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현관문을 열었을 때, 신발이 하나 더 있었다.
낯선 신발이었다. 하얀 스니커즈. 사이즈가 작았다. 여자 신발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우리 집엔 나 말고 아무도 살지 않는다. 부모님은 아버지 발령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학교 때문에 이 집에 혼자 남았다. 그게 벌써 반년 전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신발이 여기 있을 이유는, 상식적으로 하나도 없었다.
현관에 서서 신발을 내려다봤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새 신발이었다. 신발 코가 정확히 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것처럼.
도둑이 신발을 벗고 들어갈 리는 없었다.
'도둑인가.'
'그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나.'
'변태인가.'
'변태도 이렇게 신발을 얌전히 벗어놓진 않을 텐데.'
생각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나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들어섰다.
발끝에 힘을 주고 걸었다. 혹시라도 소리가 날까 봐, 숨도 조심히 쉬었다. 손에는 이미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언제라도 누를 수 있게, 화면을 켜둔 채였다.
거실 쪽에서 TV 소리가 났다.
익숙한 예능 프로그램 소리였다. 내가 즐겨 보던 채널.
그리고 그 애를 봤다.
핑크색 머리카락.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이었다. 거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내 리모컨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하얀 원피스 차림이었고,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다. 얼굴은 화가 날 정도로 예뻤다.
이상한 건, 그 원피스가 우리 집 어디에도 걸려 있던 적이 없다는 거였다. 처음 보는 옷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마치 이 집에서 십 년쯤 산 사람처럼, 소파에 몸을 깊이 묻고 있었다.
그 애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 왔네요."
목소리는 가볍고 경쾌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하는 것처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누르려 했다.
손가락이 숫자 위에서 멈췄다. 1, 1, 2. 세 자리를 누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신고하기 전에 얘기 좀 들어볼래요?"
손끝이 멈췄다. 그 애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동자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색깔이 이상했다. 보통 사람의 눈동자 색이 아니었다. 갈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애매한 빛깔이었다. 마치 조명에 따라 색이 바뀌는 유리알 같았다.
"저는 은하예요. 여은하. 천사거든요."
"……뭐?"
"천사요. 하늘에서 왔다는 그거."
나는 손에 든 휴대폰을 다시 쳐다봤다. 화면엔 아직 112가 그대로 떠 있었다.
'이거 뭐야. 진짜 미친 사람인가.'
'아니면 몰래카메라?'
'그런데 몰래카메라를 왜 우리 집에서 찍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엉켰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그 애는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이면 지금 나가는 게 좋을 텐데."
내 목소리는 낮았다. 최대한 침착하게 들리려고 애썼지만, 심장은 이미 갈비뼈를 두드리고 있었다.
은하는 개의치 않고 한 발짝 다가왔다.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장난 아니에요. 저 도윤 씨 지키러 온 거예요."
"내 이름을 어떻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애가 대답했다.
"이도윤. 열일곱 살. 3개월 후에 사고로 죽어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귀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났다. 진짜로 뭔가가 떨린 것 같기도 했다. 벽에 걸린 액자가 살짝 기울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잘그락, 하는 소리를 내며.
"……뭐?"
다시 나온 말은 그것뿐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몇 번이나 되짚어봐야 했다. 죽는다는 말. 3개월 후. 사고. 단어들이 낱개로 흩어져서 머리 속을 떠다녔다.
은하는 태연하게 웃었다. 마치 오늘 날씨를 말하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3개월 후에요. 정확한 날짜는 아직 못 알려드리지만, 사고로 죽어요. 그거 막으려고 제가 온 거고요."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낯선 여자가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있다는 사실보다, 그 여자가 던진 말이 더 크게 귓속을 울리고 있었다.
죽는다니.
3개월 후에.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나는 벽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근데 왜 이렇게 몸이 굳어.'
'저 여자가 뭔데. 뭘 안다는 거야.'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당신 뭐야, 진짜."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걸 감추려고 더 세게 말했다.
은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말씀드렸잖아요. 천사예요."
"천사가 왜 남의 집에 무단침입을 해."
말이 튀어나오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방금 그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면서도,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은하는 그 말에 살짝 웃음을 흘렸다. 재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열쇠가 없어서 그냥 들어왔어요. 죄송해요. 근데 저 진짜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나쁜 사람 아니라는 말은 나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야."
"오, 그런가요."
전혀 타격 받지 않은 얼굴로, 그 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채널을 넘겼다.
마치 이 집이 원래 자기 집인 것처럼,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TV 화면이 바뀌면서 뉴스가 나왔다. 앵커의 목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그 평범한 소리가, 지금 이 순간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3개월 후에 죽는다고.'
'저 여자 말을 믿을 이유는 없는데.'
'그런데, 왜 자꾸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거지.'
은하가 소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앉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리 와서 앉아요.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 애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더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요. 근데 3개월 남았다는 건 안 바뀌어요."
그 말이, 방 안의 공기를 다시 한번 흔들었다.
이번엔 액자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