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훈련소 생활 2년째, 초봄.
새벽 훈련이 끝나고 나면 몸에서 땀이 마르기도 전에 다음 훈련이 시작되는 게 이곳의 일상이었다.
나는 오늘도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목검 오백 번을 휘두르고, 아침 식사 후에는 근력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 한쪽에는 낡은 철제 바벨과 돌덩이를 매단 원판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무거운 원판 두 개를 골라 바벨에 끼웠다.
팔이 후들거릴 때까지 들어 올리고, 다시 내려놓고, 또 들어 올렸다.
다른 훈련생들은 대부분 검술 이론 수업이 있는 시간에 도서관으로 몰려갔다.
나는 그 시간에도 근력 훈련장에 남아 있었다.
교관은 그런 나를 보고 "특이한 놈"이라고 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훈련장 뒤편에는 완만한 언덕이 있었다.
눈이 거의 다 녹아서 흙바닥이 질척거렸고, 그 위로 마른 풀이 듬성듬성 돋아 있었다.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그 언덕에 올라가 앉아 있는 게 요즘 내 유일한 휴식이었다.
그날도 훈련이 끝난 뒤, 나는 손바닥의 굳은살을 만지며 언덕에 올라갔다.
누가 먼저 와 있을 줄은 몰랐다.
하람이 거기 앉아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이 훈련소에서 검술 성적으로 항상 상위권에 드는 남자였다.
집안이 좋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얘기를 싫어했다.
"여기 자리 있어."
하람이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별말 없이 그 옆에 앉았다.
해가 지고 있었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직 남아 있는 눈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너는 왜 그렇게 몸 만드는 데 집착해?"
하람이 불쑥 물었다.
"다른 애들은 검술 이론 공부하는데, 너는 항상 근력 훈련만 하잖아."
나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손바닥을 펼쳐 굳은살을 살펴봤다.
굳은살은 이제 손가락 마디마다 단단하게 박여 있었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내가 입을 열었다.
"나, 원래 이 세계 사람 아니야."
하람이 눈을 크게 떴다.
"뭔 소리야?"
"전생이 있었어."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리를 못 쓰는 몸으로 태어났어. 열여덟? 열아홉 살 됐을 때 죽었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스스로 걸어본 적이 없었어."
하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창밖만 보던 시간이 대부분이었어.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도 익숙해졌고, 도움받는 게 당연한 삶이었어."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여기서 눈을 뜨니까, 다리가 있고, 팔이 있고, 뛸 수 있었어."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게 얼마나 이상한 느낌인지 알아?"
나는 하람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손발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가 펴보는 것만으로도 한참을 그러고 있었던 적도 있어."
"그래서 몸을 쓰는 거야."
내가 덧붙였다.
"계속 쓰고, 계속 단련하고. 이 몸이 진짜라는 걸 확인하려고."
하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옆얼굴에도 붉은 노을빛이 얹혀 있었다.
"...그럼 지금은? 괜찮아?"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내가 대답했다.
"오히려 좋아. 자유로우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뻗어보았다.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이어지는 그 감각이, 이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기했다.
'전생에는 이런 걸 상상도 못 했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팔을 뻗는다는 게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니.'
"그래서 나는 최강이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냥, 이 몸으로 원하는 만큼 움직이고 싶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하게."
하람은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내 손등에, 팔에, 그리고 다시 얼굴로 옮겨갔다.
"...신기하다."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 가지고 있었는데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거든."
"근데 너는 아무것도 없다가 이걸 얻고도, 뭔가를 더 바라지 않네."
"바라는 건 있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조용히 살고 싶어. 아무도 나 신경 안 쓰는 데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하람이 피식 웃었다.
"용사 후보씩이나 되서 그런 소박한 꿈이라니."
"소박한 게 제일 어려운 거야."
내가 대답했다.
하람은 그 말에 잠시 웃음을 멈췄다.
그러곤 다시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럼 나도 소박하게 살아볼까."
그가 말했다.
"근데 나는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천천히 찾으면 돼."
내가 말했다.
"급할 거 없잖아."
그날 밤, 우리는 언덕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훈련장 쪽에서 켜진 화로 불빛이 저 멀리 점처럼 보였다.
"장차 용사로 임관하면 뭘 하고 싶어?"
하람이 물었다.
"작은 집 하나 짓고 싶어."
내가 대답했다.
"마당 있는 집. 텃밭도 있고."
"몇 평쯤?"
하람이 물었다.
"글쎄, 스무 평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크면 청소하기 귀찮잖아."
"용사가 그런 걸 걱정하냐."
하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너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데?"
내가 물었다.
"나는... 서재가 있는 집."
하람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책 좀 쌓아두고, 조용히 읽을 수 있는 곳."
"어울린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언젠가 키울 강아지 이름까지 이야기했다.
"'뭉치'는 어떨까?"
내가 물었다.
"너무 흔해. '방패'가 낫지 않아?"
하람이 웃으며 말했다.
"방패는 개 이름 같지 않은데."
내가 말했다.
"그럼 '눈덩이'는?"
하람이 다시 제안했다.
"딱 지금 이 계절 같잖아. 눈 다 녹아가는 이 언덕처럼."
"그건 좀 낫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개의 이름을 더 주고받았다.
'복덩이', '까망이', '보리'.
누구 것도 확실히 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전생에는 창밖만 보며 지냈던 내가, 여기서는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울컥하게 만들었다.
하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나를 기다렸다.
"내려갈 때 조심해."
그가 말했다.
"밤에는 흙이 미끄러워."
나는 그 말이 별거 아닌 걸 알면서도 오래 기억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반년 후 열리는 공개 서임식에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