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칠흑의 미궁, 10층.
공기가 무거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습기와 곰팡이, 오래된 뼈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벽을 타고 흐르는 검은 물줄기가 희미한 마석 불빛을 반사하며 번뜩였다. 그 물줄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벽의 갈라진 틈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미끄러운 이끼가 밟혔다.
이도현은 등에 짊어진 커다란 공구 가방을 다시 한번 고쳐 멨다. 가방 안에서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딸그락.
작은 소리였지만 좁은 통로 안에서는 크게 울렸다.
"또 그 소리야."
강태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적염아의 리더, A랭크 검사. 붉은 갑주에 검붉은 대검을 짊어진 그는 이도현을 보는 눈빛에 노골적인 짜증이 담겨 있었다. 갑주의 어깨판에는 이미 몇 개의 흠집이 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베어냈는지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인형사 나부랭이가 무슨 짐을 그렇게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이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파티원들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유하린이 힐러 지팡이를 꽉 쥔 채 뒤를 살폈다. 그녀의 손끝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팡이 끝의 마석은 절반쯤 빛을 잃은 상태였다. 오정민의 지팡이 끝에서 마력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마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보스 방까지 얼마나 남았지."
강태호가 물었다.
"세 구역."
오정민이 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체력은."
"셋 다 30퍼센트 아래."
강태호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이도현에게 향했다. 그 시선에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버릴지,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눈빛이었다.
"넌 뭐 했어. 여기까지 오는데 딜 한 번을 안 넣었잖아."
"제 직업은 전투용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다."
강태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버프도 못 걸고, 딜도 못 넣고, 힐도 못 하는 인형사가 왜 A랭크 파티에 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가."
이도현은 눈을 내리깔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강태호가 원하는 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통로는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 벽을 따라 늘어선 오래된 부조가 마석 불빛에 언뜻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문양이었다. 입이 벌어진 채 굳어 있는 그 부조들이 마치 무언가를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하린이 발걸음을 멈췄다.
"저기……"
"뭔데."
"아니에요."
그녀는 다시 걸었다. 뭔가 말하려다 삼킨 얼굴이었다.
이도현은 그녀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지쳐 보인다고 여길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도현은 그 안에 섞인 다른 결의 감정을 읽었다. 미안함. 그리고 두려움. 두 개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지면이 흔들렸다.
낮은 울림. 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 유하린이 숨을 멈췄다.
"온다."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두 개, 세 개, 다섯 개 켜졌다. 미노타우로스 계열의 변종. A랭크 던전 10층 수호 몬스터 무리였다. 눈들은 하나같이 사람 머리 높이보다 높은 곳에 떠 있었다. 놈들의 체구가 얼마나 큰지 그것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콰앙—
멀리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놈들 중 하나가 벽을 들이받은 것 같았다.
강태호가 검을 뽑았다.
칼날이 마석 불빛을 받아 붉게 번뜩였다.
"후퇴한다."
"지금요?"
오정민이 물었다. 목소리에 당황이 섞여 있었다.
"싸울 체력이 없어. 여기서 밀리면 전멸이다."
강태호의 눈이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파티원들의 체력, 몬스터의 숫자, 후퇴로의 거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도현.
그 시선이 멈춘 곳에서 무언가가 결정되었다.
"인형사."
"네."
"넌 여기서 시간을 좀 벌어라."
이도현은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어렵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버리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강태호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갑주가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차피 딜도 못 넣는 놈이 하나 있으면 뭐하나. 저놈들 시선 좀 끌어주면 그게 네가 이 파티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공헌이야."
말투에는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당연한 결정을 내렸다는 투였다.
유하린이 잠깐 이도현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이 움직였다.
"저……"
하지만 소리는 그 이상 나오지 않았다. 강태호의 등이 이미 저만치 앞서 있었다. 그녀는 결국 입을 다물고 몸을 돌렸다. 발걸음이 느렸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려는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정민은 아예 시선을 피했다. 지팡이를 고쳐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하나, 둘, 셋.
금세 사라졌다.
어둠 속에 남은 것은 이도현과, 다섯 개의 붉은 눈이었다.
낮은 숨소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몬스터들의 발굽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규칙적인 소리였다. 쿵. 쿵. 쿵. 땅이 그 박자에 맞춰 떨렸다.
이도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그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처음 이 파티에 합류했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결말이었다. A랭크 파티에서 인형사라는 직업은 애초에 환영받는 자리가 아니었다. 전투에서 아무런 화력을 내지 못하는 직업. 버프도, 힐도, 딜도 애매한 직업.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낄 자리는, 정말로 궁지에 몰렸을 때 미끼가 되는 것 정도였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이 조금 서늘했다.
두려움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이도현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손끝이 바닥의 냉기를 느꼈다.
돌바닥. 습기. 오래된 뼈 냄새.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런데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 순간 절망했을 것이다. 구조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이었다. 여기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뒤는 이미 끊긴 다리였고, 앞에는 다섯 마리의 변종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도현의 눈은 오히려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낮게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절망이 아니었다.
"쓸 수 있겠어."
등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퍼를 여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안에서 쇠붙이, 마석, 실, 톱니바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씩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딸그락, 딸그락. 지금까지 모아온 것들이었다. 아무도 쓸모없다고 여겼던 잡동사니들.
낡은 태엽. 부러진 검의 손잡이. 실이 다 풀린 인형의 관절. 녹슨 나사못들. 그리고 마력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작은 마석 조각들.
강태호가 보았다면 쓰레기라고 불렀을 물건들이었다.
붉은 눈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굽 소리가 이제는 벽을 타고 진동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놈들의 숨소리가 들렸다. 거친 콧숨. 짐승 특유의 습기 찬 숨결.
이도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기대였다.
바닥에 늘어놓은 재료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그의 눈에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누구도 본 적 없는 계산. 이 잡동사니들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전생에도 이런 재료로는 시작 못 해봤는데."
그가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울렸다.
그의 눈동자 안쪽에서, 아무도 본 적 없는 빛이 켜지고 있었다.
붉은 눈 다섯 개가 이제 완전한 형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몸통, 두 개의 뒤틀린 뿔, 근육으로 뒤덮인 팔뚝. 그것들이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운 채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놈이 콧김을 내뿜었다. 뜨거운 숨결이 이도현의 얼굴에 닿았다.
이도현은 손끝으로 바닥에 흩어진 톱니바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자, 그럼."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선 몬스터가 포효했다.
땅이 흔들렸다.
이도현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