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한기석 시점]
화면 속에서 이수아가 남자의 팔을 꺾어 바닥에 메다꽂는 장면이 열두 번째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깊이 묻고 그 장면을 곱씹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놓은 편집본이었다. 팔을 붙잡는 손, 몸을 회전시키는 어깨, 바닥에 처박히는 남자의 얼굴까지, 0.5배속으로 늘어진 그 3초짜리 장면이 화면 가득 채워질 때마다 나는 술도 없이 취하는 기분이었다. 조회수는 이미 삼백만을 넘었다. 실시간 댓글창은 욕설로 들끓었고, 그 욕설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축배였다.
"형, 이거 미쳤는데요." 옆에서 노트북을 붙잡고 있던 후배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짜 십 년 전 그 미친년, 여전하네요."
십 년 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등줄기가 뜨거워졌다. 고등학교 체육관 뒤편, 겨울바람이 살을 파고들던 그날. 나는 후배들을 데리고 늘 그렇듯 약한 놈 하나를 찾아 재미를 보려던 참이었다. 그날은 유독 날씨가 맑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늘이 파랬고, 운동장 흙바닥이 발밑에서 서걱거렸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 계집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작고 조용하던 전학생. 눈빛이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어서 오히려 무시하기 좋았던 그 애가, 내 팔을 붙잡은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갈비뼈에서 나던 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를 듣던 순간, 나는 통증보다 먼저 어떤 이물감을 느꼈다. 이건 상상 밖의 일이라는, 세상의 질서가 뒤틀렸다는 이물감.
그날 이후 나는 반년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갈비뼈 세 대, 어깨 탈구, 뇌진탕. 진단서에 적힌 병명들을 나는 지금도 외울 수 있다. 학교는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가해자는 나였는데, 어느샌가 나는 '피해자'로 재구성되어 있었다. 담임은 내 부모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 애의 부모는 조용히 전학 서류를 준비했다. 그 애는 전학을 갔고, 나는 낙인이 찍힌 채 남았다. 병실 침대에서 천장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웃긴 건, 그때부터였다는 거다. 나는 매일 밤 그 애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들었다. 증오였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갈비뼈가 부러지던 순간의 그 완벽한 계산, 한 치의 흔들림도 없던 눈빛. 그건 열일곱 살짜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분석하고, 되새기고, 꿈속에서 재현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 가서도, 군대에 가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마치 사진이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그리고 삼 년 전, 텔레비전에서 그 얼굴을 다시 보았을 때. 심장이 얼어붙었다가, 곧 뜨겁게 끓어올랐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걸린 음악 방송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웃고 있는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이수아. 체리하트의 이수아.
우아하게 웃고, 나긋나긋하게 인사하고, 핑크빛 아이섀도를 칠한 그 얼굴 안에 내가 알던 짐승이 숨어 있었다. 대중은 몰랐다. 나만 알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밤마다 그 애가 나오는 방송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뷰, 팬미팅, 브이로그. 화면 속 이수아는 항상 다정했고, 항상 예의 바르게 웃었다. 그 위장이 완벽할수록 나는 더 확신했다. 저 껍데기 안에 든 게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나는 몸으로 배운 사람이었으니까.
"형, 근데 이렇게 여론 몰아가는 거, 계정 다 추적당하면 어쩌려고요." 후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스무 개가 넘는 커뮤니티 계정, 팬사인회 신청 명단에 심어둔 서른 개의 중복 계정, 스태프 두 명을 빼돌린 수고까지. 이 모든 걸 삼 년에 걸쳐 준비했다. 처음엔 단순한 악플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판을 키웠다. 사람 하나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데는 생각보다 정교한 설계가 필요했다. 나는 그 설계를 즐겼다. 요리사가 재료를 다듬듯, 나는 하나씩 계정을 만들고, 여론의 흐름을 관찰하고, 어느 시점에 어떤 키워드를 던져야 사람들이 물어뜨는지 실험했다. 이 정도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몰아가는 게 아니야."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진실을 보여준 거지."
편집된 영상 속 이수아는 먼저 손을 뻗어 남자를 붙잡는 폭력적인 존재로 재탄생했다. 원본에서 그녀가 먼저 김하늘을 감싸던 장면은 삭제됐다. 알고리즘이 어느 걸 우대하는지는 이미 계산이 끝난 문제였다. 편집 프로그램을 켜고 프레임 하나하나를 잘라내던 그 밤, 나는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마치 정밀한 수술을 하듯 손을 움직였다. 어느 프레임을 자르면 관객이 분노하는지, 어느 각도에서 잡힌 표정이 가장 서늘해 보이는지,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후배가 물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오래전부터 준비해둔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짧은 한 줄이었다.
[2단계 시작해.]
답은 곧바로 왔다.
[알겠습니다. 회사 쪽 합숙 계획, 이미 파악됐습니다. 위치도.]
나는 웃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꼬리만 길게 늘어뜨린 채. 그 문자를 받는 순간, 삼 년의 시간이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는 기분이었다. 회사 내부에 심어둔 사람이 있었다. 스태프 두 명이라고 했던가. 소속사가 진짜 위기를 숨기려 얼마나 발버둥 치는지,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수아가 무너지면, 함께 사는 그 여자들도 함께 흔들릴 것이다. 그게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그 계집애가 네 명의 여자를 끌어안고 산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했다. 김하늘, 정하주, 윤소한, 김미소. 넷이나 되는 이름을 외우는 게 우습기까지 했다. 그중 누구를 먼저 건드려야 그녀가 가장 크게 무너질지,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각각의 프로필을 뽑아 인터뷰 기사를 읽고, SNS를 뒤지고, 팬 커뮤니티의 반응을 분석하면서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여리고, 가장 사랑받는 존재.
김하늘.
그 애의 웃는 얼굴, 팬들이 유독 감싸고 도는 그 애의 서투른 말투. 이수아가 그 애를 볼 때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도, 나는 이미 백 개도 넘는 영상 클립에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짐승도 새끼를 지킬 때 가장 취약하다. 나는 그 틈을 찌를 생각이었다.
"형, 진짜 무섭다니까요." 후배가 혀를 내둘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면 속에서 다시 재생되는 이수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우아한 가면이 갈라지는 순간을 상상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던 그 소리를,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물리적인 고통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가는 것으로.
십 년이었다. 십 년을 기다렸다.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이수아 시점]
회사 건물 로비의 불빛이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새벽 두 시가 다 된 시각인데도 대표실 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마치 그곳만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로비를 지나며 나는 창에 비친 내 얼굴을 잠깐 보았다. 방금 숙소에서 뛰쳐나오듯 나온 얼굴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 밑이 퀭했다.
정다은 언니가 내 옆에서 조용히 숨을 삼켰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떨림을 애써 못 본 척했다. 언니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걸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데뷔 초 첫 방송 사고가 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비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길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숫자판의 불빛이 하나씩 바뀔 때마다, 나는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대표실 문이 열렸다.
박현일 대표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이 오십쯤, 항상 온화한 얼굴로 알려진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 온화함조차 계산된 무표정처럼 보였다. 방 안의 조명은 필요 이상으로 밝았고, 그 빛 아래 대표의 얼굴은 유독 창백해 보였다.
"앉아." 그가 짧게 말했다.
존댓말이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데뷔 후 오 년 동안, 이 사람은 늘 나를 '수아 씨'라고 불렀다. 지금 그 호칭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건, 더는 나를 회사의 얼굴로 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다리를 모으고,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허리를 곧게 펴고. 겉으로는 흔들림 없는 숙녀처럼 앉아 있었지만, 속에서는 위장이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끼며 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겹쳐 쥐었다.
"조회수 봤나?" 대표가 태블릿을 내 앞으로 밀었다.
화면에는 숫자가 떠 있었다. 사백만. 나는 그 숫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젯밤까지 삼백만이었다. 여섯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백만이 늘었다. 나는 이 숫자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번식하는 걸 느꼈다.
"이수아, 무술 유단자설, 사생팬한테 먼저 폭력 행사, 눈빛 무섭다, 아이돌 자격 없다." 대표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넘겨지는 화면마다 나를 향한 말들이 쏟아졌다. 짐승, 미친년, 사기꾼. 익숙해질 리 없는 말들이었다.
"먼저 하늘이를 붙잡는 장면은 편집됐어요."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원본이 있습니다."
"원본 조회수는 편집본의 십분의 일도 안 돼." 대표가 태블릿을 덮었다. "세상은 진실을 보는 게 아니야. 세상은 먼저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정다은 언니가 옆에서 뭐라 말하려 했지만, 대표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 손짓 하나에 언니가 입을 다물었다. 회사 안에서, 이 사람의 손짓은 언제나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체리하트 이미지가 통째로 무너지게 생겼어. 광고 세 개가 벌써 보류됐고, 다음 주 앨범 발매도 재검토 중이야." 대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건 너 하나의 문제가 아니야. 하늘이, 하주, 소한, 미소까지 전부 같이 무너지는 문제야."
그 이름들이 나올 때마다 명치가 조여왔다. 내가 지키려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들을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하늘이가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던 그날 밤의 얼굴이 떠올랐다. 언니, 나 때문이야? 그 애가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지금 이 방 안에서는 그 말이 얼마나 얇은 위로였는지 스스로 깨달았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나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물었다.
대표가 서류 한 장을 밀었다.
"'힐링 화보' 컨셉으로 다섯 명 전부 합숙에 들어간다. 삼 주간. 카메라가 상시 돌아가는 리얼리티 형식으로. 사이좋고 따뜻한 체리하트, 이미지 세탁이 목적이야."
나는 그 서류를 내려다봤다. 활자들이 눈앞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계약서 특유의 딱딱한 문장들 사이로, 나는 삼 주라는 숫자만 크게 눈에 들어왔다. 삼 주 동안, 카메라 앞에서, 다섯 명이 함께.
"싫습니다." 나는 말했다. 목소리가 단호하게 나왔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제가 위험할 수 있어요. 통제가 안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 말은 반은 진심이었다. 내 안의 짐승을, 나조차 완전히 믿지 못했다. 열일곱 살, 그 겨울날 이후로 나는 내 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화가 날 때 손끝이 먼저 차갑게 식는 그 감각. 그걸 다섯 명이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삼 주 동안이나 억누를 수 있을까.
대표가 나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연민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계산만이 있었다. 마치 상품의 재고를 확인하는 사람의 눈빛 같았다.
"싫다는 선택지는 없어." 그가 말했다. "이수아, 넌 계약서에 서명했을 때부터 회사의 자산이야. 네가 서명하지 않으면, 나머지 넷의 계약도 함께 파기 검토에 들어간다."
숨이 턱 막혔다.
"그건..." 내가 말을 잇지 못했다.
"네가 그 애들을 지키고 싶다면." 대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서명해."
정다은 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미안함과 무력감이 뒤섞여 있었다. 언니는 뭐라도 말해주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방 안에서는 그 누구의 말도 대표의 계산을 이길 수 없었다.
나는 서류를 다시 내려다봤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몇 줄 안 되는 조항들 속에서, 나는 하늘이의 얼굴을, 하주의 웃음을, 소한의 무뚝뚝한 옆모습을, 미소의 조용한 눈빛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들의 이름이 이 서류 아래에서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함정이었다.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나는 이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었다. 십 년 전 체육관 뒤편에서 나를 몰아넣었던 그 순간처럼, 지금도 나는 벽에 등을 붙인 채 서 있었다. 그때는 몸으로 맞섰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서류 위에 놓인 펜을 집어 들었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나는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 서명이, 우리 다섯 명을 한 지붕 아래 가두는 동시에, 누군가가 이미 파놓은 함정의 문을 여는 소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