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국왕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이틀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별궁에 갇힌 채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조차 감시병의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방문은 밖에서 잠겼고, 식사는 시녀가 아니라 갑옷 입은 병사가 가져다줬다. 이게 뭔가, 대접이 아주 후해지셨네. 냉소라도 부리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소림이 몰래 전해준 소식으로는 대신들 사이에서도 이헌의 조작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했다. "몇몇 어르신들이 증거가 너무 매끄럽다고, 이상하다고 하셨답니다." 소림은 숨을 죽이며 속삭였고, 나는 그 말에 잠깐 희망이라는 걸 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결국 여론에 눌려버렸다. 성녀를 괴롭힌 악녀, 그게 이미 온 궁 안에 퍼진 나에 대한 소문이었다. 하루 만에 소문이 성벽을 넘어 저잣거리까지 퍼졌다니, 이헌이 손을 쓴 게 아니라면 이 나라 백성들 소문 퍼뜨리는 재주가 국가기밀급이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판결이 내려지던 날, 나는 다시 알현실로 불려갔다. 걸음마다 병사들이 양옆에 붙어 걸었고, 그 발소리가 마치 관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번엔 재현과 다은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지난번엔 억지로라도 데려다놓고 겁을 줬으면서, 이번엔 왜 안 보이는 거지? 아이들이 어딘가에 계속 잡혀 있다는 뜻일 테니까.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선우은유, 국가 전복을 도모하고 성녀를 박해한 죄로..." 국왕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고,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그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사형까지는 아니겠지, 라는 희망적인 계산과 동시에 이헌이 절대 나를 이대로 살려두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동시에 들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을 채우니, 이게 균형이라는 건지 그냥 정신이 나가고 있다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변경의 청하 백작가로 유배를 보내고, 그 가문 외아들과 즉시 혼약을 맺도록 하겠다."
청하 백작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변경의 하급귀족 가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굳이 그 가문과 혼약을 맺으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악의는 명백했다. 나를 완전히 궁에서 지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변경으로 던져버리겠다는 거였다. 유배로 끝날 줄 알았는데 혼약까지 얹어주시네, 이건 무슨 사은품이라도 되는 건가. 속으로는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바닥만 보고 있었다.
"전하, 부디..." 나는 마지막으로 항변을 시도했지만 국왕의 표정은 이미 결정을 내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눈빛에서 어떤 흔들림도 찾을 수 없었다. "판결은 이미 확정되었다. 준비하는 대로 즉시 떠나도록 해라." 그 말과 함께 병사들이 다가와 내 양옆에 섰다. 재판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뭔가 더 말하려 입을 열었지만, 병사의 손이 어깨를 짓누르는 순간 그 말은 목구멍 안으로 다시 삼켜졌다.
별궁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국왕을 따로 뵐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온갖 계획이 떠올랐다가 무너졌다. 서고에서 매복이라도 할까, 시녀 옷이라도 훔쳐 입고 몰래 들어갈까. 이대로 순순히 떠날 수는 없었다. 재현과 다은의 인질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변경으로 쫓겨가는 것 자체보다 그게 더 두려웠다. 유배지가 어디든, 얼마나 춥고 척박하든 상관없었다. 그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확신 하나만 있으면 됐다.
다행히 소림이 국왕의 개인 서고에서 짧게나마 알현할 기회를 만들어줬다. "영애님, 시간이 많지 않으실 겁니다. 전하께서 잠시 서고에 들르실 때, 그 틈을 타야 해요." 소림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유배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조심스럽게 서고 문을 두드렸다. 손이 떨렸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전하, 잠시 말씀 올릴 것이 있습니다." 국왕은 서류를 훑어보다가 귀찮은 듯 시선을 들었는데, 그 눈빛에서 이미 나에 대한 관심이 다 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벌레 한 마리가 기어들어온 걸 보는 눈빛이었다.
"무슨 일이냐." 짧고 건조한 물음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으며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골랐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배에 힘을 줬다. "제 동생들의 처우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재현과 다은은 이 일과 아무 관계가 없는 아이들입니다. 부디 그 아이들만큼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국왕이 손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네 동생들의 안전은 네가 얼마나 조용히 지내는지에 달려 있다." 국왕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청하 백작가에서 얌전히 지내고, 다시는 이런 소란을 만들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무사할 것이다." 그 말이 사실상 협박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인질로 잡힌 아이들의 안전을 조건으로 완전한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거였다. 이게 무슨 자비를 베푸는 척하는 협박인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그런 표정을 짓는 순간 다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이를 악물었다.
"전하, 그렇다면 최소한 이헌 태자 전하께서 조작한 증거에 대해서는..." 나는 마지막 시도로 말을 꺼냈지만, 국왕이 짜증스레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 하나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끝난 재판이다. 더 이상의 언급은 용납하지 않겠다." 그 말투에서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걸 느꼈다. 방금까지 남아있던 희망이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서고를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담판은 완전히 실패했다.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이헌의 죄는 여전히 은폐된 채였으며, 재현과 다은의 인질 상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침묵과 순종만이 그 아이들의 목숨줄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렇게 무력할 수가 있나.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 이렇게 발버둥쳤던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복도를 걷다가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밤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떠 있었고, 그걸 보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대로 순순히 무너지지는 않겠다고. 청하 백작가로 가서도 나는 계속해서 이헌의 죄를 파헤칠 방법을 찾을 거라고. 별빛이 참 무심하게 반짝였다. 저 별들은 내가 어떤 꼴을 당하든 신경도 안 쓰겠지. 그런데 그 다짐이 얼마나 허망한 건지, 나는 청하 백작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별궁으로 돌아가는 길, 소림이 조용히 다가와 내 손에 뭔가를 쥐어줬다. 작게 접힌 종이였다. 손바닥 위에 놓인 그 종이가 어찌나 작던지, 나는 순간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쥐고 있었다. "영애님, 이건 오늘 낮에 재현 도련님이 몰래 전해온 겁니다." 소림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 주변을 살피는 그 눈빛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종이를 펼쳐봤는데, 짧은 글씨로 적힌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글씨는 급하게 쓴 듯 삐뚤빼뚤했다. 오늘 밤, 서쪽 정원에서 뵙고 싶습니다. 다은도 함께요.
심장이 다시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감시가 이렇게 심한 와중에 어떻게 만나자는 건지, 그리고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재현이 무슨 방법을 찾은 걸까. 아니면 그냥 무모하게 저지르려는 걸까. 온갖 불안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미 그 종이를 소매 깊숙이 밀어넣고 있었다. 아이들을 만날 기회라면,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이게 함정이라 할지라도, 나는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