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쿠구구궁!
놈의 두 번째 공격이 바닥을 갈랐다.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마치 지진 조기경보 문자보다 더 성의 없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간신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지만, 잘려나간 오른쪽 눈 때문에 거리 감각이 미친 듯이 흐트러졌다.
시야 절반이 사라진 채로 거리를 재는 건, 마치 한쪽 렌즈가 깨진 안경을 쓰고 배달 오토바이를 모는 기분이었다. 뭐 이런 비유가 지금 떠오르나 싶지만, 정신을 붙잡으려면 이런 실없는 생각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이도훈, 뒤로 빠져!"
차설아가 지팡이를 들며 소리쳤다.
목소리에 눈물이 섞여 있었지만,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법사로서의 프로 의식이 그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지팡이 끝에서 마력이 응축되는 소리가, 마치 정수기 냉수 버튼을 누를 때 나는 그 웅- 소리처럼 낮게 울렸다.
화염구가 연달아 적명자를 향해 날아갔다.
펑! 펑! 펑!
하지만 놈은 화염구 세 발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왔다.
세 발이나 맞고도 저 여유란. 프랜차이즈 매장 사장님이 손님 컴플레인 세 번 받고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그 내공이랑 비슷한 건가 싶었다. 아니, 이 상황에서 그런 비유가 왜 떠오르는 건데.
[욥기 41:26, 칼로 칠지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리워야단 얘기가 왜 자꾸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겠다. 지금 눈앞의 저 놈이 딱 그 짝이니까.
성경에 나온 괴물 스펙시트를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중이라니, 이거 신학 공부 헛하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웃을 상황은 아닌데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
원작에서 이 시점의 강철은 절망 속에서 각성했다.
감정이 극한까지 몰아붙여지면서, 잠들어 있던 진짜 힘을 끌어냈다.
번쩍이는 빛, 갑자기 자라나는 검, 배경음악까지 알아서 깔리는 그런 각성 씬. 독자로서 읽을 땐 참 멋있었다.
하지만 나는 강철이 아니다. 나는 원작 지식만 있는 모브였다.
각성 같은 건 나한테 없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뜨거운 힘이 솟구치는 그런 이벤트, 그런 건 나한테 안 일어난다. 확인해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엔 그냥 통증과 피 냄새만 가득했다.
대신 나한테는 다른 게 있었다.
원작 지식, 그리고 원작에서 이 던전을 클리어한 다른 파티의 전투 기록.
웹소설에는 사이드 스토리가 있었다. 강철의 파티가 아닌 다른 S급 파티가 이 던전을 정찰했다가 절반이 죽고 후퇴한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는 본편 연재분 사이에 끼워 넣은 별책 부록 같은 거였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저거 왜 넣었냐, 분량 늘리기냐" 하는 댓글이 달렸던 그 챕터.
그 챕터를 정독한 게 지금 이렇게 쓸모 있을 줄, 그때는 몰랐다. 세상에 쓸데없는 덕질은 없다더니.
그 에피소드에서, 적명자의 진짜 약점이 딱 한 번 언급됐다.
놈은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존재다.
그런데 그 기운은 역설적으로, 놈 자신의 재생력도 봉인한다.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면, 놈도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다.
죽음을 다루는 놈이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뭔가 그리스 비극 같은 설정이었다. 근데 그리스 비극이었으면 벌써 다 뒤지고 나만 눈 하나 잃은 채로 살아있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문제는 그 치명상을 입힐 방법이었다.
"다인, 왼쪽 다리! 왼쪽 다리 뒤쪽에 약점이 있어요!"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정확했다.
"뭐라고?!"
"믿어요, 제발!"
다인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갈색 피부에 상처가 잔뜩 나 있었지만, 눈빛만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 눈빛이 참, 이 판국에도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검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에 핏자국이 굳어가고 있었는데도, 그 손아귀는 여전히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알겄어. 믿어볼게."
사투리 억양이 섞인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말처럼 들렸다.
다인이 몸을 던지며 놈의 왼쪽 다리 뒤쪽으로 검을 꽂았다.
서걱!
놈이 처음으로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다.
GYAAAAKSSHH...
알 수 없는 언어, 알 수 없는 음역대. 하지만 그게 고통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통역기 없이도 이해가 되는 유일한 만국공통어, 비명.
"됐다!"
윤소아가 소리치며 뒤이어 검을 휘둘렀다.
원작에서는 이 약점이 강철의 손에 의해서만 발견됐다.
지금은 원작 지식을 아는 내 입을 통해서, 다인과 윤소아의 검을 통해서 발견되고 있었다.
원작 주인공이 아니라 모브인 내가, 원작 주인공의 대사를 훔쳐서 다른 사람들 손에 쥐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표절이라고 하면 좀 억울한데, 어쨌든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차설아가 마지막 화염구를 그 상처에 정확히 조준해서 날렸다.
펑!
놈의 몸이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지팡이를 쥔 차설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력을 너무 많이 끌어썼는지 입술 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조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프로는 프로였다.
"이도훈, 아직 남았어?!"
차설아가 물었다.
"조금만 더요! 놈은 상처가 나면 재생을 못 해요!"
말하는 사이, 놈이 마지막 발악처럼 무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방향이, 이번엔 다인 쪽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삐- 삐- 삐-.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난 건 아니지만, 뇌가 그렇게 반응했다.
원작에도 없는 전개였다.
놈이 죽음을 앞두고 발악하는 장면은, 사실 원작 어디에도 정확히 묘사되지 않았다.
왜냐면 원작에서 이 파티는 결국 다 죽었으니까. 놈이 죽는 걸 본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부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없고 리뷰도 없는 맛집, 아니 맛집이 아니라 지뢰밭을 걷는 거였다.
지금부터는 원작 지식이 없는 영역이었다.
"안 돼!"
다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다인을 밀치고 그 자리에 대신 섰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튀어나갔다. 이게 몸이 기억하는 반사 신경이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라는 건지 헷갈렸다.
서걱.
소리가 또 났다.
이번엔 왼쪽 다리였다.
뜨거운 통증이 다시 폭발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두 번째로 몸의 일부를 잃는 순간이었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또 그 구절이 생각났다.
한 번은 눈, 한 번은 다리. 대체 무슨 시리즈냐, 이거.
다음엔 뭘 잃을 차례인가 싶어서 이 와중에도 정신머리 없이 헤아려보게 됐다. 팔? 아니면 목숨? 후자는 좀 곤란한데.
하지만 그 대가로, 놈의 자세가 흔들렸다.
"지금이야!"
윤소아가 마지막 힘을 다해 놈의 목덜미로 검을 꽂았다.
차설아가 최후의 마법을 쏟아부었다.
다인이 이를 악물고 검을 다시 놈의 다리 상처에 박아넣었다.
세 사람의 공격이 거의 동시에 터졌다. 마치 잘 짜인 합주처럼, 박자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연습 한 번 안 해본 사이인데도 이렇게 맞는 게 신기했다.
ZKKKSHHHHHHH...
놈의 형체가 서서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몸을 이루던 검은 기운이 마치 뜨거운 라면 국물에서 올라오는 김처럼 위로 흩어졌다. 다만 그 김에서는 국물 냄새 대신 죽음의 냄새가 났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적명자가 정확히 그렇게, 스스로 불타듯 사라졌다.
성경 구절 하나 인용할 때마다 이렇게 정확하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니, 이거 성경이 스포일러 모음집이었던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놈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도훈!"
세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세 개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데도, 이상하게 각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구분됐다. 차설아의 울먹임, 다인의 사투리 억양, 윤소아의 차분한 듯 떨리는 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하나 확실히 든 생각이 있었다.
파티는 전멸하지 않았다.
원작을 뒤집었다.
원작 속 그 사이드 스토리, 절반이 죽고 후퇴했다던 그 파티와는 다르게, 우리는 살았다.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대가로 오른쪽 눈과 왼쪽 다리를 잃었다.
싼 값에 결말을 바꿨다고 말하기엔, 신체 부위 두 개가 걸린 청구서는 좀 과했다.
"이도훈, 너 대체 어떻게 알았어? 약점, 그거 어떻게 안 거야?"
차설아가 울면서 물었다.
대답할 힘이 없었다. 아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제가 이 던전 원작을 읽어서 압니다" 라고 말할 순 없잖은가. 그런 말을 하면 다음 순서는 정신병원행일 것이다.
"...감이라고 하면, 이제 안 믿을 거죠?"
"당연히 안 믿지, 이 미친놈아!"
다인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사투리 억양도 잊은 채 터져나온 그 목소리에,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너, 처음부터 이 던전을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윤소아의 목소리가 유난히 조용했다.
다른 두 사람과 달리, 그 목소리엔 울음기보다 의심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정확한 질문이었다. 너무 정확해서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느낀 건,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손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할 새도 없이, 시야가 완전히 새까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