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왕도 중앙 모험가 길드, 3층 관제실.
벽면을 가득 채운 배송 수신 마도구들이 일제히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던전 관제 담당관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진짜야?"
"검증 마도구가 자동으로 인증했어요. 조작 불가능한 영상입니다."
"미노타우로스 준보스급을 맨손 일격으로."
관제실 안이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누군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군가는 화면 앞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뒤편에서는 벌써 서류를 뒤적이며 F등급 인형사의 이름을 찾는 손길이 바빴다.
"이런 영상이 나오면 항상 조작이거나 특수 개체였는데."
"아뇨, 이건 다릅니다. 저 밑에 뜬 인증 코드 보이시죠. 저건 실시간 배송 코드예요. 편집이 들어갈 시간 자체가 없습니다."
"그럼 진짜라는 거네."
"진짜입니다."
한 담당관이 통신구를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분인지 두려움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되지 않는 떨림이었다.
"길드장님께 바로 연결해."
"지금 접견 중이신데."
"이건 접견보다 우선입니다. 지금 바로."
통신구 너머에서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조차 무겁게 느껴질 만큼, 관제실 안의 공기는 이미 평소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시각, 길드장 접견실.
오현석은 창가에 서서 왕도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60대 초반의 남성, 은발에 가까운 백발을 짧게 다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항상 절제되어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문 인물이었다.
접견 중이던 상인 조합장이 뭔가 말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오현석의 귀에는 절반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구름의 그림자, 지붕 위를 나는 새의 궤적, 그런 것들을 눈으로 좇으며 상인의 말을 흘려듣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문이 두드려졌다.
노크 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급했다.
"길드장님."
"들어와."
상인 조합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접견 중에 이런 식으로 끼어드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부관의 얼굴을 본 순간, 조합장도 입을 다물었다. 부관의 표정에는 평소의 사무적인 침착함이 없었다.
부관이 통신 마도구를 내밀었다.
"칠흑의 미궁에서 배송된 영상입니다. 지금 왕도 전역 길드에 동시 전파되고 있습니다."
오현석은 통신구를 받아 들었다. 조합장에게 짧게 눈짓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소."
조합장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오현석의 눈빛을 보고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영상이 재생됐다.
어둠 속의 동굴. 붉은 눈. 그리고 검은 머리의 소녀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맨손으로 붙잡는 장면.
오현석의 눈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의 시선은 소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강력한 주먹질을 보았다. 그런데 오현석은 그 뒤편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의 손을 보고 있었다.
손끝의 움직임.
그가 무언가를 조립하다 만 흔적.
오현석은 화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 그 부분만 다시 확인했다. 소녀가 뿔을 붙잡는 순간에도, 미노타우로스가 뒤로 밀려나는 순간에도, 화면 뒤편의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직 손끝만이 작게, 아주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실을 조율하듯이.
"이 인형."
오현석이 낮게 말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검증팀 보고에 따르면 자동인형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자동인형 기술로는 이 정도 출력이 불가능합니다."
"수치는."
"미노타우로스 준보스급의 방어 내구도를 단 일격에 초과했습니다. 통상적인 자동인형 최고 출력의 세 배 이상입니다."
오현석의 눈썹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세 배."
"예."
"저 남자는 누구지."
"확인 중입니다. 신원 등록으로는 이도현. 등급은 F. 직업 인형사."
"F등급."
오현석이 그 단어를 되뇌었다.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았지만, 부관은 그 짧은 되뇜 속에서 어떤 무게를 느꼈다. 오현석이 헛되이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오랫동안 곁에서 봐온 부관은 알고 있었다.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F등급 인형사가 이런 자동인형을 만들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조작이거나 착오일 가능성이."
"조작이 아니야."
오현석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검증 마도구는 조작 불가능한 물건이다. 자네도 알잖나."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오현석은 다시 영상을 돌려봤다.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붙잡은 손. 단 한 번의 주먹. 그리고 다시 재생을 멈추고, 소녀의 눈동자를 확대했다.
무표정.
하지만 그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은 오직 한 사람, 등을 돌리고 앉은 남자였다.
오현석은 그 화면을 한동안 응시했다. 소녀의 시선이 향하는 각도, 목의 기울임, 어깨의 방향까지도 하나같이 남자를 향해 정렬되어 있었다. 우연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정밀했다.
"저 각도를 봐라."
"각도 말씀이십니까."
"소녀의 시선, 목, 어깨. 전부 저 남자를 향해 있다. 전투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아. 이건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자세가 아니다."
부관이 화면을 다시 살폈다. 그제야 그 정렬이 눈에 들어오는 듯 얼굴이 굳었다.
"복종 관계."
오현석이 중얼거렸다.
"단순한 소환수가 아니야. 절대적인 복종을 하는 인형이다. 저런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직인이 왕도에 있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어."
"등록 기록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도현이라는 이름은 삼 년 전 F등급으로 등록된 이후 별다른 활동 기록이 없습니다. 의뢰 수행 실적도 미미하고, 승급 심사 신청 자체도 없었습니다."
"삼 년째 F등급인데, 아무도 이걸 몰랐다는 건가."
"등급 심사는 표준화된 시험으로 진행됩니다. 인형사의 경우 표준 시험 항목에 전투용 자동인형 실전 평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생산성과 정교함을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오현석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전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군."
부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현석은 통신구를 손끝으로 몇 번 두드렸다. 손끝이 통신구 표면을 두드릴 때마다 낮은 마도구 울림이 접견실에 잔잔하게 퍼졌다.
"F등급으로 낙인찍힌 직인이 이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은 하나야."
"뭡니까."
"등급 심사 체계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냉기가 섞였다.
"이런 인재를 놓치고 있었다는 건 길드의 실책이다. 게다가."
그가 다시 화면 속 자동인형을 바라봤다.
"이건 개인의 전력 수준이 아니야. 국가 단위 전략 자원이다."
부관이 침을 삼켰다.
"국가 단위, 라고 하시면."
"자동인형 기술이 이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게 상용화되면 던전 공략 방식 자체가 바뀐다. 인력이 아니라 인형으로 던전을 소모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인명 피해를 줄이면서 심층부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길드나 귀족가에서 먼저 접촉할 수도."
"움직이시겠습니까."
"당장은 아니야."
오현석이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영상이 이미 전역에 배송됐어. 이건 나만 아는 정보가 아니게 됐다는 뜻이다. 이 정보를 다른 자들도 이미 손에 넣었을 거야."
"다른 자들이라면."
오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창밖 저편, 왕도의 지붕들 너머를 향했다. 상단, 귀족가, 타 길드, 심지어 왕실까지도 이미 이 영상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이 굳어질수록 그의 눈빛은 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섣부르게 움직이면 오히려 저 인형사를 놓친다."
오현석이 조용히 덧붙였다.
"F등급이라는 낙인이 그를 감춰줬던 방패였다면, 이제 그 방패는 사라졌어. 사방에서 눈독을 들일 거다. 상단은 자동인형 기술을 원할 거고, 귀족가는 전투 전력을 원할 거고, 왕실은 그 둘 다를 원하겠지."
"그럼 우리는."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하지만 놓치지도 않는다."
오현석이 통신구를 부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대신 부관에게 다른 지시를 내렸다.
"칠흑의 미궁 관리부에 연락해. 지금 그 던전 10층에서 나오는 모든 인원, 특히 그 인형사가 나오면 즉시 나에게 보고하라고."
"길드 소속으로 접근할까요, 아니면."
"접근은 아직 하지 마라. 보고만 받는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파는지, 전부 기록해."
"감시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감시가 아니라 관찰이다. 그가 위험을 느끼면 곧바로 몸을 숨길 인물이야. 저 정도의 은둔 실력자가 삼 년 동안 F등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성격을 보여주는 증거다."
"알겠습니다."
부관이 나가고, 접견실에는 오현석만 남았다.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창밖에서 들려오던 왕도의 소음마저 한 걸음 물러난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통신구 화면을 다시 켰다.
영상 속 검은 머리 소녀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붙잡는 장면에서 화면을 멈췄다.
오현석은 그 정지된 화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소녀의 무표정한 눈동자,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붙잡은 손가락 하나하나의 힘, 그리고 화면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 남자의 실루엣.
그가 손가락 끝으로 화면 속 남자의 형체를 살짝 짚었다.
"F등급이라."
그가 낮게 웃었다.
웃음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차가웠다.
"세상이 곧 흥미로워지겠군."
그의 시선이 창밖, 왕도 저편, 던전이 있는 방향으로 고정됐다.
바람이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커튼 자락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잦아들었다. 오현석은 그 흔들림을 눈으로 좇으며, 통신구 화면 속 정지된 남자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이도현."
그가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낯선 이름이 접견실의 공기 속으로 조용히 퍼져나갔다.
멀리, 왕도의 지붕들 너머 어딘가에서, 같은 이름이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도 이미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었다. 오현석은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창밖의 구름이 던전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