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닭 잡던 손에 검이 깃들다

2화

종소리가 그친 뒤, 청명문 대전 앞마당에 모든 제자가 모였다. 잡역 제자부터 내원 제자까지, 서열대로 줄을 섰다. 줄 맨 앞엔 화려한 옷을 걸친 내원 제자들이 섰고, 그 뒤로 외원, 그 뒤로 잡역이 늘어섰다. 이도현은 맨 뒤, 맨 끝에 섰다. 앞줄 등만 보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눈에 안 띄는 자리가 제일 편했다. 장로 한 명이 단상에 올랐다. 주름진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발밑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장로가 입을 열기 전, 침묵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균열이 대륙 세 곳에서 동시에 관측되었다. 장로가 낮게 말했다. 마수의 기운이 새어 나온다는 보고가 있다. 각 종파는 대비하라는 상부의 명이다. 웅성거림이 번졌다. 마수라니. 전설 속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내원 제자 하나가 옆 사람에게 뭐라고 속닥거렸다. 또 다른 하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잡역 제자들 사이에서도 낮은 소리가 오갔다. 이도현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전생 기억엔 이런 사건이 없었다. 당연했다. 여긴 지구가 아니니까. 시스템도 있고, 마수도 있고, 하늘에 균열도 생기는 세상이니까. 지구식 상식은 여기서 반쪽짜리였다. 다만 감이 왔다. 이런 사건은 한 번으로 안 끝난다. 앞으로 계속 커진다. 그리고 커지는 사건 옆에는 항상 기회가 붙어 있었다. 전생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그거였다. 혼란이 클수록, 그 틈을 파고드는 놈이 크게 먹는다. 해산. 장로의 말에 줄이 흩어졌다. 각자 자기 처소로, 혹은 배정받은 일터로 걸음을 옮겼다. 이도현은 그 흐름에서 슬쩍 빠져나와 방향을 틀었다. 곧장 도살장 관리소로 향했다. 청명문 외원으로 가는 진입로, 그 앞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최정성. 도살장 관리자였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눈빛이 매서웠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넘기던 손이 이도현을 보자 잠깐 멈췄다. 뭐 하러 왔냐. 최정성이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잡일이라도 시켜주십쇼. 이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잡역이 잡일 하겠다는 게 뭐 대단한 소리라고. 최정성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서류철을 넘기며 다시 눈을 내렸다. 이 정도면 됐다는 얼굴이었다. 요즘 위에서 시끄럽지 않습니까. 하늘이 저 지경인데. 이도현이 슬쩍 운을 뗐다. 최정성의 손이 멈췄다. 서류를 넘기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그대로 굳었다.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방금 대전에서 들었죠. 이도현이 무심히 답했다. 최정성이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봤다. 눈썹이 한쪽만 살짝 올라갔다. 그냥 그런 거 말고. 균열이 세 곳이라던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이도현이 덧붙였다. 최정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장로도 몇 곳인지 확답을 안 줬는데.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도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느낌이라. 최정성이 팔짱을 꼈다. 애 하나가 헛소리를 하는 건지, 뭔가 아는 건지. 최정성은 판단이 서지 않는 얼굴이었다. 의자를 뒤로 살짝 젖히고 이도현을 위아래로 훑었다. 잡역치고는 눈빛이 좀 다르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딱 그 정도였다. 일단 그런 촉이 있으면 어디 써 봐. 최정성이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도살장 초입 청소, 할 사람 없냐. 제가 하겠습니다. 이도현이 손을 들었다. 주저 없는 대답이었다. 다른 잡역 제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뒤쪽에서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 자리 왜 자원해. 도살장 청소는 아무도 안 가려는 자리였다. 안에 뭐가 있는지 몰라 무섭다는 이유였다. 피 냄새 나는 곳에 들어가서 뭘 하려는 건지,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누구도 대놓고 묻진 않았다. 좋아, 너한테 맡긴다. 최정성이 열쇠를 던졌다. 이도현이 그걸 받았다. 열쇠는 묵직했다. 손바닥에 감기는 무게가 예상보다 무거웠다. 먼저 들어가는 거네. 남들보다. 남들이 꺼리는 곳에 먼저 발을 들이는 것. 그게 이번 판에서 이도현이 노리는 자리였다. 위험한 곳일수록 아무도 안 본 것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전생에서도 늘 그랬다. 버려진 자리, 아무도 안 쳐다보는 자리에 항상 남들이 놓친 게 있었다. 청명문 외원으로 이어지는 도살장, 그 문 앞에 이도현이 섰다. 낡은 철문, 녹이 슬어 붉었다. 문틈으로 짙은 피비린내가 새어 나왔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잠깐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발은 멈추지 않았다. [근접한 특수 공간을 감지합니다.] [초급 현사 시스템의 활성 범위 내 진입.] 귓가에 알림이 울렸다. 특수 공간이라. 이도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역시나. 감이 틀리지 않았다. 이도현은 열쇠를 꽂았다. 철컥. 문이 열렸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안쪽은 어둑했다. 좁은 통로, 벽을 따라 습기와 곰팡이 자국이 번져 있었다. 발밑에서 무언가 밟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지 않았다. 통로 끝,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빛의 색이 이상했다.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색이었다. 뭔가 있다. 이도현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숨을 죽이고 발끝으로 바닥을 디뎠다. 이도현이 발을 들이는 순간, 통로 끝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것도, 사람의 것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낮게 깔리며 좁은 통로 벽을 타고 울렸다. 한 번, 두 번. 간격을 두고 반복됐다. 이도현의 발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귓가에 또 하나의 알림이 울릴 듯 말 듯,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무엇이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지, 이도현은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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