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토요일, 이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트럭 한 대로 충분했다. 서연이의 짐은 대부분 옷과 책, 그리고 커다란 곰돌이 인형 하나였다. 상자를 나르던 아버지가 그 인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게 제일 무겁다, 서연아. 서연이는 대답 대신 인형을 낚아채듯 안았다.
나는 그 인형을 보는 순간 조금 웃음이 났다. 학교에서 보는 서연이와는 너무 다른 물건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새무심한 얼굴로 스쳐 지나가던 애가, 저렇게 낡고 귀 한쪽이 뜯어진 곰돌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뭘 봐. 서연이가 인형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눈을 흘겼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목덜미가 조금 뜨거워졌다.
짐을 다 옮기고 나서, 아버지와 박지현 씨는 저녁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갔다. 마늘 냄새가 벌써부터 집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연이의 짐을 내 방으로 옮기는 걸 도와야 했다. 상자를 두 개씩 나눠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서연이는 별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 침묵이 오히려 신경 쓰였다.
방문을 열고 상자를 들여놓으면서, 나는 오늘 밤 이후로 벌어질 일에 대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상자를 책상 옆에 내려놓고, 옷장 문을 열어 옷걸이 자리를 만들어주고, 책을 어디에 꽂을지 물어보고. 그렇게 할 일을 하나씩 만들어내면서 그 순간을 미루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연이가 방 안을 둘러보다가 걸음을 멈추는 순간, 그 순간이 결국 찾아왔다.
그녀의 시선이 방 한가운데 놓인 침대에 고정되었다. 눈동자가 침대에서 나에게로, 다시 침대로 왔다 갔다 했다. 저기, 하준아.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데. 나는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해두지 못한 채로 그 질문을 마주했다. 손끝이 순간 차가워졌다. 어, 그게. 나는 더듬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새집 구할 때까지만이고, 나는 소파에서 자면 돼. 방은 네가 써.
서연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방 안을 다시 살폈다. 책상 하나, 옷장 하나, 그리고 그 침대 하나. 방이 넓지 않아서 다른 잠자리를 마련할 공간도 없었다. 벽을 따라 눈으로 재보는 듯한 서연이의 시선을 나는 못 본 척했다. 소파는 거실에 있었는데, 크기가 작아서 다리를 다 펴기도 힘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밥상 위에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서연이가 좋아한다던 멸치볶음이 올라와 있었다. 박지현 씨가 신경 써서 차린 게 티가 나는 상이었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물었다. 방은 잘 정리했니. 서연이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침대가 하나밖에 없던데요. 그 말에 박지현 씨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버지도 순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아, 그게. 원래 계획은 침대를 하나 더 들이는 거였는데, 방이 좁아서 그게 힘들더라고.
그럼 어떻게 해요. 서연이가 순진하게 물었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으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묻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질문의 무게를 그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소파에서 잘게. 나는 서둘러 말했다. 밥그릇을 내려다보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어른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안 돼, 소파는 너무 좁아.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자세로 자야 하잖아. 너 예전에 캠핑 갔을 때도 목 돌아가서 며칠 고생했잖니.
박지현 씨도 거들었다. 며칠만이라도 접이식 침대를 하나 사는 게 어떨까요. 마트에 가면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고 하고 싶었지만, 오늘 밤은 당장 잘 곳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으로 급하게 찾아봤지만, 당일 배송이 가능한 물건은 없었다. 근처 마트도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다. 결국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야 했다.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하루만 참아. 내일 당장 사러 가자.
식사가 끝나고, 나는 거실 소파에 이불을 깔았다. 이불장에서 제일 두꺼운 이불을 꺼내 소파 위에 펼치는데, 길이가 애매하게 모자랐다. 서연이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몇 번 돌아보았다. 문 앞에 서서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소파에 몸을 눕혔다. 다리가 소파 끝을 넘어가서 발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였다. 무릎을 접어봐도, 옆으로 누워봐도 어딘가 불편했다. 거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침대가 하나였다는 사실, 서연이의 파란 눈, 그리고 앞으로 이 집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까지.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는지 모른다. 시계를 확인하려고 눈을 떴을 때, 거실은 완전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때, 새벽 두 시쯤, 방문이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거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를 따라갔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서연이가 잠옷 차림으로 문틈에 서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녀의 실루엣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하준아.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 혼자서는 잠을 잘 못 자. 원래부터 그랬어. 엄마랑 같이 자거나, 아니면 누가 곁에 있어야 잠이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엄마도 아빠랑 자잖아. 나 혼자 저 방에 있으니까 너무 무섭고 답답해.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평소 학교에서 보던 새무심한 얼굴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소파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다시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 내가 물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서연이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만 같이 자면 안 될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방 안 어둠 속에서 그녀의 파란 눈이 유난히 또렷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