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저 없인 안 될걸요

3화

훈련소 생활 2년째, 겨울. 하람의 태도가 이상해진 건 12월 초부터였다. 식사 시간에 말수가 줄었다. 빵을 뜯다가도 손을 멈추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밤늦게 막사를 나가는 일도 잦아졌다. 침상이 비어 있는 걸 발견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 갔다 와?" 내가 물으면 그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산책." 산책이라는 말을 믿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눈 밑에는 그늘이 짙어졌고, 입술은 자주 말라 있었다. 훈련 시간에도 칼을 든 손이 힘없이 늘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교관이 몇 번이나 그를 지적했지만, 하람은 그저 고개만 숙였다. 12월 중순, 나는 그날도 물을 뜨러 나갔다. 밤공기가 살을 벨 듯 차가웠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하얀 김이 눈앞에서 흩어졌다. 우물 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훈련소 뒤뜰에서 낯선 마차 소리를 들었다. 바퀴가 얼어붙은 흙바닥을 긁는 소리였다. 나는 물통을 내려놓고 소리가 난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남작가 문장이 새겨진 마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문장 아래에는 금박으로 된 가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말 두 마리가 콧김을 내뿜으며 발을 굴렀다. 마차 옆에 서 있는 남자는 하람의 아버지였다. 값비싼 모피 코트를 걸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셋째 아들이 이 정도 성적이면 가문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 남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는 화를 억누르는 듯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람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짝! 손바닥이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람의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노력? 상속권도 없는 놈이 노력이란 말을 쓸 자격이 있나!" 남작이 소리쳤다. "두 달 안에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훈련소에서 빼내서 시골 영지로 보낼 거다. 거기서 평민들이랑 밭이나 갈아라." 하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뺨을 만지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붉게 부어오른 자국이 달빛 아래 선명하게 보였다. 남작은 코웃음을 치며 마차에 올랐다. 마차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퀴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마차가 떠난 뒤, 나는 그가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는 걸 지켜보았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한참을 그 자세로 서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물통을 내려놓았다. "...괜찮아?" 하람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봤어?"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어. 다." 내가 짧게 대답했다. 하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발끝으로 흙을 툭툭 찼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져 있었다. "우습지. 귀족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야." "셋째면 다야. 첫째 형이랑 나이 차이가 다섯 살밖에 안 나는데도, 형은 후계자고 나는 그냥 짐짝이야." 그가 자조적으로 덧붙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차가운 돌계단이 엉덩이 밑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부터 나는 밤마다 하람의 검술 훈련을 도왔다. 낮에는 교관에게 배운 기본기를, 밤에는 내가 아는 요령을 알려줬다. 타격 각도, 무게중심 이동, 숨쉬는 박자. "팔꿈치를 너무 세워. 이렇게, 조금만 더 낮춰봐." 내가 그의 팔을 잡아 각도를 잡아주며 말했다. 하람은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가며 검을 휘둘렀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 목덜미까지 적셨다. 추운 날씨에도 그의 셔츠는 금방 축축해졌다. "다시. 한 번 더." 내가 말하면 그는 군말 없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의 손목 힘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주가 지나자 발놀림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람은 생각보다 빨리 배웠다. 원래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두 달 후, 하람의 성적은 중위권까지 올라갔다. 교관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칭찬하는 날도 있었다. 남작은 더 이상 그를 시골로 보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이야." 하람이 훈련장 구석에서 나에게 말했다. 늦은 오후 햇살이 그의 어깨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런 거 처음이야. 누가 나를 위해서 뭘 해주는 거." "별거 아니었어." 내가 대답했다. "아니, 별거야." 하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하나만 말해줄게. 아무한테도 안 한 얘기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버지, 아직도 첫째 형만 아들로 쳐. 나랑 둘째 형은 그냥... 가문에 붙은 짐 같은 존재야." 하람이 낮게 말했다. "둘째 형은 아예 포기하고 술만 마셔. 나는 그렇게 되긴 싫었어." "그래서 여기서라도 뭔가 되고 싶었어. 근데 안 되니까 화가 나서 그랬던 거야." 그가 손톱 밑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매번 두 달, 세 달 시한을 정해놓고 못하면 시골로 보낸다는 말을 들어. 벌써 세 번째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 이후로 하람은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식사 자리에서 먼저 옆에 앉는 일이 많아졌고, 훈련이 끝나면 나를 찾아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비밀을 나눈 사이라는 건, 생각보다 무거운 끈이었다. 나는 그 끈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다. 그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나 역시 그에게 무언가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이었다. 그 비밀을 꺼내는 순간, 우리 사이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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