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천령단 사건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황궁 전체가 나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17황자가 무천왕부의 천령단을 걷어찼다더라.”
“3개월 안에 7군주를 쫓아내겠다고 했다며?”
“폐인이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다는 소리도 있고, 뭔가 숨긴 게 있다는 소리도 있어.”
“설마 그 몸으로 뭘 하겠어. 3개월도 못 채우고 무천왕부에 끌려가 목이 잘릴걸.”
“그래도 예전 같지가 않던데. 걸음걸이도 그렇고, 눈빛도.”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경멸이었던 시선이 이제는 경멸과 호기심이 반반씩 섞인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궁녀들은 나를 보면 잠깐 걸음을 멈췄다가, 뭔가 결정하지 못한 얼굴로 다시 서둘러 지나갔다.
내관들은 아예 시선을 피했다.
예전에는 대놓고 코웃음을 치던 자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코웃음 대신 어정쩡한 침묵을 택하고 있었다.
침묵이 코웃음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아마 나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정체가 불안정해졌습니다.]
머릿속 목소리가 그런 식으로 정리해줬다.
‘그게 뭔 소리야.’
[사람들이 당신을 더 이상 예측 가능한 폐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감시가 시작될 겁니다.]
‘예측 가능한 폐인일 때가 오히려 편했다는 거네.’
[정확합니다.]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차라리 대놓고 손가락질을 받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뭘 조심해야 하는지 명확했으니까.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다.
전달을 온 내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사형 선고를 대신 읊는 사람 같았다.
그 표정만 봐도 이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짐작이 갔다.
황제 이정의 처소는 궁의 가장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걸어가는 내내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갈비뼈가 아직 낫지 않아 걸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발밑의 돌바닥은 차가웠고, 복도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은은한 향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속이 더 울렁거렸다.
생각해보면, 이 아버지라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 본 적이 몇 번 없었다.
17번째 황자, 정확히는 후궁의 자식들 중에서도 가장 서열이 낮은 축.
무맥도 없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궁 안에서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왕 노인 말고는 없었다.
연회 자리에서 멀찍이 서서 절을 올린 게 전부였고, 그때조차 아버지의 눈길이 나를 지나쳤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아버지가 나를 직접 불렀다.
문 앞에서 지키던 무사 둘이 나를 힐끔거렸다.
그 시선에도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 섞여 있었다.
“들어오라.”
안에서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방 안은 넓었고, 은은한 침향 냄새가 감돌았다.
바닥에는 두꺼운 문양의 카펫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지도와 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검집에는 사용한 흔적이 뚜렷했다.
장식용 검이 아니라, 진짜 써온 검이었다.
황제 이정은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였지만, 등에는 여전히 단단한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예전에 무맥이 높았던 무인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저 자세는 아마 세월이 지나도 남는 습관인 모양이었다.
등만 봐도 왠지 숨이 막히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소자, 인사드립니다.”
“앉아라.”
나는 자리에 앉았다.
방석은 딱딱했고, 그 딱딱함이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줬다.
아버지가 천천히 돌아서서 나를 마주 봤다.
그 눈빛에는 내가 예상했던 짜증이나 실망 대신, 뜻밖의 관심이 담겨 있었다.
“구장로가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
“천령단을 거절했다지.”
“예.”
“그리고 3개월 안에 유하린 군주를 쫓아내겠다고 선언했다고.”
“···그것도, 예.”
짧은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이 어떤 종류인지 가늠하려 애썼다.
분노일까, 실망일까, 아니면 그냥 어이없음일까.
아버지의 눈빛은 그 셋 중 어느 것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욕이나 훈계를 예상했는데, 질문이라니.
“그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전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하면 미친놈처럼 보일 게 뻔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만 년을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거짓말은 결국 제일 아플 때 되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 영약을 받는 대신 예속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동정으로 얻은 힘은 결국 남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나를 오래 바라봤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 깊은 곳에서 뭔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놀라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알려줬다.
‘그렇게 보여?’
[예. 아마 그런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럼 뭘 기대했다는 거야.’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반항했다는 정도.]
···그것도 나름 합리적인 예상이긴 했다.
지금까지의 내가, 그러니까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무맥도 없는 몸으로, 무슨 수로 3개월 안에 그런 일을 해내겠다는 것이냐.”
“그건 저도 아직 모릅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하구나.”
아버지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묘한 웃음이 스쳤다.
“보통은 이런 순간에 거짓 자신감을 내보이는데.”
“거짓 자신감은 나중에 더 크게 무너지는 법이지요.”
“···그건 어디서 배운 말이냐.”
어디서 배웠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그런 말을 남에게 들은 적도 있고, 스스로에게 되뇐 적도 있다.
수만 년을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순간부터 진짜로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그 대가를 몇 번이나 치러봤는지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입니다.”
나는 얼버무렸다.
아버지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가 끊겼다.
그 정적이 길어질수록,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천령단을 거절한 것은 네 자유다. 무천왕부에서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폐하.”
“다만.”
아버지가 다시 나를 돌아봤다.
이번에는 눈빛이 조금 더 무거워져 있었다.
“3개월이라는 시한을 스스로 정한 것은,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는 그 결과까지 대신 책임져줄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아버지가 잠시 뜸을 들였다.
“무맥 없는 몸으로 태어난 것이, 네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이 나라 체계 안에서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지도 안다.”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아버지는 이 세계의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근엄하게 앉아서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무맥과 무사 체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맥에서 9맥까지 나뉘고, 무사 등급도 초급, 중급, 상급, 절정으로 나뉜다. 유하린 군주는 9등 천맥으로 이미 상급 무사에 이른 상태다.”
숫자가 클수록 좋은 건지, 아니면 반대인지 헷갈렸다.
“9등이 높은 겁니까?”
“낮은 것부터 1등, 높은 것부터 9등으로 매긴다. 9등 천맥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다.”
···그럼 나는 0등인 건가.
무맥 자체가 없으니까.
아니, 등수 밖이라는 게 더 정확할지도.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그리고 초급에서 절정까지 오르는 데도 보통은 십수 년이 걸린다. 유하린 군주는 열일곱의 나이에 이미 상급에 올랐다. 절정까지도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그럼 그 나이에 저와 무슨 격차입니까.”
아버지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그리고 황실과 무천왕부의 관계도 알아둬야 한다. 무천왕은 국방을 담당하는 최대 세력이며, 나와는 오랜 정치적 균형 속에 있다. 네가 유하린 군주와 파혼하겠다고 나선 것은, 단순한 개인 감정 문제가 아니라 이 균형을 흔드는 일이다.”
생각보다 판이 더 컸다.
혼자 폼 잡고 선언한 말이, 국가 간 균형까지 흔들고 있다니.
그냥 내 인생 정리하려고 던진 선언이었는데, 어느새 조정의 화두가 되어 있었다.
“···그럼 저는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낮고 짧았는데, 왠지 그 안에 오래된 씁쓸함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글쎄다. 하지만 흔들리기 시작한 균형이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나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어쩌면 그게 지금 당장 내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폐하께서는, 이 상황이 재밌으십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너무 무례한 질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이미 뱉은 뒤였다.
아버지가 잠깐 나를 응시했다.
“재밌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다만, 오랜만에 흥미로운 것을 봤다는 정도로만 말해두겠다.”
그 대답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구분이 안 갔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자리에서 더 캐물을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직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장로가 곧 다시 올 것이다. 이번엔 천령단이 아니라, 다른 걸 가지고.”
“···다른 것이라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버지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7일 뒤 성인식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겠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7일 뒤라는 그 숫자가, 왠지 아주 불길하게 들렸다.
방문을 나서는 내 뒤로, 아버지의 시선이 오래도록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