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황립 상급 마법학원 입학시험은 매년 딱 한 번, 도시 중앙 광장에 마련된 시험장에서 공개적으로 치러졌다. 광장 한복판에는 임시로 세운 관람석까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시험이 단순한 입학 절차가 아니라 일종의 사교 행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족 자제들의 부모나 후견인들이 관람석에 앉아 자기 자식의 시험 모습을 지켜보는 게 관례였고, 그 옆으로는 상단 관계자들이나 소문난 정보상들도 슬쩍 자리를 잡곤 했다. 요컨대 이 자리는 재능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앞으로 몇 년간의 인맥을 쌓는 시장 같은 곳이었다.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다는 게 이 시험의 유일한 미덕이었는데, 그 이유는 제국이 신분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인재를 뽑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귀족 자제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중에서도 황립 고등 마법학원 재학생들은 아예 예비 응시자 명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 중에서도 대부분은 이름 있는 상단이나 기사 가문 출신이었고, 나처럼 아무 배경도 없이 접수처 앞에 줄을 선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줄을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깨끗하게 다린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물류창고 특유의 눅눅한 땀 냄새를 풍기고 있는 내 처지가 새삼스럽게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시험장 입구에서 접수 번호표를 받아 들었는데, 그 번호가 하필 마지막인 삼백이십일 번이어서,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삼백이십일 명 중에 삼백이십일 번이라니, 이런 식으로 뒷순서에 밀리는 것도 어쩌면 내 인생의 패턴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접수처 직원은 내 번호표를 건네주면서 딱히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그 무심함이 오히려 편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으니까.
시험은 마력 방출량 측정, 이론 필기, 실전 대응 평가 세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나는 첫 두 단계는 무난히 통과했다. 마력 방출량 측정은 손바닥 위에 놓인 수정구에 마력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그릇을 아주 살짝만 열어서 측정관에게 최소한의 마력만 보여줬다. 그 이유는 굳이 지금 이 시험장에서 내구도를 깎아가며 진짜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측정관은 수정구에 뜬 숫자를 보고 "평균 이하군요" 하고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평균 이하로 보이려고 조절한 거였으니까.
이론 필기 역시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마법 이론이라는 게 결국 마력의 흐름과 그릇의 구조에 관한 기초적인 원리들이었는데, 나는 이미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그 원리들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응시자들보다 답안을 채우는 속도가 빨랐다. 요컨대 나는 눈에 띄지 않고 통과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 단계, 실전 대응 평가를 기다리는 대기 줄에서 벌어졌다.
대기 줄은 생각보다 길었다. 응시자들이 한 명씩 순서대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내 앞에 아직 오십 명 남짓이 남아 있어서, 나는 대충 벽에 기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줄 근처에서 몇몇 화려한 옷차림의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다가, 그 시선이 슬쩍 내 쪽으로 옮겨오는 게 느껴졌다.
"어머, 이 냄새는 뭐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게 나를 향한 말이라는 걸 곧 알아차렸다. 적발을 화려하게 늘어뜨린 소녀가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 있던 은발 소년과 검은머리 소년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나는 순간 주변을 둘러봤는데, 몇몇 다른 응시자들도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요컨대 조용히 지나가긴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노형규 백작님 영애께서 물으시는데 대답을 안 하나" 하고 은발 소년, 정민혁이라는 이름의 그 소년이 거들었다. 그 말투에는 은근한 우월감이 섞여 있었는데, 아마 저 소년도 이 자리에서 자기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부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땀 냄새겠지, 물류창고 일 하고 왔나 보네" 하고 검은머리 소년, 한지훈이 덧붙였는데, 그 말이 정확히 맞아서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실제로 어젯밤에도 물류창고에서 밤새 짐을 날랐으니까. 이 정도면 관찰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눈치가 빠른 건가, 나는 속으로 잠깐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죄송합니다, 옆으로 좀 물러나 있겠습니다" 하고 나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괜한 감정을 소비하는 건 손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시험장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는 계산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서연이라는 그 소녀는 물러나겠다는 내 태도가 오히려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물러나겠다고? 이 냄새 나는 몸으로 감히 내 근처에 서 있었다는 게 문제인데" 하고 말하며, 그녀는 손끝에 작은 마력을 모으더니 별다른 경고도 없이 내 쪽으로 튕겨냈다.
파악!
작은 충격이 뺨을 스쳤고,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뺨이 얼얼했는데, 그 감각이 마치 차가운 물수건으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리 강한 마법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주변에 있던 시험 감독관들이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감독관 중 한 명은 심지어 시선을 슬쩍 피하기까지 했는데, 이 자리에서는 노형규 백작의 딸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다.
[경고: 신체 손상 감지. 자동 방어 반응이 준비되었습니다.]
감각창이 뜬 문구를 보며 나는 순간 그릇을 열어버릴 뻔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데서 그릇을 열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계산이 순식간에 섰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능력을 드러내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게 뻔했으니까. 삼백이십일 번짜리 응시자가 갑자기 방어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을 저 노형규 백작 영애 앞에서 보여줬다면, 그다음은 뻔한 시나리오였을 거다. 신원 조사, 배경 조사,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올 온갖 귀찮은 관심들. 그런 건 사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하고 나는 오히려 정중하게 물었는데, 그 말투가 예상 밖이었는지 이서연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뭐라고?" 하고 그녀가 되물었다.
"마법을 쓰신 후에 손목이 떨리시는 것 같아서요, 방출 조절이 아직 익숙지 않으신 모양인데 무리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하고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정민혁과 한지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사실 그녀의 손목이 떨렸는지 안 떨렸는지는 나도 정확히 확인한 게 아니었다. 그냥 저 정도 위력의 마법을 아무렇게나 튕겨낼 정도면 방출 조절에 서투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짐작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반응을 보니 얼추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이서연 역시 얼굴이 붉어졌는데, 그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순전히 분노 때문이었다.
"이 자식이 지금 나를 가르치려는 거야" 하고 그녀가 소리치며 다시 손을 들어올렸지만, 그 순간 시험 감독관 하나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를 말렸다. "영애님, 시험장 내에서 무단 마법 사용은 감점 처리됩니다" 하는 사무적인 경고였는데, 정작 나에게 마법을 날렸을 때는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요컨대 규칙이라는 게 누구에게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이 시험장 안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서연은 분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노려보다가, 결국 자리를 옮겼다. 옮기면서도 곁눈질로 계속 나를 힐끔거렸는데, 그 눈빛에 담긴 것이 단순한 짜증을 넘어서 뭔가 집요한 감정이라는 걸, 나는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마치 이 만남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저 자식 번호 기억해둬" 하고 한지훈이 정민혁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그걸 못 들은 척 했다. 요컨대 이 자리에서 괜히 눈에 띄어버린 셈이었고, 그것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때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삼백이십일 번, 잊기 쉬운 숫자는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그 숫자를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접었다. 어차피 지금 와서 번호를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줄은 계속 줄어들었다. 앞선 응시자들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모습을 몇 번인가 지켜봤는데, 대부분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나왔고, 몇몇은 아예 옷자락이 그슬린 채로 절뚝거리며 나오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실전 대응 평가라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관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배정받은 훈련용 마물 인형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그 인형은 사람 키의 두 배쯤 되는 크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반응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그 소문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인형의 관절 마디마디에서 미세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는데, 이건 단순한 나무 인형이 아니라 정교하게 마법이 각인된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릇을 아주 조금, 정말 최소한만 열기로 결심했지만, 그 순간 감독관이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가 마음을 흔들었다.
"이번 응시자는 마력 방출량이 워낙 낮아서, 이 단계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는 말이었는데, 그것도 다른 감독관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이서연에게 굴하지 않은 건 계산이었지만, 지금 이건 계산이 아니라 순전히 오기였다.
그릇을 조금 더 열어야 하나, 하는 갈등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아까 그 감독관의 무심한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고, 저 멀리 관람석에서 이서연과 그 일행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탈락하면 그걸로 끝이었고,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열어서 실력을 보여주면 아까처럼 괜한 관심을 끌 위험이 있었다. 두 갈래 길 앞에서,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