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토요일 아침, 아버지가 차를 몰았다. 나는 뒷좌석에 짐을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 그게 내 짐의 전부였다. 뭘 챙겨야 할지도 몰라서 옷가지랑 세면도구만 대충 쑤셔 넣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풍경이 점점 논밭으로 바뀌었다. 아파트가 사라지고 비닐하우스가 늘어섰다. 그다음엔 비닐하우스마저 사라지고 그냥 산과 밭만 남았다. 100km라는 거리가 이렇게 먼 줄 몰랐다. 내비게이션 화면 속 남은 거리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가 답답할 만큼 느렸다. 두 시간 가까이 차를 타야 했다.
아버지는 별말이 없었다. 라디오만 낮게 틀어놓았다. 오래된 가요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나긋했다. 나는 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중간에 한 번, 아버지가 물었다.
힘들었냐.
나는 창밖을 보며 짧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게 아버지식 위로였다. 더 캐묻지 않는 것, 그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 서아에게 왜냐고 한 번도 제대로 묻지 못했던 건지도 몰랐다.
산 아래 마을에 들어서자 길이 좁아졌다. 흙길과 아스팔트가 반복됐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짐칸의 캐리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보이는 집들은 하나같이 낮고 오래됐다. 마당에 개를 묶어놓은 집도 있었고, 트랙터가 세워진 집도 있었다. 마침내 낡은 철문 앞에서 차가 멈췄다. 문 옆에는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마당엔 고추가 널려 있었다. 붉은 고추가 마당 가득 펼쳐진 채 마르고 있었다. 냄새가 매웠다.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걸어 나왔다. 흙 묻은 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채였다.
왔냐.
짧은 인사였다. 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고, 아버지는 곧 다시 차에 올라 돌아갔다. 차가 흙길을 되짚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매미 소리만 크게 들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할아버지와 나, 낡은 집 한 채와 산 하나.
할아버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살찐 거 보니 잘 먹고 산 모양이여.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냥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가 짐을 받아 들며 말했다.
방은 뒤채여. 씻고 나와. 저녁 먹자.
뒤채로 가는 길에는 장독대가 줄지어 있었다. 항아리마다 덮개가 씌워져 있었고, 그 옆엔 빗물받이 통이 있었다. 마루 밑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나를 흘긋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방은 작았다. 낡은 장판과 손때 묻은 문고리, 벽에 걸린 빛바랜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달력은 3년 전 것이었다. 넘기지 않고 그냥 걸어둔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자 산바람이 들어왔다. 도시의 매캐한 공기와는 다른 냄새였다. 흙냄새, 풀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냄새를 맡으며 서 있었다. 서아와 함께 걷던 학교 앞 거리의 매연 냄새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 냄새가 그리웠다.
저녁상은 단출했다. 된장국, 나물 반찬 몇 개, 잡곡밥.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 이렇게 먹을 거여. 군소리 말고.
나는 밥을 한 숟갈 떠먹었다. 짜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맛이었다. 서아랑 마지막으로 먹었던 패스트푸드 맛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기름지고 짠 맛이 입안 가득했던 게 언제였더라. 며칠 전 같은데 벌써 아득하게 느껴졌다. 된장국을 한 숟갈 더 뜨는데 목이 메었다. 나는 물을 마시고 아무 일 없었던 척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다 먹고 할아버지가 나를 마루에 앉혔다. 마루는 나무 냄새가 났다. 오래된 나무 특유의,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였다.
뭣 때문에 왔는지 말 안 해도 알겠다. 여자 문제구나.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담배 한 대를 태우며 말을 이었다.
니 애비도 그랬어. 어릴 때 여자한테 차이고 여기 와서 두 달 살았지. 살 빼겠다고 산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상상이 안 됐다.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가, 젊었을 때 누군가에게 차이고 이 산을 뛰어다녔다는 게. 나는 그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려 애썼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근데 아버지는 그 얘기 한 번도 안 했는데요.
할아버지는 픽 웃었다.
지 애비가 그런 걸 말하고 다니겠냐. 니가 지금 그런 거처럼.
할아버지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봤다.
근데 살 빼는 게 문제가 아니여. 니가 왜 살을 빼려는지가 문제지. 그 여자 다시 잡으려고 빼는 거면 관두라.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정확히 왜인지 나도 몰랐다. 서아를 다시 붙잡고 싶은 건지, 그냥 이 몸이 싫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그럼 왜 빼야 되는데요.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짧게 대답했다.
니 자신 때문에 빼야지. 남 때문에 빼면 그거 도로 살로 돌아온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다 태우고 재떨이에 눌러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일찍 자라. 내일부터 새벽에 깨울 거니께.
다음 날부터 할아버지는 나를 새벽에 깨웠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몸이 무거웠다. 할아버지는 이미 마당에서 장화를 신고 기다리고 있었다.
산 초입까지 걸어갔다 오는 게 첫 일과였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몇 발자국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땀이 났다. 할아버지는 앞서 걸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처음엔 다 그래. 며칠 지나면 몸이 알아서 적응해.
나는 대답할 기운도 없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산길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풀잎이 다리에 스칠 때마다 서늘한 물기가 느껴졌다. 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도시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소리들이었다.
산 초입까지 갔다 오는 데만 삼십 분 넘게 걸렸다. 돌아오는 길엔 다리가 후들거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보고도 별말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어쩌면 그게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밤에 휴대폰을 켰다. 신호가 약했지만 인터넷은 그럭저럭 됐다. 화면이 켜지자 밀린 알림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 서아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들어가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마치 손가락이 내 뜻과 상관없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최근 게시물에 그 농구부 선배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정하게 웃는 얼굴. 두 사람의 어깨가 가깝게 붙어 있었다. 좋아요 수가 벌써 200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댓글도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잘 어울린다는 말, 부럽다는 말. 나는 그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다가 문득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이걸 왜 보고 있는 걸까. 이 산속까지 와서, 이 시간에.
나는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이불 위에 던졌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방 안은 조용했다. 벽시계 초침 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다. 창밖으로 산의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낮에는 그렇게 밝던 산이 밤이 되니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낮고 긴 울음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몸은 분명 피곤했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서아의 웃는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선배의 얼굴도.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캄캄했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 어느 순간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일어나라. 산에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