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성인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거창한 이름이 붙었길래 그냥 관례적인 행사인 줄 알았다.
성년 기념 다과회 같은 거 아닐까, 하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왕 노인이 그게 어떤 자리인지 설명해줬을 때, 나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이가 황실의 황자, 황녀는 성년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는데, 그 핵심이 요수 사냥입니다.”
“요수 사냥이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다과회는 개뿔.
“무천당과 황실 무사들이 지정한 요수를 사냥해서 무맥의 등급, 혹은 그에 준하는 실력을 증명하는 의식입니다.”
[치명적인 정보입니다.]
머릿속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알아.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줄래.’
[치명적인 정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 말한다고 안 죽던 게 죽는 건 아니잖아.’
왕 노인이 이어 말했다.
“원래 마마의 성인식은 무맥이 없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예만 치르고 넘어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끝을 흐리는 순간, 이미 등 뒤가 서늘해졌다.
좋은 이야기는 절대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무천왕부에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습니다. 3개월 축출 선언을 한 황자가 아무 시험도 없이 성인식을 넘긴다면, 공평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구장로, 이 노인네.
생각보다 뒤끝이 길다.
아니, 뒤끝이 아니라 이건 그냥 집요함이다.
저번에 붉은 함으로 협박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다음 수를 준비해둔 건가.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왕 노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7일 뒤, 마마도 다른 황자, 황녀들과 똑같이 요수 사냥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대상은 2급 요수, 빙교입니다.”
2급 요수.
등급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2급이라는 말을 들으니 감이 잘 안 왔다.
1급이 최고인지, 9급까지 있는지,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채로 사형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2급이면 어느 정도입니까.”
“상급 무사 서너 명이 협력해야 겨우 사냥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초급 무사 혼자 나서면 백 걸음도 못 가서 몸이 두 조각 납니다.”
두 조각.
그 단어가 유독 선명하게 귀에 박혔다.
왕 노인은 그냥 사실을 전달하는 투였는데, 나한테는 마치 예언처럼 들렸다.
무맥이 아예 없는 나는 초급 무사도 아니었다.
초급 이하, 그냥 일반인 취급이었다.
두 조각이 아니라 가루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가루보다는 눈밭에 뿌려지는 육수 정도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그날 저녁, 구장로가 예상대로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붉은 함이 아니라, 손에 든 두꺼운 두루마리 하나였다.
두루마리를 보는 순간, 붉은 함이 오히려 그리워졌다.
저건 최소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조정에서 정식으로 확정한 시험 규정입니다.”
구장로가 두루마리를 펼치며 읊었다.
“7일 후, 성인식에 참여하는 모든 황족은 지정된 요수를 단독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실패 시, 무맥 없는 자는 궁 밖으로 추방됩니다.”
“추방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겠군요.”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구장로가 코웃음을 쳤다.
“추방이 아니라, 사망 확률이 더 높다는 뜻입니다, 황자님.”
[사실입니다.]
목소리가 확인해줬다.
‘고맙다, 정말.’
[별말씀을요.]
···이 자식, 진짜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재주가 있다.
아니, 이게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말이라고 하면 안 되나.
구장로가 두루마리를 접으며 나를 지그시 노려봤다.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적어도 호의는 아니었다.
경멸과 기대가 반쯤 섞인, 그런 눈빛.
“그리고 하나 더 전할 말이 있습니다. 무천왕 전하의 뜻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만약 3개월 안에 축출 선언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혹은 이번 성인식에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면.”
구장로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정적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마당의 바람 소리마저 순간 멈춘 것 같았다.
“이가 황실 전체를 무천왕부의 관리 아래 두겠다고 전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멸족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글자를 다르게 쓸 뿐, 뜻은 비슷하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구장로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짜 웃음이 떠올랐다.
비웃음이 아니라, 승리를 확신한 사람의 웃음.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비웃음은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데, 저건 이미 다 계산이 끝났다는 표정이었다.
“황자님의 대담한 선언이, 이제는 황실 전체의 목줄이 되었습니다. 부디 신중히 대처하시길 바랍니다.”
그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마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왕 노인이 손을 떨며 나를 쳐다봤다.
“마마···”
“왕 노인.”
“예.”
“솔직히 말해서, 저 지금 좀 많이 곤란한 상황이죠?”
왕 노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예. 아주 많이요.”
그 짧은 대답에 담긴 절망이 어찌나 진심인지, 오히려 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면 위로할 방법이 없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었다.
전생에는 천계 전체를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았던 존재가, 지금은 요수 한 마리 때문에 황실 전체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 처했다.
그때는 상대가 신이든 마왕이든 그냥 손짓 한 번이면 끝났는데.
지금은 얼음 짐승 한 마리한테 밀리면 두 조각, 아니 가루가 된다.
인생 참 알 수 없다.
[재밌는 상황입니다.]
‘너 지금 웃고 있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다만 흥미롭다고는 인정합니다.]
···믿을 수가 없다.
이 목소리는 위기 상황에서 감정을 숨기는 법을 좀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다시 그때처럼 차가워지고 있었다.
연무장에서 이강에게 짓밟히던 그 순간처럼.
그 순간에도 나는 두려움보다 계산이 먼저 움직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살 방법을 찾는 게 겁먹는 것보다 먼저였다.
7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낡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검도, 무공서도, 아무것도.
무맥 없는 황자에게 그런 게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서랍 안쪽 나뭇결까지 눈에 들어올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먼지 한 톨조차 아까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
하지만 내겐 있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전생의 기억, 그리고 이 몸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지 모르는 무언가.
[수라천제결의 흔적은 이 몸 안에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처음으로 확신에 가까운 말을 했다.
‘가능성이라는 게 도대체 몇 퍼센트인데.’
[모릅니다. 다만, 시도해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그 대답 진짜 도움 하나도 안 되는데 왜 자신만만해.’
[자신만만한 게 아니라 담담한 겁니다.]
···됐다, 말을 말자.
나는 방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갈비뼈는 이제 거의 다 나아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
몸 안쪽 깊숙한 곳, 심장 아래 어딘가에서 낯설고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7일 후, 나는 빙교라는 요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무맥도 없고, 무공도 없고, 있는 건 죽은 줄 알았던 전생의 기억뿐인 채로.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어렴풋이 감이 오고 있었다.
찾아야 한다.
이 몸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봉인된 무언가를.
밖에서 바람이 창을 흔들었다.
덜컹.
그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7일.
그 안에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몸 안의 무언가를 깨워야, 3개월이라는 선언도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것이었다.
창밖 어둠 속에서, 또 한 번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소리가 마치 시간이 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7일.
6일 23시간 59분.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