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문제는 내가 너무 대놓고 한도현 주변을 서성거렸다는 데 있었다. 처음엔 그저 무심한 척,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눈길만 한 번씩 던지는 정도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며칠이 지나면서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자꾸 그 애 자리 쪽으로 향했고, 급식실에서도 굳이 한도현이 앉은 테이블 근처를 골라 앉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관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배회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결국 그 어색한 며칠간의 행동은 눈치 빠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선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윤서아와 늘 함께 다니는 정하늘과 김소연이었다.
"강태윤."
점심시간, 급식을 받아 자리로 돌아가려던 나를 정하늘이 불러 세웠다. 그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급식실의 소란스러움을 뚫고 정확히 내 귀에 꽂혔는데, 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애써 태연한 척 돌아보니 정하늘과 김소연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마주 보고 서 있었고, 그 뒤로 급식판을 든 아이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이 오히려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어… 나?"
"너 요즘 한도현 주변에 왜 그렇게 얼쩡거려?"
김소연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 말투에는 의심과 짜증이 반쯤 섞여 있었는데, 나는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지,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아니라고 잡아떼기에는 이미 며칠 동안의 행동이 너무 뻔했다. 손에 든 급식판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그 무게가 마치 지금 이 상황의 무게처럼 느껴져서 나는 저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 그냥… 같은 반이니까 인사 좀 하려고…"
"인사를 며칠씩이나 해?"
정하늘이 팔짱을 풀며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압박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뒤로 반 발짝 물러나며 시선을 피했는데, 그런 내 반응이 오히려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듯했다. 정하늘의 눈빛은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가웠고, 그 뒤에 서 있는 김소연은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너 뭔가 숨기고 있는 거지?"
김소연의 물음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목이 타는 걸 느끼며 애써 침을 삼켰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말을 잘못하면, 윤서아와의 비밀이 통째로 흔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끝이 떨려왔다. 급식실 안의 소음이 갑자기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았고, 오직 두 사람의 시선만이 나를 향해 또렷하게 좁혀오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런 거 없어. 진짜로."
"거짓말하는 거 티나거든."
정하늘이 팔을 뻗어 내 어깨를 툭 밀었다. 세게 밀친 건 아니었지만, 그 손짓에 담긴 압박감만큼은 확실히 전해져서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배어나는 걸 느꼈다. 도망칠 곳이 있을까, 아니 도망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나아질까. 머릿속이 뒤엉킨 채로 나는 그저 표정을 관리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혹시… 윤서아랑 무슨 일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어떻게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 건지, 이미 두 사람이 뭔가를 눈치챈 게 분명해 보였다.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 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걸 스스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순간 며칠 전 옥상에서 윤서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절대 들키면 안 돼. 알겠지?'
그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 그건 왜 물어?"
말끝이 흐려지는 걸 스스로도 느끼며, 나는 이미 답을 들킨 것 같은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눈치채이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이 온몸을 타고 번져갔다.
"서아가 요즘 좀 이상해서. 너랑 뭔가 얘기하는 것도 몇 번 봤고."
김소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살폈다. 그 시선이 어찌나 정확했는지, 나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이대로 계속 아니라고 잡아떼기만 하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사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급식판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나는 그 떨림을 숨기려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진짜 별거 아니야. 그냥… 부실 청소 문제로 얘기 좀 한 거야."
급하게 지어낸 변명이었지만, 나름 그럴싸하게 들리기를 바라며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정하늘과 김소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그 짧은 침묵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급식실의 시계 초침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흠… 뭐, 알겠어. 근데 진짜 이상한 일 있으면 우리한테도 말해."
정하늘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못을 박고는 김소연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었는데, 다행히 이번엔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거라는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급식판 위의 반찬이 다 식어버린 걸 그제야 깨달았지만, 입맛이 돌아올 리 없었다.
그날 오후, 나는 윤서아를 따로 불러 이 사실을 알렸다. 옥상 대신 이번엔 계단 뒤편의 구석진 자리였는데, 그곳은 늘 서늘한 공기가 감돌아서 대화를 나누기엔 오히려 안전하다는 이상한 안도감을 주는 장소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윤서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걔들이 눈치챘다고?"
"완전히는 아니고… 그냥 의심 정도."
"안 돼. 절대 들키면 안 돼."
윤서아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끊어졌다. 그 결연함 뒤에 숨겨진 절박함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는 이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한층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걸 느꼈다. 윤서아는 팔을 감싸 안은 채 벽에 기대섰고, 그 시선은 나를 지나쳐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해. 특히 하늘이랑 소연이 앞에서는."
"알겠어…"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비밀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생각과 동시에, 한도현을 관찰하며 느꼈던 그 서늘한 위화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며칠 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윤서아가 나에게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그냥 지켜보기만 해. 이상한 걸 눈치채면 바로 나한테 말해줘.'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부탁이었는지, 나는 이제서야 실감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정하늘과 김소연의 시선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도현이는 왜 그렇게 지켜보라고 한 거야?"
조심스럽게 묻자, 윤서아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흔들렸다. 대답 대신 시선을 피하는 그 모습에, 나는 오히려 더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말끝을 흐리며 돌아서는 윤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그 위화감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계단 위로 사라지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고,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더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