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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천장을 한참 바라봤다. 어제 은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3개월. 그 안에 내가 죽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다시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교복을 입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 넥타이를 세 번이나 다시 맸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평소보다 유난히 창백했다. 학교로 가는 길,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은하가 진짜로 전학을 온다면, 분명 오늘부터일 거였다. 그 애가 어젯밤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남아 있었다. '제 목적은 하나예요. 도윤 씨를 지키는 거.' 지켜준다는 말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창밖을 몇 번이나 흘깃거렸다.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말로 은하가 들어왔다. 교실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핑크색 긴 머리카락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화려한 외모에,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애에게 쏠렸다.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완전 예쁘다." "저런 애가 왜 우리 학교에 와?" 선생님이 앞에서 소개했다. "오늘부터 함께할 전입생, 여은하입니다. 다들 잘 지내줬으면 좋겠어요." 은하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인사하는 태도까지 여유가 넘쳤다. 마치 이 상황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옆 빈자리로 걸어와 앉았다. 나는 그 애를 노려봤다. "여기가 왜 네 자리야." "선생님이 정해주셨는데요." "……그걸 어떻게 미리 부탁했는데." "부탁 안 했어요. 우연이에요." 우연이라는 말이 하나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정확하게 내 옆자리로 배정된 게 우연일 리 없었다. 하지만 더 캐물을 새도 없이, 반 아이들이 몰려와 은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서 전학 왔어요?" "서울요." "이도윤이랑 아는 사이예요?" 그 질문에 은하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수상해 보였다. "네. 저희 집 근처 살아요." 집 근처가 아니라 내 집이라고 정정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면 상황이 더 이상해질 게 뻔했다. 반 아이들이 무슨 상상을 할지 눈앞에 그려졌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수업 시간 내내 은하는 내 옆에서 태연하게 필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칠판을 보는 척하면서도, 자꾸 그 애의 옆모습을 힐끔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갔다. 쉬는 시간, 준서가 다가와 은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 사람이야?" "어." 준서는 은하를 향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나는 박준서. 반갑다." "안녕하세요." "근데 도윤이 집 근처 산다며. 언제부터?" "음, 오래됐어요." 오래됐다는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오래됐다는 말이 어떻게 태연하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은하는 태연하게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준서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작게 말했다. "야, 진짜 예쁘긴 한데. 뭔가 좀 이상하다." "뭐가." "몰라. 그냥 느낌이. 너무 여유로워." 준서의 말에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은하는 전학 온 첫날부터 마치 이 학교를, 이 교실을, 나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은하를 복도로 끌고 나갔다. 밥은 먹을 생각도 안 났다. 인적이 드문 계단 쪽까지 걸어간 다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목적이 뭐야." "말씀드렸잖아요. 도윤 씨 지키는 거." "그게 왜 전학까지 필요한데." "가까이 있어야 하니까요. 3개월 동안 계속." 그 대답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혔다. 3개월이라는 숫자가 다시 목을 조여왔다. 겨우 하루 지났을 뿐인데, 벌써 그 숫자가 익숙해지고 있다는 게 더 끔찍했다. "그 사고, 정말 있는 거야?" 은하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네. 확실해요." "언제, 어디서." "그건 아직 못 알려드려요. 규칙이라서요." "규칙? 그게 뭔데." 나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손끝은 이미 떨리고 있었다. 은하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래를 너무 자세히 알려주면, 다른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조금씩만 알려드릴 수 있어요." "문제라니, 무슨 문제." "그건…… 저도 다 설명드릴 수는 없어요. 그냥, 믿어주세요." 믿어달라는 말이 가장 믿기 힘들었다. 나는 뭔가 더 따지려고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던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불었다. 휘이이이- 창틀에 걸린 커튼이 크게 흔들렸다. 근처에 있던 화분이 살짝 흔들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쨍그랑. 소리에 놀란 나는 은하를 쳐다봤다. 은하도 놀란 표정으로 화분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지금." "저도 몰라요." 순간 은하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떨리고 있는 걸 나는 분명히 들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낯선 떨림이었다. 그 애가 나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표정에는 아까까지 없었던 불안이 스쳐 지나갔다. "도윤 씨, 아무래도……."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은하는 창밖 멀리, 운동장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선 남자 하나가 학교 담벼락 너머로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그 남자의 코트 자락만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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