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이도현은 몸을 낮춘 채 좌우로 시선을 나눴다.
좁은 통로.
양쪽으로 늘어선 철제 우리.
쇠 비린내와 깃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좌측 닭이 먼저 부리를 세웠다.
붉은 눈이 형광등 빛에 번뜩였다.
이도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부리가 허공을 스쳤다.
동시에 팔을 뻗어 우측 닭의 목을 잡았다.
퍼억.
한 마리가 늘어졌다.
[적안혈계 처치. 경험치 240 획득.]
[연속 처치 보너스 발동. 콤보 3단계.]
콤보라니.
이거 배틀넷 게임인가.
이도현이 웃음을 참았다.
손에 묻은 핏기를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좌측 닭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도현은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그대로 목을 눌렀다.
퍼억.
[적안혈계 처치. 경험치 480 획득.]
[연속 처치 보너스 발동. 콤보 4단계.]
480.
숫자가 미친 듯이 불어난다.
이도현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전생의 게임 폐인 시절, 이런 감각을 알았다.
숫자가 오르는 걸 보면 도파민이 터진다.
이거 완전 노가다 게임인데.
제대로 걸렸다.
옆 우리에서 닭 두 마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이도현은 곧바로 자세를 낮췄다.
왼발로 하나를 걷어차고, 오른손으로 다른 하나의 목을 낚아챘다.
퍼억.
[적안혈계 처치. 경험치 960 획득.]
[연속 처치 보너스 발동. 콤보 5단계.]
960.
계속 두 배씩 뛰고 있었다.
이도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거 계속 두 배로 가는 거면.
끝까지 안 놓치면 얼마까지 가는 거야.
발밑에 쓰러진 닭을 걷어차며 옆으로 이동했다.
아직 우리 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닭들이 남아 있었다.
두 번째로 걷어찬 닭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도현은 놓치지 않고 목을 그대로 눌러 부러뜨렸다.
퍼억.
[적안혈계 처치. 경험치 1920 획득.]
[연속 처치 보너스 발동. 콤보 6단계.]
[학도 1급 → 학도 2급 승급.]
귓가에 알림이 울렸다.
벌써.
이도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뭔가 달라진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다리가 가볍고, 팔에 힘이 더 붙은 것 같았다.
닭이 계속 우리에서 튀어나왔다.
세 마리, 다섯 마리, 이제는 우리 자체가 텅 비어가고 있었다.
이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한 마리씩, 정확히 목을 노려 처치했다.
퍼억.
퍼억.
퍼억.
[콤보 7단계. 경험치 3840 획득.]
[콤보 8단계. 경험치 7680 획득.]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뛰었다.
이도현의 이마에 땀이 배었다.
숨이 가빠졌다.
허벅지가 뻐근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건 대박이다.
[학도 2급 → 학도 3급 승급.]
[학도 3급 → 학도 4급 승급.]
연속으로 알림이 터졌다.
이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초급이라 좌절했었는데.
이 정도면 판이 완전히 달라진다.
닭이 마지막 한 마리 남았을 때, 이도현은 잠시 멈춰 상태창을 확인했다.
[초급 현사 시스템]
[현재 등급: 학도 4급]
[콤보 보너스 유지 조건: 30초 이내 연속 처치]
30초라니.
타이머까지 있었네.
지금까지 몇 초나 지났는지 셀 수 없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귓속까지 울렸다.
마지막 닭이 도망치듯 우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도현이 그 뒤를 쫓았다.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철창이 어깨를 긁고 지나갔다.
숨은 이미 턱까지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놓치면 콤보가 끊긴다.
놓칠 수 없지.
이도현이 우리 안으로 몸을 던졌다.
퍼억.
[적안혈계 처치. 경험치 15360 획득.]
[콤보 최대치 달성. 도살장 클리어.]
[학도 4급 → 학도 5급 승급.]
이도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깃털 몇 개가 어깨 위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입가엔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학도 1급에서 5급까지.
하루도 안 걸렸다.
미친 효율이다.
이도현은 손등으로 땀을 닦으며 상태창을 다시 열었다.
[학도 5급]
[근력 소폭 상승. 지속력 소폭 상승.]
숫자로만 봐선 감이 안 왔다.
하지만 몸으로는 확실히 느껴졌다.
아까보다 숨이 덜 찬다.
이 정도면 강태오도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게 됐다.
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털었다.
발밑에 늘어진 닭들을 내려다보다 피식 웃었다.
이 짓거리를 계속하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그때 통로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타박, 타박.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도현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숨을 고르며 통로 쪽을 바라봤다.
야, 신입.
소문 들었어.
강태오의 목소리였다.
여유로운 걸음, 팔짱 낀 자세.
말투는 여전히 사람을 깔보는 투였다.
이도현은 대답 없이 그를 훑어봤다.
뒤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 서 있었다.
체격이 좋고, 눈빛이 매서웠다.
팔뚝에 불거진 힘줄이 심상치 않았다.
박강호였다.
강태오가 턱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이쪽은 박강호.
너보다 먼저 여기 들어온 놈이야.
박강호는 아무 말 없이 이도현을 바라봤다.
눈빛이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그 시선엔 웃음기라곤 없었다.
이도현의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