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여전히 내 이름이었다. 그런데 어제와 완전히 다른 흐름이었다. 강도현 눈물, 강도현 진심, 강도현 고양이. 나는 댓글창을 열어보다가 손이 멈췄다.
저런 사람이 왜 그렇게 무서운 척했대. 진짜 반전이다. 오늘 방송 보고 울었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어떤 댓글은 좋아요가 수천 개씩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셌다. 잘못 본 게 아닐까 해서. 그런데 아무리 봐도 진짜였다.
나는 그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송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대중은 그걸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냉혹한 악역 배우가 실은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배신감이 아니라 호감으로 번지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게 맞는 건가.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실장님이 뛰어와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대표님이 급하게 회의 잡으셨어요. 지금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어요."
나는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제는 이 손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제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오늘은 같은 손이 내 손을 붙잡고 흥분해 있었다.
"뭐가 바뀌었는데요."
"일단 회사로 가시죠. 가면서 설명드릴게요."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윤서아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연신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가 억지로 눌리는 게 보였다.
"저 오늘 진짜 감동했어요. 방송 보다가 울었어요."
나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방송 사고 낸 거야."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단호하게, 두 번이나.
"아니요.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이건 사고가 아니라 대박이에요, 대박."
나는 대박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내 커리어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오늘 누군가는 그걸 대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세상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로비에서부터 직원들의 눈빛이 달랐다. 어제는 나를 피해 다니던 사람들이, 오늘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제까지 계약 재검토를 통보했던 광고주 중 두 곳이 오히려 새로운 제안서를 보내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실장님이 서류를 흔들며 설명했다.
"이거 보세요. 여기랑 여기, 원래 계약 파기하겠다고 했던 곳들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다시 연락이 왔어요. 조건도 이전보다 좋아졌어요."
나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숫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표님도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어제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는데, 오늘은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낯설어서 오히려 불편했다.
"이번 이미지, 우리가 잘 살려보자."
나는 그 말에 안도감보다 혼란이 더 컸다. 어제는 지우라던 진짜 얼굴을, 오늘은 팔아보자는 거였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입으로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표님의 얼굴을 다시 봤다. 어제와 똑같은 얼굴인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날 오후, 윤서아가 나를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잠깐 걸으실래요."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회사 근처 골목을 걷는 동안 그녀는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저 원래 강도현 씨 팬 아니었거든요. 무서워서요. 촬영장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못 했어요. 진짜로요. 그런데 오늘 보고 완전히 반했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반했다는 말을 그렇게 가볍게 쓰나."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손을 저었다. 손사래가 어찌나 큰지 지나가던 사람이 흠칫 놀랄 정도였다.
"그런 반함 아니고요! 사람으로서요! 아, 진짜 오해하지 마세요."
골목의 담벼락에는 담쟁이가 붙어 있었다. 잎이 반쯤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잎을 보며 걸었다. 어제까지 나를 죄인처럼 만들었던 세상이, 오늘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헷갈렸다.
그렇게 걷다가 골목 끝에서 익숙한 실루엣과 마주쳤다. 어제 과음으로 방송에 못 나온 그 배우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형, 진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이런 일이."
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원래라면 화가 나야 했다. 그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게 이런 논란을 만든 계기였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에서 내가 흘린 눈물을 생각하면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괜찮아."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갑자기 웃었다. 조금 전까지 죄인처럼 굽어 있던 어깨가 서서히 펴졌다.
"형 이미지랑 진짜 다르시네요. 소문대로."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야."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저 다음에 밥 한번 사겠습니다. 이 사건, 형이 아니었으면 저는 완전히 매장이었어요. 진짜 형 아니었으면 저 이 판에서 못 버텼을 거예요."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을 잡는 순간, 어제 스튜디오에서 흘렸던 눈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구원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받았다.
한소은이었다. 목소리가 담백하면서도 또렷했다.
"오늘 방송 때문에 연락드려요. 괜찮으세요?"
"저야말로 진행을 흐트러뜨려서 죄송했는데."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오히려 감사했다고.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다음에 시간 되시면, 그날 이야기 좀 더 듣고 싶어요. 방송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요."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 액정이 꺼지고 나서도 그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방송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그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윤서아가 옆에서 나를 툭 치며 물었다.
"누구예요, 표정이 왜 그래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걸음을 옮겼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다시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너지던 세계가, 오늘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낯선 번호가 통화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