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옆집 소녀는 밤에만 버튜버

3화

[강태준 시점] 벽 너머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오늘은 좀 늦게 켰죠? 학교에서 좀 늦게 왔어요. 헤헤." 그 웃음소리가 얇은 벽을 뚫고 그대로 넘어왔다. 나는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방음이 안 되는 방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게 슬슬 짜증스러웠다. 안 그래도 실연으로 뒤숭숭한 밤에, 이 뜬금없는 소음까지 더해지니 신경이 곤두섰다. 이 방으로 이사 온 지 이제 두 달째였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복도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마다 저 목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그냥 텔레비전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라기보다는 여러 명과. 아니, 정확히는 몇 명 되지도 않는 채팅창의 사람들과. "오늘 시청자 수가 좀 줄었네요. 다섯 명이시네. 그래도 다섯 분이나 계셔서 감사해요!" 다섯 명. 그 숫자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얼마나 작은 방송인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다섯 명이라는 숫자를 창피해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목소리. 나는 그 순간 유나를 떠올렸다. 십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며 감사하다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 방송 화면 속에서는 항상 웃고 있었고, 항상 다정했다. 카메라가 꺼지면 그 웃음이 순식간에 지워진다는 걸, 나는 헤어지고서야 알았다. 그때는 진심처럼 보였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진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애초에 나한테 보여준 얼굴 자체가 방송용이었을지도. 그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자 속이 쓰렸다. 헤어진 지 겨우 일주일. 상처는 아직 딱지도 앉지 않았는데,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가 자꾸 그 상처를 문질렀다. "오늘은 뭐 하고 놀까요? 스토리 모드 이어서 할까, 아니면 그냥 잡담할까?" 목소리의 주인공, 방송의 이름은 '루비'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채팅창에서 누군가 그녀를 그렇게 불렀는지, 그녀가 스스로 대답을 이었다. "루비, 오늘도 예쁘다는 말 감사해요! 근데 저 진짜 안 예뻐요, 다들 화면 보정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서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너무 밝고, 너무 과장되어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쓴 것처럼. 억지로 끌어올린 음정 같기도 했고, 연습한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재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오늘 학교에서 좀 힘든 일이 있었는데요. 아, 이건 얘기 안 할래요. 헤헤, 죄송해요, 재미없는 얘기 하려다가 참았어요." 힘든 일. 그 말이 걸렸다. 뭐가 힘들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서둘러 웃음으로 덮어버리는 화법. 나는 그런 화법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 어디서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익숙했다. 한 시간쯤 그 소리를 들었을까. 나는 도저히 잠들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벽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다음 날 학교도 가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내일 1교시부터 수학이었다. 잠을 못 자면 그 수업은 그대로 날리는 거였다. 항의를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집이라면 어차피 벽 하나 건너인데, 초인종을 누르고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냥 문 앞에서 몇 마디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무거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낯선 사람의 문을 두드린다는 게 원래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을 뿐이었다. 나는 잠옷 위에 후드를 걸치고 현관을 나섰다. 복도는 조용했다. 센서등이 내가 나오는 걸 감지하고 딸깍, 하고 켜졌다. 형광등 불빛 아래 복도 벽지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래된 빌라에는 이런 얼룩이 유독 많았다. 옆집 초인종 앞에 서서 손가락을 갖다 대려던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시 귀에 박혔다. "제가 원래 이렇게 조용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방송할 때는 좀 다르게 말하게 돼요. 그게 저한테 편하달까." 손가락이 그대로 멈췄다. 조용한 사람. 원래는 조용한 사람. 그 말이 낯설게 걸렸다. 어쩐지 그 표현이, 오늘 교실에서 본 그 전학생을 떠올리게 했다. 검은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와 조그맣게 이름을 말하던 그 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완전한 침묵. 방송 소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여전히 정적이었다. 발끝으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며 기다렸다. 시간이 이상하게 느리게 흘렀다. 문 안쪽에서 무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마우스 클릭 소리, 뭔가를 급하게 끄는 듣한 짧은 잡음. 방송을 끄는 소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순간, 문 안쪽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고, 겁먹은 듯한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도어체인이 걸리는 듬한 작은 쇳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문 너머에서 작게, 정말 작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방금 전까지 밝고 높았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떨리는, 겨우 입 밖으로 밀어낸 듯한 목소리였다. 방송 속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웃던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작았다. 나는 문에 대고 말했다. "소리가 좀 커서요. 조금만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네... 네, 죄송해요." 대답은 짧고 서둘러 끊겼다. 문 너머에서 숨을 참는 듣한 정적이 느껴졌다. 마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거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뭐라도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대로 돌아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냥 이웃한테 조용히 해달라고 한마디 한 것뿐인데, 왜 이렇게 두근거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에 돌아와서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대신 휴대폰을 켜고, 방금 들었던 방송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루비 버튜버' 몇 개의 결과가 떴다. 그중 하나, 핑크색 머리를 한 캐릭터의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필 사진 속 캐릭터는 크고 동그란 눈에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독자 수는 초라할 만큼 적었다. 세 자릿수도 채 되지 않았다. 최근 방송 목록을 눌러보니 매일, 정말 거의 매일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방송 시간은 대부분 새벽 열두 시부터 두 시 사이였다. 학교 다니는 나이대라면 절대 정상적인 시간은 아니었다. 방송 화면 속 루비는 대담한 의상을 입고 활발하게 웃고 있었다. 채팅창의 시청자 수는 항상 다섯 명 안팎이었다. 몇 개의 다시보기를 눌러 재생해봤다. 목소리 톤은 항상 높고 밝았다. 웃음소리도 늘 비슷한 타이밍에 터졌다. 마치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것처럼. 댓글 창을 내려봤다. 몇 개 안 되는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루비님 목소리 오늘 좀 다르지 않아요? 감기 걸리셨나." 그 댓글에 루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무언가 이상한 확신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조용한 사람. 원래는 조용한 사람.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낮고 떨리던 그 목소리와, 화면 속에서 밝게 웃던 목소리가 자꾸 겹쳐졌다. 같은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른 두 개의 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어젯밤의 그 낮고 떨리는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었다. 잠을 세 시간도 못 잤는데도 이상하게 정신은 또렷했다. 교문을 지나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늦췄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아니면 뭔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윤소은이 보였다. 여전히 긴 머리로 얼굴을 반쯨 가린 채, 구부정한 자세로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녀의 옆얼굴에 반쯤 걸쳐 있었는데, 그녀는 그 빛조차 신경 쓰이는 듯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 그녀는 내 시선을 느낀 듯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손끝으로 펜을 만지작거리는 그 손가락이 유난히 가늘었다. 그때 어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저기요... 밤이 늦어서요... 네, 죄송해요. 같은 목소리였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억양, 말끝을 흐리는 습관, 죄송하다고 말할 때 미세하게 떨리는 그 톤. 전부 어젯밤 문 너머에서 들었던 그것과 겹쳤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 그 확신을 지우지 못했다. 이 학교에 옆집 사람이 다닐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같은 반에? 그런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걸까. 박현우가 옆자리에 앉으며 나를 쿡 찔렀다. "뭘 그렇게 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눈은 이미 그녀를 향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잠 못 잤어? 눈 밑에 다크서클 장난 아닌데." "그냥, 옆집이 좀 시끄러웠어." "옆집?" 박현우가 별생각 없이 되물었다. 나는 대답하려다 말을 삼켰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옆집에서 밤마다 방송하는 목소리가 우리 반 애 목소리 같다고, 그렇게 말하면 박현우가 뭐라고 반응할지 상상이 갔다. 웃긴 소리 하지 말라고, 아니면 그냥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넘길 게 뻔했다. 수업이 시작되고도 나는 자꾸 창가 자리를 힐끔거렸다. 윤소은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필기하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내 착각일지도 몰랐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로 나섰을 때, 나는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 좁은 복도에서 서로 지나치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힐끗 올려다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것 같았다. 경계, 혹은 두려움 같은 것. "저기." 내가 부르자 그녀는 그대로 멈춰 섰다. 얼굴은 여전히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 있었다. "어제..."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녀의 어깨가 눈에 띄게 굳었다. 겨우 그 한 단어에, 그녀는 이미 뭔가를 짐작한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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