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수예부 부실은 본관 4층 끝, 미술실 옆에 딸린 작은 창고 같은 방이었다. 정식으로는 동아리실이라 불렀지만 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이었고, 회원이라고는 나 하나뿐이었으니 사실상 창고나 다름없었다. 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방과 후에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혼자 자수를 놓거나 라이트노벨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조용함이 좋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시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공간. 그게 내가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반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시선을 피하는 쪽이었고, 급식실에서도 혼자 먹는 게 편했으며, 쉬는 시간엔 늘 창가 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게 익숙했다. 그런 나에게 수예부 부실은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 작은 방. 나는 그 방을 사랑했다.
그날도 나는 늘 그랬듯 야간자율학습 시작 전 삼십 분의 틈을 이용해 부실로 향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운동화 밑창이 리놀륨 바닥에 닿으며 나는 작은 마찰음조차 유난히 크게 들렸는데, 4층 복도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형광등 불빛만 웅웅 소리를 내며 켜져 있었다. 그 소리마저도 익숙해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 시간, 이 복도, 이 정적. 전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손에 쥔 카드키를 문 옆 리더기에 대고 삑,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별생각 없이 문을 밀었다. 늘 그렇게 했으니까. 이 시간엔 언제나 비어 있는 방이었으니까. 문고리를 쥔 손에는 아무런 긴장도 없었고, 머릿속에는 오늘은 어떤 자수 도안을 완성할까 하는 시시한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순간, 눈앞의 광경이 내가 알던 익숙함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하얀 셔츠가 반쯤 벗겨진 채로 어깨선까지 드러난 등이 먼저 보였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허리선이 눈에 들어왔는데, 창문으로 스며드는 노란 저녁빛이 그 등을 타고 흐르는 걸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더니 곧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놀란 듯 몸을 틀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야 말았다.
윤서아였다.
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이, 웃음소리가 크고 화사해서 지나가기만 해도 향수 냄새가 남는다는, 그런 애가 왜 이 텅 빈 수예부 부실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건지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여기서, 왜 하필. 머릿속에서 물음표들이 정신없이 튀어 올랐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이곳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었는데. 나 말고는 이 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런데 왜, 어떻게, 그 애가.
"어… 그게…"
겨우 뱉은 말이라고는 그 정도였다. 그마저도 목이 잠겨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윤서아는 놀란 표정을 잠깐 짓다가 이내 재빨리 셔츠 앞섶을 움켜쥐며 몸을 반대로 돌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심장이 쿵쾅거려서 귀까지 뜨거워지는 걸 느꼈고, 손끝이 저릿해지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문고리를 놓쳐버렸다.
"미안, 미안해, 나는 그냥…"
말을 잇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뒤로 물러나 문을 다시 닫으려 했는데, 손이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문틀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다. 아, 정말 최악이다. 하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 안에서 윤서아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잠깐, 기다려!"
그 한마디가 어찌나 날카로웠는지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망칠 수도, 그냥 서 있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로 복도에 우두커니 선 채, 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기분을 느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복도의 형광등이 지지직, 낮게 떨리는 소리를 내는 게 그 순간만큼 크게 들렸던 적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몇 초였을 텐데도 체감상으론 몇 분처럼 늘어졌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이어졌다. 옷을 다시 정돈하는 소리인 듯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나는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손바닥에 남은 초승달 모양의 자국을 나중에야 발견하고서 얼마나 세게 힘을 주고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그럴 리가, 하필 이런 상황에, 어째서 나한테만.
머릿속으로 온갖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사이, 문이 다시 열렸다.
윤서아는 셔츠 단추를 다 채운 채로 문틀에 팔을 걸치고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표정에는 아까의 당황함 대신 어딘가 계산적인 빛이 서려 있었다. 그 눈빛이 낯설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하얗게 굳어 있던 얼굴이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 보였고, 그 낙차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너, 이름이 강태윤이지?"
뜻밖에도 그녀는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반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 내 이름을 알았던 걸까. 나는 그 애의 이름조차 급식실 명찰이나 조회시간 호명 때나 겨우 듣는 정도였는데.
"어, 어. 맞아."
겨우 대답을 하자 윤서아는 짧게 웃음을 흘렸는데, 그 웃음이 반가움이라기보다는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웃음이라 나는 괜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웃는 얼굴인데도 눈빛만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방금 본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명확한 경고가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당연하지, 절대 말 안 해. 나는 그냥 부실에 들어가려던 거였는데…"
"알아. 그러니까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말을 흐리며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라니. 그 말속에 숨겨진 조건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서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도대체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 윤서아가 팔을 내리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 애의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내일 얘기 좀 하자. 여기서."
그 한마디만 남기고 그녀는 부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문을 조용히 닫았다. 딸깍, 하는 그 작은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서 나는 한참을 그 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복도에 홀로 남아 그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머릿속을 붙잡고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나는 결국 그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자수도, 라이트노벨도 손에 대지 못한 채 텅 빈 책상 앞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았다.
같은 반 친구들이 하나둘 필기를 하고 문제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하얀 등과, 계산적인 눈빛과, 내일이라는 단어만이 맴돌았다.
내일. 그 짧은 단어가 어쩐지 앞으로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 같은 불안한 무게로 다가와서, 나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을 몇 번이나 뒤척이며 천장을 바라보았고, 눈을 감으면 그 애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방금 본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내일 얘기 좀 하자. 여기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설마 그냥 입단속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뿐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수록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고, 나는 결국 새벽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뜬눈으로 그 애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