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3년 전, 4월.
가온 왕국 왕립 훈련소 정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열여섯이었다.
등에 짊어진 짐은 낡은 배낭 하나뿐이었다.
안에는 옷 두 벌과 말린 빵 몇 조각이 들어 있었다.
배낭은 원래 아버지가 쓰던 것이었다.
가죽 끈 한쪽이 끊어져 삼줄로 대충 이어놓은 상태였다.
그마저도 짐을 다 넣으면 어깨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얇았다.
정문까지 오는 길은 걸어서 이틀이 걸렸다.
마차비 삼십 페니를 아끼려고 새벽부터 걸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걸을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그 돈이면 열흘 치 빵을 살 수 있었다.
정문 앞에 늘어선 다른 생도들은 대부분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비단으로 만든 셔츠, 은장식이 달린 검대, 가문의 문장이 박힌 망토.
누군가는 마부가 끄는 마차에서 내려 짐을 하인에게 맡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눈에 띄게 초라했다.
신발 밑창은 이미 반쪽이 떨어져 나가 걸을 때마다 딸그락 소리가 났다.
사람들 눈을 피하려고 자꾸 고개를 숙였다.
"평민 냄새가 진동하네."
누군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냄새가 나긴 할 거야. 이틀을 씻지도 못했는데.'
속으로만 그렇게 대꾸했다.
훈련소 배정은 성적과 출신에 따라 나뉘었다.
접수처 서기가 명단을 훑어보며 내 이름 옆에 뭔가를 적었다.
"3동."
서기가 그렇게만 말하고는 다음 사람을 불렀다.
나는 가장 낡은 3동 막사에 배정받았다.
2층 침대,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 창틀에 낀 곰팡이.
창문 하나는 아예 유리 대신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다.
방 안에는 이미 한 명이 짐을 풀고 있었다.
그가 윤하람이었다.
체격이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소년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평범한 훈련복이었지만, 짐 속에서 은수저가 삐죽 나와 있었다.
귀족 출신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낡은 방에 배정된 게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다.
"너도 여기 배정됐어?"
하람이 나를 보며 물었다.
표정에 경계심이 없었다.
"...응."
내가 짧게 대답했다.
"난 윤하람이야. 남작가 셋째 아들."
그가 손을 내밀었다.
"셋째라서 상속권도 없고, 그냥 여기 처박혀 있는 거야."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이 생각보다 거칠었다.
귀족치고는 검을 제법 잡아본 손이었다.
"나는..."
이름을 말하려다 잠깐 멈췄다.
평민 이름을 말하면 또 뭐라고 할까 싶어서였다.
"그냥 말해도 돼."
하람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다 똑같은 생도잖아."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름을 말했고, 하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짐 정리를 계속했다.
첫 주는 조용히 지나갔다.
하람은 아침마다 늦잠을 자는 대신, 밤에는 촛불을 켜놓고 검술 교본을 읽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그 불빛을 보며 잠들곤 했다.
둘째 주부터 문제가 생겼다.
훈련장에서 평민 출신 생도들은 항상 가장 무거운 목검을 배정받았다.
귀족 생도들이 쓰는 목검보다 두 배는 무거운 것들이었다.
검술 교관은 우리를 부를 때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렀다.
"7번, 다시 해."
교관이 소리쳤다.
7번은 나였다.
나는 목검을 다시 쥐고 자세를 잡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바닥에는 이미 물집이 두 개나 잡혀 있었다.
"7번, 자세가 그게 뭐야."
교관이 목검으로 내 다리를 툭 쳤다.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지만 겨우 버텼다.
다른 생도들이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러다 팔 부러지겠네."
누군가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나는 열두 번을 더 넘어졌다.
그때마다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날 밤, 막사로 돌아와 팔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을 때 하람이 다가왔다.
"많이 아파?"
그가 물었다.
"...괜찮아."
내가 대답했다.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하람이 내 팔을 살펴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붓기 심한데. 잠깐 기다려."
그는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이거 발라. 내가 여분으로 챙긴 거야."
귀족 자제들만 쓰는 고급 소염제였다.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은은한 허브 향이 나는, 평민은 구경도 못 해볼 물건이었다.
"이거... 비싼 거 아니야?"
내가 물었다.
"어차피 집에서 챙겨준 거라 상관없어."
하람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르면 금방 나을 거야."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연고를 받았다.
"...고마워."
"당연한 걸 뭘."
하람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여기서 3년은 같이 지낼 텐데, 서로 도와야지."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구분 없이,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동등하게 대해준 순간이었다.
연고를 바르는 손끝이 화끈거렸지만, 그보다 가슴 쪽이 더 뜨거웠다.
나는 그날 밤, 얼음주머니 대신 연고를 팔에 바르며 생각했다.
'이 녀석이라면 믿을 수 있을지도 몰라.'
'3년, 어쩌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창틀 밖으로 달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하람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숨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이 훈련소가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로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