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살수 아이돌의 이중생활

1화

[이수아 시점] 대기실 공기가 유난히 무거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상했다. 평소라면 헤어 담당이 드라이기를 돌리는 소리, 코디가 옷걸이를 뒤적이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공간이 지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사람이 부족했다. 그냥 부족한 게 아니라, 있어야 할 사람의 절반이 비어 있었다. "오늘 스태프가 두 명 빠졌어." 정다은 매니저가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갈라짐이 섞여 있었다. "연락도 안 되고." 나는 화장대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옅은 핑크빛 아이섀도, 곱게 말린 속눈썹, 누가 봐도 나긋나긋한 아이돌의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오 년에 걸쳐 완성시킨 가면이었다. 그 가면 밑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 방 안 누구도 몰랐다. 거울 속 여자애가 웃는다.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히고, 입꼬리가 정확히 십오 도 올라간다. 어머니가 재던 각도였다. 십오 도보다 더 올라가면 촐랑거려 보이고, 덜 올라가면 도도해 보인다고 했다. 그 사이의 각도를 찾기 위해 나는 매일 밤 거울 앞에서 삼십 분씩 웃는 연습을 했다. 웃음을 짓는데 웃음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잊고 살았다. "실종이라는 거야?" 내가 물었다. "실종은 아니고... 그냥 안 나타난 거지. 이런 적 없었잖아." 정다은이 억지로 웃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불안을 배가시켰다. 옆에서 화장을 고치던 김미소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아이 같은 말투. 하지만 눈빛은 의외로 날카로웠다. 미소는 그런 아이였다. 겉으로는 어리광을 부리면서 속으로는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는. 나는 미소의 그런 이중성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이중적이었다. 이 방 안에서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별일 아니야." 나는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별일이 아닌 게 아니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목덜미의 솜털이 곤두선 채로 가라앉지 않았다. 전생의 감각이었다. 위험이 다가올 때 나는 언제나 먼저 느꼈다. 사람보다 짐승에 가까운 본능으로. 이 감각을 처음 느낀 게 언제였더라. 아마 이 몸에 들어온 첫날이었을 것이다. 낯선 방, 낯선 침대, 낯선 얼굴을 한 채로 눈을 떴을 때, 나는 창밖에서 다가오던 자동차 소리 하나만으로 그 차가 이 건물 앞에서 멈출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걸 우연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몸이 죽고 감각만 남아 이 낯선 육체에 스며든 존재라면, 적어도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만큼은 온전히 가져왔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오늘 팬사인회, 신청자 수가 이상하게 많았어." 정하주가 소파에 걸터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성숙한 목소리, 침착한 표정.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가 다리를 꼬는 것은 초조할 때 나오는 버릇이라는 걸. 하주는 무대 위에서는 가장 어른스러운 언니였지만, 무대 뒤에서는 손톱 끝을 물어뜯는 버릇을 숨기지 못했다.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윤소한이 우아하게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세련된 말투 속에 조소가 섞여 있었다. "팬 많은 게 죄는 아니잖아." "신청자 명단 중에 중복 계정이 서른 개가 넘었어." 정다은이 낮게 말했다. "경호팀에도 알렸는데, 오늘 그쪽도 인원이 부족하대." 방 안에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 침묵의 무게를 가늠했다. 스태프 결원, 경호 인력 부족, 이상한 명단. 하나하나는 우연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세 개가 겹치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오늘, 이 자리를, 정확히 이 시간을 골랐다는 뜻이었다. 김하늘이 그 침묵을 깼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괜찮을 거야." 하늘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우리한텐 수아 언니가 있잖아."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늘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연습된 미소, 계산된 온도. 그러나 손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늘의 손을 잡은 채로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른다. 알면 안 된다. 이 손으로 사람의 목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하늘은 다시는 이렇게 편하게 내 손을 잡지 못할 것이다. "물이라도 마셔." 정다은이 텀블러를 건넸다. "다들 긴장한 것 같은데." 나는 텀블러를 받아 한 모금 삼켰다. 목구멍이 사포처럼 껄끄러웠다. 물이 넘어가는 느낌조차 이상하게 낯설었다. 메이크업 담당이 마지막으로 내 입술에 립글로스를 덧발라주며 말했다. "오늘 유난히 예쁘시네요." 나는 대답 없이 웃었다. 예쁘다는 말이 이렇게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깨달았다. 팬사인회장은 예상보다 사람이 많았다. 행사장 조명이 무대 위로 쏟아졌고, 팬들의 함성이 벽을 타고 울렸다. 나는 무대 중앙에 앉아 앞줄부터 순서대로 사인을 해나갔다. 하나같이 웃는 얼굴, 하나같이 반짝이는 눈. 그 사이 어딘가에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이 섞여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수아 씨, 사랑해요!" 한 팬이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 이 웃음도, 이 목소리도, 모두 훈련의 결과였다. 어머니는 내가 열두 살이었을 때부터 매일 거울 앞에 세워두고 말했다. "웃어. 예쁘게. 목소리는 반음 낮추고, 손짓은 절제해." 그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었다. 손끝에 반지를 낀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손이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 상대의 목을 부러뜨릴 수 있는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손으로 팬의 앨범에 하트를 그려주고 있었다. 앨범을 내밀던 한 소녀가 손을 떨었다. "저... 진짜 팬이에요. 데뷔 때부터 좋아했어요." "고마워요." 나는 사인을 하며 답했다. 진짜 팬. 그 말이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야 하는 순간이, 곧 다가올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김미소가 다른 팬과 손가락을 걸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늘은 부채를 들고 온 팬에게 부채질을 해주며 웃고 있었다. 하주는 팬이 건넨 편지를 소중히 가슴에 안았다. 소한은 팬의 질문에 능숙하게 농담을 던지며 좌중을 웃겼다. 평화로웠다.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나는 줄 뒤쪽, 사람들 사이에 낀 몇몇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웃지 않는 얼굴. 눈을 마주치지 않는 얼굴. 손에 쥔 것이 앨범이나 포토카드가 아닌 얼굴들. 그 숫자를 세다가, 어느 순간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너무 많았다. 소란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 뒤쪽 대열에서 비명이 터졌다. 처음엔 그저 흥분한 팬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진 소리는 명백히 달랐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 그리고 여러 명의 발소리가 한꺼번에 무대 쪽으로 밀려오는 소리. 경호원 두 명이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곧 그들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뒤로 물러나세요!" 누군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사람들의 물결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 셋이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이었다. 관객석에서 무대까지의 거리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들의 눈은 무대 위 우리 넷이 아니라, 정확히 한 사람만을 향해 있었다. 김하늘. 머릿속으로 상황이 정리되는 데는 반 초도 걸리지 않았다. 스태프 결원. 경호 부족. 이상한 신청자 명단. 이 모든 것이 오늘, 이 순간, 하늘을 향해 조준되어 있었다. "하늘아!"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남자 하나가 하늘의 팔을 붙잡았다. 하늘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었다. 하늘은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눈으로 나를 찾았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오 년 동안 눌러왔던, 억눌러왔던, 감추고 다듬어왔던 그것이. 이십칠 년 동안 전생의 몸으로 살아왔던 그 시간 전부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무대를 가로질렀다. 걸음은 여전히 우아했다. 그러나 그 걸음의 끝에서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변의 시간이 늘어지는 것 같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느리게 터지고, 팬들의 비명이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뭉개졌다. 오직 남자의 손목과 하늘의 팔만이 선명했다. 남자의 손목을 잡는 순간, 나는 그 남자의 체중과 뼈의 위치를, 무게 중심이 어디로 쏠려 있는지를 정확히 계산했다. 계산은 반사적이었다.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체중은 왼발에 쏠려 있고, 오른쪽 어깨는 하늘의 팔을 잡아당기려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이 남자를 넘기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낮은 각도에서 파고들어야 했다.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지나칠 정도로. "놔." 나는 낮게 말했다. 남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비웃음이 스쳤다. 나 같은 아이돌이, 그깟 손목 하나로 뭘 하겠느냐는 표정이었다. 그 비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다음 순간 남자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 손목이 그의 손목을 감아 당기고, 발이 그의 발을 걸고, 어깨로 무게중심을 밀어낸 그 동작은 채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왜 하늘에 떠 있는지 이해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얼굴로 무대 바닥에 내려앉았다. 무대 위 조명이, 내가 그 남자를 던지는 그 순간을 정확히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몇 개의 스마트폰이, 실시간으로 그 장면을 세상에 쏘아 보내고 있었다. 행사장 안의 함성이 순간 끊겼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문이 열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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