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붉은 눈들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다섯 개의 빛이 동굴 안쪽 어둠 속에서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간격도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움직임의 방향은 하나였다. 이쪽이었다.
이도현은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를 수 없었다. 손끝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모든 게 어긋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했던 손놀림이었다. 프라모델의 관절 하나를 깎아낼 때도, 서보모터의 배선 하나를 이을 때도, 그는 언제나 이렇게 숨을 죽였다.
그의 손이 가방 속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톱니바퀴.
마석 조각.
은사(銀絲).
세계수 뿌리에서 채취한 영목 파편.
지금까지 던전에서 주워 모은, 아무도 값어치를 몰라준 것들이었다. 파티원들은 늘 물었다. 그런 걸 뭐 하러 챙기냐고. 무게만 늘어난다고. 이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는 확신,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동굴 안의 공기는 차가웠다. 습기를 머금은 돌 냄새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서늘함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었다.
마음속으로 문장을 외웠다.
【지고의 조형】.
다른 사람들은 그를 단순히 '인형을 고치는 직업'이라 여겼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스킬은 재료의 본질을 읽고, 그것을 원하는 형태로 재구성하는 능력이었다. 단순한 수리가 아니었다. 창조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전생에서 피규어 원형사로, 로봇공학 연구자로 살았던 경험이 이 스킬 안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발화했다. 밤새 원형을 다듬던 손끝의 감각. 서보모터의 토크값을 계산하던 머릿속의 습관. 그 모든 것이 이 세계로 넘어와, 마력이라는 낯선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었다.
손끝에서 빛이 번졌다.
옅은 청백색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를 따라 흐르며, 마치 혈관 속에 별빛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웅—
낮은 진동이 공기를 갈랐다.
바닥에 흩어진 재료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톱니바퀴가 궤도를 그리며 떠올랐다. 하나, 둘, 셋. 크기 순서대로 정렬하며 허공에 원을 그렸다. 은사가 실타래처럼 풀리며 골격을 이루었다. 가늘고 질긴 선들이 서로 얽히고 풀리며, 마치 거미가 집을 짓듯 뼈대의 윤곽을 완성해나갔다. 영목 파편이 뼈대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세계수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나뭇조각이었다. 그 기운이 은사를 타고 퍼지며, 골격 전체에 미약한 생명력을 흘려보냈다.
붉은 눈들이 걸음을 멈췄다.
낯선 빛에 경계하는 듯했다. 다섯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중 하나가 아주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시간을 벌어준다고 했지."
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떨림은 없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럼 벌어야지."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골격에 마력 전도사 근육을 이식했다. 이것은 단순한 마력 회로가 아니었다. 전생의 지식과 이 세계의 마법 체계를 뒤섞어 새롭게 설계한 구조였다. 근육은 신경섬유처럼 골격 사이를 타고 흘렀다. 관절 하나하나에 유연성을 부여했다.
무릎 관절부터.
어깨 관절로.
손목까지.
각 부위마다 미세하게 다른 회로를 그려 넣었다. 무릎은 충격을 견뎌야 했다. 어깨는 회전 범위가 넓어야 했다. 손목은 무엇보다 정교해야 했다. 전생에서 로봇의 관절 설계를 고민하던 밤들이 이 순간, 이 손끝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었다.
소금기 같은 마력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젖은 쇠붙이 냄새.
오래된 나무 냄새.
익숙한 냄새들이었다. 던전에서 몇 번이고 맡아본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사이로, 낯선 냄새가 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짐승의 숨결.
거칠고, 습하고, 비릿한.
이도현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들었다.
다섯 개의 붉은 눈 중 하나가 눈에 띄게 커져 있었다.
선두의 미노타우로스 변종이었다. 다른 넷보다 몸집이 배는 컸다. 어깨 근육이 부풀어 있었고, 뿔 끝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던전 10층의 실질적 지배자, 준보스급 개체였다. 파티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이고 경계했던 존재였다.
녀석이 발굽을 굴렀다.
돌바닥이 떨렸다.
진동이 발끝을 타고 올라와 무릎을 지나쳤다.
이도현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이미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손가락 관절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가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조금만."
그가 말했다.
"조금만 더."
골격의 가슴 부위에 마지막 부품을 끼워 넣었다. 고대 마석. 지금까지 던전을 돌며 은밀히 수집해온 최상급 마석이었다. 파티원들은 그것을 그냥 '값나가는 잡템'으로 여겼다. 던전을 나서면 팔아치울 수 있는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도현은 처음부터 다른 용도를 알고 있었다.
엔진.
이 인형의 심장이 될 것이었다.
마석의 표면은 매끄러웠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서늘했다. 그 서늘함 속에 응축된 마력이 느껴졌다.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을 잠들어 있던 힘이었다.
마석이 골격 중심에 자리 잡는 순간, 빛이 한 번 강하게 번쩍였다.
동굴 벽이 순간적으로 새하얗게 물들었다.
미노타우로스가 포효했다.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벽에 붙은 이끼가 진동으로 떨어졌다.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도현은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무릎이 돌바닥에 닿는 순간 통증이 스쳤다. 그러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이 달려오고 있었다.
발굽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돌바닥을 딛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근육이 팽창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하나로 뒤섞여 귓속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그 소리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아니, 심장 쪽이 오히려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소리가 먼저 도착하고, 심장이 그것을 따라가는.
이도현은 골격의 마지막 봉합을 서둘렀다.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력 회로 하나를 잘못 연결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무너질 것이었다. 은사 한 가닥이 어긋나는 순간 골격 전체가 흩어질 수도 있었다.
집중.
집중해야 했다.
"조금만."
다시 중얼거렸다.
미노타우로스의 거리가 절반으로 줄었다.
거대한 두 발이 돌바닥을 찍어누를 때마다 동굴 전체가 울렸다. 콧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붉은 눈동자 안쪽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이도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을 골격에서 떼지 않았다. 어깨 관절에 마지막 실을 감았다. 실을 감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여전히 정교했다. 두려움이 손끝의 냉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냉기가 손의 정확함을 흐트러뜨리진 않았다.
손끝에서 빛이 퍼져나갔다. 골격 전체가 은은한 광채로 뒤덮였다.
거의 다 됐다.
미노타우로스가 뿔을 낮췄다.
돌진 자세.
앞다리가 뒤로 밀리며 근육이 팽창했다. 발굽이 돌바닥을 파고들었다. 그 자세만으로도 다음 순간 무엇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녀석의 그림자가 동굴 벽을 뒤덮었다. 그 거대한 그림자가 이도현의 등 위로 겹쳐지는 순간, 골격의 눈꺼풀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웅—
낮은 진동이 다시 한번 공기를 갈랐다.
이번엔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무거운 소리였다. 마석이 완전히 각성하려는 조짐이었다.
미노타우로스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골격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관절이 접히는 소리조차 없었다. 은사와 톱니바퀴, 영목과 마석이 하나로 얽혀 이루어낸 그 손이, 마치 처음부터 살아 있었던 것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움켜쥐고 있었다.
그림자가 완전히 이도현을 덮었다.
뿔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