말씀을 한다고." 촌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무기 대응책에 대해서요." 이안이 말을 이었다. "강줄기를 따라 매복을 두거나, 야간에 불을 피워 접근을 막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무기는 어두운 시간에 수면 위로 올라온다고 들었습니다. 불빛과 소음을 싫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촌장이 잠시 멍하니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 녀석 보게. 어디서 그런 소릴 주워들었느냐." 촌장이 웃으며 말했다. "다섯 살배기가 이무기 대응책을 논한다니, 마을 어른들이 다 들으면 배꼽을 잡겠구나. 네 아비가 들으면 뭐라 할꼬."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안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허, 진지하다고? 애야, 가서 놀아라. 이런 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촌장이 손을 휘휘 저으며 문을 닫으려 했다. "그리고 이런 얘기는 함부로 입에 담는 게 아니다. 마을에 불안한 소리 퍼뜨려서 좋을 게 없어."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안이 다시 물었다. "매복도, 불도, 이미 관에서 온 사람들이 쓰는 방식일 겁니다. 시험해보는 것에 손해는 없을 텐데요." 촌장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가, 다시 웃음으로 덮였다. 그것은 상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손해라니. 애가 손해라는 말도 아는구나." 촌장이 혀를 찼다. "그런 건 백우단이 알아서 할 것이다. 관에서 사람을 보냈다고 하니, 우리보다 더 잘 알겠지. 너는 걱정 말고 집에 가서 어미 도우거라." '역시나.' 이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으나,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마을의 위계질서 안에서, 다섯 살짜리 아이의 말은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했다. 나이가 지혜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지만, 이 마을에서는 나이가 곧 발언권이었다. 조롱과 무시. 그것이 이안이 얻어낸 유일한 대답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쿵- 이안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발밑의 흙을 내려다보며, 헛되이 낭비한 걸음의 무게를 가늠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예상한 결과였다.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 어귀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손검을 허리에 찬 젊은 남자, 활과 단검 두 자루를 지닌 견인족 여성, 그리고 고령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방금 먼 길을 걸어온 듯 옷자락에 흙먼지가 앉아 있었으나, 걸음걸이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이안이 걸음을 멈췄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구경거리에 앞다투어 나섰다. "관에서 보낸 모험자 파티일세! 백우단이라고 하네!" 촌장이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방금 전까지 이안을 문 앞에서 쫓아냈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반가움으로 들떠 있었다. 이안은 그 무리를 유심히 살폈다. 특히 지팡이를 짚은 노인에게 시선이 갔다. 젊은 남자는 검을 다루는 이의 특징인 곧게 뻗은 등과 굳은 손목을 가지고 있었고, 견인족 여성은 주변을 살피는 눈빛이 사냥꾼처럼 예리했다. 그러나 노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런 육체적 단련과는 다른 종류의 무언가였다. '저 노인, 몸에서 기운이 다르다.' 이안의 마력을 인지하는 눈에, 노인의 몸 주위로 흐르는 기운이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옅은 안개처럼 순환하는 흐름이었다. 젊은 남자와 여성의 몸에서는 그런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노인의 몸에서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천천히 감돌았다. '스킬 【도안】이 반응하고 있다.' 이안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 누구에게서도 이런 흐름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노인이 곽태산이었다. 백우단의 후열 마법사였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관찰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마력을 다루는 존재를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었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웠지만, 시선은 노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 꼬마,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느냐." 곽태산이 이안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보다는 흥미가 섞여 있었다. "어르신 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안이 솔직히 답했다. 순간, 곽태산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마을 아이들을 대할 때 짓던 심드렁한 표정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들어섰다. "...뭐라고 했느냐."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운입니다. 몸을 감싸고 도는 흐름 같은 것이요." 이안이 다시 말했다. "안개처럼 천천히 움직입니다. 다른 두 분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곽태산은 지팡이를 고쳐 쥐며 이안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이 이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늙은 마법사 특유의 신중함이 그의 걸음마다 배어 있었다. "보인다는 게냐. 마력이 눈에 보인다는 게냐." 곽태산이 물었다. "네. 며칠 전부터 그렇게 됐습니다." 이안이 답했다. 주변에 있던 서준혁과 설하늬가 그 대화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 다 처음에는 아이와 노인의 실없는 대화라 여기고 지나치려 했으나, 곽태산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발을 붙였다. "곽 노인장, 왜 그러시오." 서준혁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곽태산이 손을 저었으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이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은 마을 사람들이 이안을 향해 던지던 무시의 시선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이 노인, 뭔가 알고 있어.' 이안은 그렇게 직감했다. 마을 어른들에게서는 얻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조롱이 아니라, 흥미였다. 곽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꼬마야, 이름이 무엇이냐." "이안입니다." "이안이라..." 곽태산은 그 이름을 입안에서 한 번 굴리듯 되뇌었다. "오늘 저녁, 내가 머무는 곳으로 와 보아라. 할 얘기가 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을 사람들 몇몇이 그 광경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어르신이 왜 저 애한테 관심을 보이지."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안이가 또 헛소리를 한 거 아니야." 다른 이가 코웃음쳤다. 방금 전까지 이안을 문전박대했던 촌장도,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표정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이안은 그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시험할 대상이 나타났다.' 스킬 【도안】의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지, 아니면 여전히 잠긴 채로 남을지. 오늘 밤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촌장의 집 앞에서 얻은 씁쓸함은, 어느새 이 노인 앞에서 옅어지고 있었다. 마을 전체가 그를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이 노인 한 사람이, 이안이 그토록 오랫동안 확인하고 싶었던 답을 쥐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가 저물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