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약속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한도현에게 접근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막막했다. 나와 그는 같은 반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접점도 없었고, 게다가 그는 언제나 인싸 무리에 둘러싸여 있어서 내가 다가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그의 자리 쪽을 흘깃거리다가도, 그 주위를 채운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결국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나는 윤서아의 협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며칠 동안 쉬는 시간마다 슬쩍 그의 자리 근처를 배회하는 짓을 반복했다. 교실 뒷문에서 앞문까지, 다시 앞문에서 뒷문까지. 마치 순찰이라도 도는 사람처럼 같은 길을 오갔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멈추지 못했다.
'네가 알아서 다리를 놓아. 그럼 나도 조용히 있어줄게.'
윤서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몇 번이나 재생되었는지 모른다.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나를 옭아맬 줄은, 처음엔 상상도 못 했다.
"야, 강태윤. 뭐 볼일 있어?"
한도현의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물었을 때, 나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의 눈빛에는 별다른 의심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고,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와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심장이 괜히 뛰었다. 그저 지나가다 걸린 것뿐인데도, 마치 뭔가를 들켜버린 사람처럼 손끝이 저릿했다.
그런 어색한 배회가 며칠째 이어지자, 나는 스스로도 이게 얼마나 수상하게 보일지 알면서도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걸까. 그냥 다가가서 '저기, 윤서아가 너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아니,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간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게 뻔했다. 나는 매일 밤 이불 속에서 온갖 시나리오를 그려보다가,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잠들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왔다. 체육 시간, 축구 경기 도중 한도현이 발목을 살짝 접질려 벤치로 물러났을 때였다. 운동장 저편에서 그가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마침 체육 창고에서 물통을 나르던 중이었고, 그 곁을 지나가야 했다. 심장이 벌써부터 두근거렸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물통 손잡이를 쥔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저기, 괜찮아?"
조심스레 말을 걸자 한도현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빛을 정면에서 마주했는데,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순간 말을 잃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웃음이 눈까지 닿지 않는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마치 입꼬리만 따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눈동자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괜찮아. 근데 너 누구지?"
반문이 담담했지만, 그 말투에는 나를 완전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무관심이 배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무관심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어떤 계산된 거리감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물통을 든 손을 어색하게 고쳐 잡았다.
"같은 반이야, 강태윤."
"아, 그래."
짧은 대답 후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는데, 그 순간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그는 밝고 친절한 이미지로 유명한 애였는데, 지금 이 순간 그의 눈빛에는 그런 밝음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만 표정을 꺼내 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서일까. 그저 발목을 삔 것뿐인데, 왜 저렇게 표정이 텅 비어 보이는 걸까.
나는 그 자리에 몇 초쯤 더 서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나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벤치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더 붙이지 못한 채 물통을 나르러 자리를 떴는데, 걸어가는 내내 등 뒤가 서늘했다. 방금 그 눈빛이, 그 짧은 순간의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도현을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는 언제나 유쾌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순간이면 그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 급식실에서 혼자 줄을 서 있을 때, 그런 짧은 틈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치 가면을 벗은 것 같은 무표정이 스쳤다. 나는 그 순간들을 목격할 때마다 숨을 죽이고, 마치 훔쳐보는 것 같은 죄책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확신을 느꼈다.
한번은 계단에서 그와 마주쳤는데, 마침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공허해 보였는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곧 뒤에서 친구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전환이 너무나도 매끄러워서, 나는 방금 본 것이 착각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특히 이상했던 건 그가 윤서아를 대하는 태도였다. 윤서아가 조금이라도 그의 시야에 들어오면, 그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굳혔다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 미세한 전환이 어찌나 빠른지 나조차 처음에는 그냥 착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목격하다 보니,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번은 급식실에서 윤서아가 실수로 한도현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윤서아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지만, 한도현은 짧게 대답만 하고는 곧바로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무심함이 어찌나 노골적이던지, 나는 윤서아의 얼굴에서 순간 스치는 서운함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젓가락을 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윤서아는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녀가 애써 삼키는 그 서운함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게가, 언젠가 나에게 그대로 전가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럴리가, 저렇게 인기 많고 친절하다고 소문난 애가 어째서 저런 눈빛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그저 짐작일 뿐,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나는 그 위화감을 마음 한구석에 눌러둔 채, 어떻게든 윤서아와 한도현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계속 짊어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나는 이렇다 할 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도현은 여전히 나를 그저 같은 반의 이름 없는 아이 정도로만 취급했고, 윤서아는 매일같이 나를 향해 눈빛으로 다그치듯 신호를 보내왔다. 그 사이에 끼어서, 나는 하루하루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부담감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던 중, 나는 등 뒤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었다.
"쟤 요즘 왜 저래? 한도현 근처만 맴돌던데."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다른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 있었다. 누구였는지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오싹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미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