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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결국 나는 신고를 하지 못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춘 채로 삼십 초쯤 굳어 있었다. 112라는 세 글자가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동안 은하는 태연하게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고, 나는 그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경찰 부르면 저 애는 뭐라고 할까.' '침입은 확실한데, 저게 말이 되나.' '죽는다는 말은 또 뭐고.' 채널이 예능에서 뉴스로, 뉴스에서 다시 홈쇼핑으로 넘어갔다. 리모컨을 쥔 손이 익숙한 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집에서 몇 년을 산 사람처럼.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대신 최대한 단호하게 말했다. "나가." "싫어요." "싫다니, 여긴 내 집이야." "알아요. 도윤 씨 집. 3층.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냉장고엔 우유랑 계란이랑, 상한 요구르트 한 개 있는 거." 나는 숨이 턱, 막혔다. "그, 그걸 어떻게……." "천사니까요." 은하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답했다. 그런데 나는 그 대답이 조금도 안심되지 않았다. 오히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스토커인가.' '집에 카메라를 심어놨나.' '아니면 진짜로…….' 나는 눈으로 거실을 훑었다. 창틀, 콘센트, 화분 밑. 카메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더 무서웠다. 카메라가 없다는 게, 다른 방법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그 순간, 방 안의 형광등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잠깐 깜빡였다. 나는 놀라 천장을 올려다봤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은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걸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향해 웃었다. "놀라지 마요. 저 그런 거 안 해요." "뭘 안 해." "전기 만지는 거요. 저 그런 능력 없어요." 능력이라는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말은, 뭔가 있다는 뜻이었다. 없다고 말하면서도 있다는 걸 전제로 말하고 있었다. '없다고 하면서 왜 그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거야.' '능력이라니. 무슨 만화 캐릭터야, 뭐야.' 나는 애써 정신을 붙잡고 다시 물었다. "신분증 있어?" "없어요." "학생증도?" "없어요." "주민등록번호는." "그런 거 저한테 없어요." "그럼 넌 대체 뭐야." "말씀드렸는데. 천사요."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 대화는 아무리 반복해도 제자리를 돌고 있었다. 마치 미로 안에서 같은 벽만 계속 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친놈 아니면 미친 여자애랑, 지금 진지하게 신분 확인을 하고 있는 거야.' '이게 말이 되냐.'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특유의 머뭇거림이나 시선 회피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너무 태연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좋아. 백 프로 미친 소리지만,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3개월 후에 어떻게 죽는데." 은하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사라졌다. 거실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뭔가 무거운 것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건 아직 정확히 몰라요. 다만……." "다만?" "막을 수 있는 죽음이라는 것만 알아요. 그래서 제가 온 거고요." 대답은 여전히 모호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애의 표정이,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운 얼굴과는 달랐다. 처음으로 진지해 보였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손끝이 소파 팔걸이를 살짝 쥐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짜면 어쩌지.' '아니, 말이 안 되잖아.' '그런데 냉장고 안까진 어떻게 안 거야.' '막을 수 있는 죽음이라니. 그럼 못 막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생각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엉켰다. 결국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그 애를 소파에 그대로 두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문고리를 잠그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금장치가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 애 앞에서 잠금장치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전기도 마음대로 하는 것 같은 애가, 문 하나 못 열 리 없지 않은가. 등을 문에 붙이고 서서, 나는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커다란 것이 목구멍을 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TV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3개월 후에 죽는다. 막을 수 있는 죽음. 그래서 왔다.' '그럼 그 죽음이 뭔지는 왜 안 알려주는 거야.' '아니, 애초에 저게 진짜 존재하는 거라면.' 그때, 문 밖에서 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 씨, 저 오늘 여기서 자도 돼요?"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문에 대고 소리쳤다. "안 돼!" "그래도 자야 하는데." "밖에서 자." "밖 추워요."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 상황이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침입자와 협상을 하고 있는 이 순간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하룻밤만 재워주면 내일 나가겠지.' '아니, 그러다 진짜 눌러앉으면 어쩌려고.' '근데 쟤가 진짜 천사면, 내가 쫓아낸다고 나갈까.' 생각이 다시 제자리를 돌았다. 나는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문에 등을 붙인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낮은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마치 이미 모든 게 결정된 것처럼,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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