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강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새벽부터 소식을 들은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 수가 늘어날수록 걸음은 오히려 느려졌다. 무엇을 보게 될지 짐작하는 이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정호도 그 무리에 섞여 있었고, 이안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뒤따랐다. 도현은 아버지 곁에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안은 그 손을 마주 쥐면서도 시선은 앞을 향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새벽 강가, 사람들의 그림자가 하나둘 늘어서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안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다섯 살배기의 눈이 아니라 성인의 시선으로 목격했다.
강가 진흙 위에 시신 한 구가 놓여 있었다. 몸의 일부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팔 한쪽이 온전치 않았고, 옷자락은 진흙과 무언가 검붉은 것으로 뒤엉켜 있었다.
'왜 이 몸이 이토록 담담한 거지.' 이안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전생의 기억이 이 광경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다섯 살배기 몸의 감정이 원래 무뎌서인지 알 수 없었다.
구역질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정보를 하나씩 받아들이는 자신이 낯설었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무기가 강줄기를 타고 내려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다른 이가 말했다.
"작년에도 소가 두 마리 사라졌었잖아. 그때부터 이상했지."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막았고, 누군가는 아예 등을 돌려 자리를 떴다. 아이들 몇은 어른의 다리 뒤에 숨어 훔쳐보다가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촌장이 헐떡이며 도착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고, 마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지팡이를 짚은 손이 후들거렸고, 숨은 턱까지 차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신 앞에 서서 애써 허리를 곧게 폈다.
"다들 정신 차리게! 시신은 수습하고, 사람들은 강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 촌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방향성이 없었다. 이무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그저 접근을 막으라는 말뿐이었다.
몇몇 장정이 나서서 시신을 천으로 덮었다. 그마저도 손이 떨려 제대로 감싸지 못했다.
"관에는 알렸소?" 이정호가 물었다.
"사람을 보냈네만, 여기까지 오려면 나흘은 걸릴 걸세." 촌장이 한숨을 쉬었다.
"나흘이면... 그동안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소."
"방법이 있나? 우리 마을엔 무인이라 부를 만한 자가 하나도 없네. 곡괭이랑 낫뿐인 사람들이야."
이정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이무기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흘. 그 시간 동안 이무기는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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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낮에 본 광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마을엔 싸울 사람이 없어. 곡괭이랑 낫을 든 농부들뿐이야.'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이무기가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는 몰라도, 사람 몸을 그렇게 훼손할 정도라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관에서 사람이 온다 해도 나흘. 그 나흘 사이에 마을 사람 몇이 더 희생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관에서 보낸 이들이 이무기를 상대할 만한 실력을 갖췄는지도 미지수였다.
'결국 내가 믿을 건 나 자신뿐이야.' 이안은 이불 속에서 눈을 감은 채 그렇게 되뇌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회관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장정들은 몽둥이와 낫, 심지어 부엌칼까지 챙겨 들고 나왔다. 무기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었다.
"애들은 집에 가 있어라." 한 어른이 이안과 도현을 쫓아내듯 말했다.
"아저씨, 이무기가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는 아세요?" 이안이 물었다.
어른들이 이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애가 뭘 안다고 그러니."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이무기 습성 같은 건 몰라도 되니, 얼른 들어가 있어." 다른 이가 손사래를 쳤다.
"물속에서 사는 놈이라 물가에만 안 가면 된다는 소리도 있고, 뭐 뻔한 짐승이겠지." 또 다른 이가 대충 넘겼다.
그 말에 이안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뻔한 짐승이 사람 팔을 그렇게 뜯어놓지는 않는다.
이안은 더 말하지 않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오래 귓가에 남았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책 없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 외에, 이 마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도현이 이안의 옆으로 다가와 작게 물었다. "너는 뭔가 알아?"
"몰라. 그래서 알아보려는 거야." 이안이 짧게 답했다.
도현은 그 대답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잠시 눈을 깜빡였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날부터 이안은 밤마다 뒷산 공터로 나갔다.
마력 순환을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였다. 스킬 【도안】이 잠겨 있는 이상,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마력 순환뿐이었다.
공터에는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달빛도 희미했고, 인적도 없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집중을 도왔다.
눈을 감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희미한 기운을 느꼈다. 그것을 천천히, 정해진 경로를 따라 돌렸다.
처음엔 실 한 가닥처럼 가늘던 기운이 순환을 반복할수록 조금씩 두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었지.' 문득 전생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지쳐 돌아온 어느 날, 아버지는 넥타이를 풀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널 도와주지 않을 때, 스스로 준비하는 놈만이 기회를 잡는 거다."
그때는 그 말이 그저 회사 생활에 지친 아버지의 한탄처럼 들렸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 말은 이제 다른 세계, 다른 삶에서도 유효했다.
밤이 깊을수록 집중은 더 또렷해졌다.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 촌장의 방향 없는 외침, 관에서 오기까지 걸릴 나흘이라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이안을 다그쳤다.
마력 순환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훅-
몸속에서 무언가 뚫리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굳게 막혀 있던 것이 갑자기 통로를 얻은 듯한 감각이었다.
이안은 눈을 떴다.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정확히는, 자신의 몸 주위에 흐르는 옅은 기운이 어렴풋이 시야에 걸리기 시작했다.
손끝을 움직여보니 그 기운도 따라 흔들렸다. 마치 안개 속에서 실 한 줄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거였구나.' 그는 확신했다. 마력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것, 그것이 스킬 도안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산속에는 관찰할 대상이 없었다. 자신 외에는 마력을 다루는 존재가 하나도 없는 마을이었다.
나무도, 풀도, 흙도 살펴보았지만 그 흐릿한 기운은 오직 자신의 몸 주위에서만 보였다. 다른 무언가의 마력을 보고 비교해야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것 같았는데,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건은 반쯤 충족되었으나, 시험할 방법이 없었다. 결핍은 여전히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무기라면 다를까.' 그 생각이 스치자 이안은 스스로도 놀랐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유일한 실마리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마을에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강 하류 쪽에서 가축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무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소식을 전한 이는 숨을 몰아쉬며 회관 앞에서 소리쳤다. "하류 쪽 외양간이 통째로 비었어! 소 세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제까지는 강가에만 접근하지 않으면 되는 줄 알았다. 오늘은 그 경계선마저 무너진 셈이었다.
마을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짐을 싸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촌장을 붙잡고 언제까지 이렇게 앉아만 있을 거냐고 따졌다. 이안은 그 모든 소란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흘은 너무 길어.'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무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속도를 보면, 관에서 오는 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