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옆집 소녀는 밤에만 버튜버

5화

[강태준 시점]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저녁 식사 자리였다. 된장국 냄새가 부엌 가득 퍼져 있었고, 아버지는 국을 뜨며 나를 슬쩍 살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그냥 그랬어." 나는 밥을 몇 술 뜨며 대답했다. 사실 그냥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 어젯밤 벽 너머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밝고 활기찬, 다섯 명의 시청자에게조차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그 목소리. "옆집 딸이랑 같은 반이라고 했잖아. 인사는 했어?" 나는 숟가락질을 멈췄다. 심장이 살짝 빨라지는 걸 느꼈다. "인사는 안 했는데. 그런데 아빠, 그 애 이름이 뭐야?" "윤소은이라고 하던데. 왜, 궁금해?" "그냥." 확인이 됐다. 옆집 딸과 반 친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완전히 굳어졌다. 그렇다면 어젯밤 그 방송, 그 목소리, 그리고 오늘 아침 나를 보고 도망치듯 시선을 피한 그 눈빛까지, 전부 하나로 연결됐다.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한순간에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궁금해도 캐묻지 않고, 아들이 말하기 싫어하면 그대로 넘어가주는. 나는 그 무심함이 고마울 때도 있었고, 답답할 때도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어젯밤 문 너머에서 들었던 그 방송, 그리고 아침에 마주쳤을 때 그녀가 지었던 표정. 그 두 가지가 자꾸만 겹쳐졌다. 나는 그날 밤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감추고 있는 걸 굳이 들쑤셔서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유나와의 일로도 이미 충분히 지쳐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비밀까지 짊어질 여력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자꾸만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밝고 활발한, 그러나 낮에 학교에서 본 구부정한 자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 같은 그 목소리가.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윤소은이었다. 검은 머리로 얼굴을 반쯖 가린 채,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웠는데, 그녀는 얇은 카디건 하나만 걸친 채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저기..." 그녀의 목소리는 어젯밤 문 너머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이 낮고 떨렸다. 확실히 다른 사람 같았다. 어젯밤의 그 밝은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조심스럽고 위축된 목소리. "어제 밤에... 죄송했어요. 소리가... 많이 컸을 텐데." 나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이렇게 아침부터, 직접 찾아와서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 밤새 마주칠까 봐 걱정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이거..." 그녀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받아 안을 열어보니 작은 이어폰 세트가 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헤드셋 형태의 마이크였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이었다. "이게 뭐예요?" "제가... 원래 헤드셋을 써야 했는데, 그날 배터리가 없어서 스피커로... 그래서 소리가 크게 났던 거예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봉투를 억지로 내 손에 쥐여줬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건 그냥... 죄송한 마음에 드리는 거예요. 안 받으셔도 되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새 헤드셋을 사와서 사과까지 하는 건, 단순한 이웃 간의 소음 문제로 치기엔 지나치게 과한 대응이었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그 방송이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무언가였다는 뜻이겠지. "아니에요. 그...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요." 나는 그 봉투를 받아 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묻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과는 다르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방송...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얘졌다. 정확히는,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순식간에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발밑에서 갑자기 바닥을 걷어차버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어제 들었어요. 루비, 라고 하시던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마치 얼음물이 쏟아진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숨소리조차 멈춘 것 같았다. 손에 쥐고 있던 가방끈을 있는 힘껏 움켜쥐는 게 보였다. "저는 그냥... 방음이 안 돼서, 지나가다 들었을 뿐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말할 생각도 없고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를 위협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느끼고 있을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나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도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도, 아세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은 몰라요. 저도 그냥 우연히 알게 된 거고요."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까 걱정됐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듯 숨을 삼키며 겨우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오랫동안 그런 순간을 견디는 법을 훈련해온 사람처럼. "부탁이에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다섯 명의 시청자 앞에서는 그렇게 밝고 활발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처럼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몸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한 명은 핑크색 머리에, 밝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 다른 한 명은 지금 내 앞에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두 손을 떨며 애원하는 사람. "말 안 할게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완전히 안심한 표정은 아니었다.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내가 말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말을 잇다가 잠시 멈췄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됐다.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지도 모를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뱉었다. "방송 잘 하시던데요. 목소리도 좋고, 시청자들한테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것도 느껴지고요." 그녀의 눈이 커졌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던 모양이었다. "...진짜로요?" "네. 다섯 명이라고 창피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시던데. 그게 좋았어요."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뭔가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놀람, 그다음엔 의심,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주 희미한 안도. 그 짧은 순간 그녀의 표정이 세 단계를 거치는 걸 나는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가야 해요, 학교." 그녀는 갑자기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몸을 돌렸다.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내려다봤다. 헤드셋이 든 봉투였다. 사과의 증표로는 조금 과한 것 같았지만, 그녀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그만큼 그 비밀은 그녀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그날 학교에서 나는 소은을 몇 번이나 힐끗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구부정한 자세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앉아 있었다. 어깨는 늘 안으로 말려 있었고, 시선은 항상 책상 아래를 향해 있었다. 마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사람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그 밝고 활발한 핑크색 머리의 루비를 떠올리게 됐다. 같은 사람이라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두 모습은 극단적으로 달랐다. 쉬는 시간, 박현우가 다시 그녀 이야기를 꺼냈다. "야, 근데 저 애 좀 신경 쓰이지 않냐? 왜 그렇게 자세가 안 좋아. 목이 아파 보일 정도야." "그러게." 나는 짧게 대답했다. 박현우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저번에 급식실에서도 봤는데, 혼자 먹더라. 친구가 없나 봐." 박현우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투였지만, 나는 그 말이 신경 쓰였다. "그럴 수도 있지." "넌 뭔가 신경 쓰이는 거 있어?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던데." "아니, 그냥." 나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박현우는 더 캐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다행이었다. 이 이상 파고들면 뭔가 실수로 말이 새어 나갈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날 오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종례가 끝나고 복도로 나서던 나는, 교실 뒤편에서 몇몇 여자애들이 소은의 노트북 화면을 힐끗거리며 수군대는 걸 봤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저거 뭐야, 방송 채널 아니야?" "핑크 머리 캐릭터... 어? 저거 걔 목소리 아니야?" 소은의 노트북 화면에 열려 있던 창은, 다름 아닌 루비의 최근 방송 클립이었다. 그녀가 실수로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채 화면을 켜둔 것이다. 화면 속에서는 핑크색 머리의 캐릭터가 여전히 밝게 웃으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그녀의 얼굴이 무너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느낌이었다. 저 화면을 지금 당장 꺼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애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 화면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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