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4화

그날 이후로도 남자들의 모습이 종종 학교 근처에서 보였다. 편의점 앞에 서 있기도 했고, 정문 맞은편 카페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확실한 게 없었으니까. 말을 꺼내는 순간,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수업 준비에 더 매달렸다. 밤늦게까지 교재를 뒤지고,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예시를 찾아 헤맸다. 학생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몇 곡이나 찾아 들었고, 아이들이 쓰는 짤도 몇 개 저장해두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스물다섯 살 먹은 남자가 열일곱 아이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이런 걸 하고 있다니. 그러던 어느 날, 5교시 수업 중이었다. 햇살이 창문으로 길게 들어와 교실 앞쪽 칠판을 비스듬히 물들이고 있었다. 윤서아가 계속 옆자리 학생과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칠판에 필기를 하다 말고 나는 그쪽을 흘긋 봤다. "윤서아 학생, 조용히 해주세요." "네네." 대답은 했지만 몇 분 뒤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옆자리 아이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참았다. 전자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애써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하지만 세 번째 지적에도 똑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쌤 저희 진짜 조용히 할게요." "네네, 알겠어요." 같은 말, 같은 웃음, 같은 무시. 칠판 앞에 선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걸 나도 느꼈다. 교실 뒤쪽에 앉은 몇몇 학생들도 흘긋흘긋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들이 묻고 있었다. 저 선생님, 또 저러다 그냥 넘어가겠지.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뭔가 안에서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윤서아."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만을 불렀다. 존댓말 없이.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칠판을 두드리던 분필 소리도, 종이 넘기는 소리도 뚝 끊겼다. 윤서아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수업 시간에 계속 방해하면 안 돼." "...쌤이 왜 갑자기 말을 놓아요?" 윤서아의 목소리에 당황함이 섞였다. 옆자리 아이도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전자펜을 꽉 쥐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며칠간 학교 앞을 서성이던 남자들 얼굴이,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불안이, 매번 웃으며 넘겼던 순간들이 뒤섞여 치솟았다. "매번 존댓말로 부탁하면 들어줄 것 같아? 벌써 몇 번째야." "쌤, 갑자기 왜 그래요." 윤서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전자펜을 교탁 위로 세게 던졌다. 탁. 펜이 부러지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교실이 완전히 정지했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창밖에서 새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한 번도 이런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나는 너희들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 없다고 생각해." 목소리가 낮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왔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존중은 해줘야지." 교실 안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윤서아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에 처음으로 다른 감정이 스쳤다. 놀람, 그리고 아주 잠깐의 무언가. 미안함일까, 아니면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경계심일까.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부러진 전자펜을 주워 교탁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부러진 몸통 사이로 심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수업 계속하겠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칠판에 다시 분필을 대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글씨를 이어 썼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평소라면 종이 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터졌을 텐데, 그날은 종이 울리고 나서도 다들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그날 이후 교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나도 느꼈다. - 방과 후, 나는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컵에 물을 따라 마셨는데도 목 안이 계속 뻑뻑했다. 책상 위에 쌓인 채점지들을 괜히 각을 맞춰 정리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박정수 선생님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들었어요. 전자펜 던진 거." 소문이 벌써 교무실까지 퍼진 모양이었다. "...네." "잘했어요." "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화를 참지 못했을 뿐이에요." 나는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애들 앞에서 그렇게 흥분한 거,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화를 참지 못한 게 아니라, 마침내 흔들리지 않은 거예요." 박정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동안 너무 참았던 거예요. 애들도 다 알아요, 그거." 그 말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윤서아의 얼굴, 그 눈빛에 스쳤던 낯선 감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정말 그 애를 겁먹게 한 건 아닐까. 아니면 그냥, 처음으로 나를 다르게 본 걸까. 정다은과 소율이 교무실 앞을 지나가다 나를 발견했다. "쌤, 오늘 완전 쎘어요." 소율이 엄지를 세워 보였다. "저희 반까지 소문 다 퍼졌어요. 윤서아 완전 얼음 됐다면서요?" "그렇게 크게 소문날 일은 아닌데..." "안경 벗으면 더 멋있을 텐데, 그건 아직도 아쉬워요." 정다은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쌤, 요즘 애들 노래 듣는 거 다 들었어요. 귀엽던데요." 소율이 킥킥거리며 정다은을 따라 사라졌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이 순간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이 아이들 앞에서는 화를 낼 일도, 겁먹을 일도 없었다.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됐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윤서아가 혼자 서 있는 게 보였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웃음기 없이, 어딘가 굳어 있는 얼굴. 주변을 두 번쯤 살피더니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무언가를 쓰다가 지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부터 학교 근처를 서성이던 남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아니, 확실한 게 없었으니까. 나는 애써 그 생각을 밀어냈다. 하지만 윤서아를 향한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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