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서유나 시점]
태준이 마지막으로 보였던 표정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조금 웃음이 난다.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밟혀 죽어가는 벌레 같은 표정. 십 년 동안 나를 그렇게 따라다녔으면서, 정작 내가 진심을 말하는 순간엔 그 표정 하나밖에 지을 줄 몰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봐온 얼굴인데도, 그 순간의 표정만큼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낯설고, 그래서 더 우스웠다.
기생충 같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그 애는 정말로 기생충 같았다. 내가 뭘 요구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편집을 해오고, 알아서 썸네일을 만들고, 알아서 새벽까지 자막을 검수해왔다. 처음엔 그게 고마웠다. 솔직히 말하면 편했다. 무보수 인력을 부려먹는 건, 어떤 사업가라도 좋아할 조건이었으니까.
처음 채널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구독자 백 명도 안 되던 시절, 나는 카메라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라 우물쭈물했었다. 그때 태준이 옆에서 대본을 짜주고, 카메라 각도를 잡아주고, 방송이 끝나면 항상 몇 시간씩 걸려 편집본을 만들어 보내줬다. 학교 끝나고 학원도 안 가고 우리 집 앞 놀이터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그 애의 옆모습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지도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애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다. 방송이 끝나면 항상 메시지를 보내던 그 애. "오늘 발음 실수한 부분 있어서 다음엔 조심해", "이 부분 좀 더 자연스럽게 웃으면 좋을 것 같아" 같은 조언들. 처음엔 도움이 됐지만, 언젠가부터는 마치 나를 감시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성장할수록, 그 애의 존재는 점점 내 발목을 잡는 추처럼 느껴졌다.
구독자가 오만을 넘었을 때, 태준은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사 왔다. 초 다섯 개를 꽂아서, 오만이니까 오 개래, 하면서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부담스러웠다. 그 애가 내 성공을 자기 일처럼 기뻐할 때마다, 나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마치 내 인생의 절반을 그 애가 소유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건 사랑받는 기분이 아니라, 옭매이는 기분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훈 오빠였다. 남성 버튜버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속하는 사람. 그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 알았다. 지훈 오빠의 소속사는 나를 정식으로 데뷔시켜줄 수 있다고 했다. 매니저도, 편집자도, 전문 인력으로 다 갈아치울 거라고 했다.
처음 지훈 오빠와 콜라보 제안을 받았던 날 밤, 나는 잠도 못 자고 그의 채널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구독자 이백만. 십만 남짓한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였다. 그 숫자를 보고 있으니, 태준이 만들어준 소박한 썸네일과 조촐한 편집본들이 갑자기 초라해 보였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 정도로는 절대 저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문제는 태준이었다. 그 애가 있으면 소속사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았다. 무보수로 일하는 남자애가 매니저 행세를 하고 있다니, 그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소속사 담당자가 지나가듯 물었던 말도 떠올랐다. "그 편집하는 친구, 계약 관계인가요? 좀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정리해야 했다. 확실하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며칠 동안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문자로 할까, 전화로 할까, 아니면 직접 만나서 말할까. 결국 직접 만나기로 했다. 어설프게 흔적을 남기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확실하게 끝을 내야 했다.
"우리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수십 번 연습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어투로 말해야 할지, 어디에서 시선을 피해야 할지까지도. 진심처럼 보이되,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확실히 못을 박아야 했다.
태준은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정리라니, 뭘?"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그 순진한 얼굴을 보며 오히려 짜증이 났다.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하나, 싶었다.
"기생충 같잖아, 그런 관계는."
그 말을 할 때 나는 태준의 눈을 봤다. 그 눈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다 끝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기생충 같다고?"
그 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애는 몇 번이고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돌아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미안했다. 정말이다. 하지만 그 미안함보다 훨씬 큰 안도감이 더 밀려왔다. 이제 그 애의 시선에서, 그 애의 기대에서, 그 애의 조용한 짝사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태준이 나를 짝사랑한다는 걸. 초등학교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전부터.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 애는 좋은 애였지만, 그저 좋은 애일 뿐이었다. 성공한 사람 옆에 세워두면 잘 어울리는 그런 애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애의 마음을 이용했던 것 같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그 애의 애정이 편했으니까. 대가 없이 일해주는 사람, 대가 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필요할 때는 곁에 두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것. 그게 나쁘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때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훈 오빠와의 첫 콜라보 방송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소속사에서는 나를 이번 달 안에 정식으로 계약할 예정이라고 했다. 십만이 넘는 구독자에서, 이제는 백만을 향해 갈 시간이었다.
태준 같은 애는, 그 여정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지훈 오빠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유나야, 계약서 초안 보냈어! 확인해줘 :) 우리 이제 진짜 잘 나갈 거야."
나는 답장을 보냈다. 이모티콘을 잔뜩 붙여서.
"응! 나도 너무 기대돼 ㅎㅎ 오빠 믿고 갈게!"
계약서를 대충 훑어보니, 낯선 단어들이 많았다. 정산 비율, 독점 조항, 위약금. 잘 이해가 안 됐지만, 상관없었다. 지훈 오빠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고는 태준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이후로 그 애는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화창을 스크롤하며 십 년치의 메시지들을 훑어봤다. 초등학교 때 보낸 유치한 이모티콘들, 중학교 때 시험 잘 봤다고 자랑하던 메시지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방송 이야기로 가득 찬 대화들. 그 긴 기록을 보고 있으니 잠깐 손이 멈췄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나는 그 대화창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차단 버튼을 눌렀다.
십 년의 기록이, 클릭 한 번으로 사라졌다.
조금 허전하긴 했다. 손끝이 살짝 떨렸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 허전함도, 지훈 오빠와의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면 금세 사라질 감정이었다.
"우리 이제 새 채널 콘셉트로 가볼까? 너 원래 이미지보다 좀 더 성숙한 느낌으로."
지훈 오빠의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뭐든 오빠가 원하는 대로!"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이상하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동네 놀이터에서 편집이나 배우는 애가 아니었다. 진짜 성공을 향해 가는 사람이었다.
태준이 지금쯔음 뭘 하고 있을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정말로,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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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시점]
점심시간, 나는 급식판을 들고 박현우와 마주 앉았다.
식판 위의 국이 식어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숟가락을 들 생각을 못 했다. 머릿속이 어제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야, 어제부터 계속 뭘 그렇게 신경 써?"
박현우가 물었다. 나는 잠시 젓가락을 만지며 대답을 고민했다. 옆집 이웃이 무명 버튜버 같다는 얘기를, 그것도 그게 우리 반 전학생인 것 같다는 얘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말을 꺼내는 순간 박현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도 뻔했다.
"저기, 윤소은이라는 애 알지."
"어제 온 전학생? 알지, 왜."
"어떻게 생각해, 그 애."
박현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숟가락으로 식판을 두드리면서까지 웃어서, 옆자리 애들이 힐끔거릴 정도였다.
"왜, 관심 있어? 야, 걔는 얼굴도 잘 안 보여주잖아. 머리로 다 가리고. 좀 특이한 애 같던데."
"그러니까 얼굴을 자세히 본 적 없다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왜?"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어제 초인종 너머로 들었던 그 목소리, 문 틈으로 살짝 본 그 실루엣, 그리고 오늘 아침 등교하며 마주쳤던 낯익은 걸음걸이까지. 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느낌이었지만, 확신은 아니었다. 아직은.
"내가 보기엔, 걔 얼굴 가릴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박현우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예쁘다는 거야?"
"몰라. 그냥 그런 느낌이야."
"야, 너 실연당하고 벌써 눈 돌아간 거냐?"
그 말에 가슴 한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실연. 그 단어를 들으니 어제 유나가 지었던 그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기생충 같잖아, 그런 관계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맴돌았다. 마치 못을 박듯 정확하게, 그리고 차갑게.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신경 쓰는 건 그런 종류의 관심이 아니었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그런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뭔가 더 근본적인,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학 온 첫날부터 소은은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늘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만 들여다봤고, 누가 말을 걸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어젯밤,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을 때 들렸던 그 목소리. 잘못 눌렀어요, 죄송합니다, 하고 서둘러 사라진 그 목소리가 유나의 것과 너무 비슷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야, 밥이나 먹어. 국 다 식겠다."
박현우가 내 앞에 놓인 식판을 가리켰다. 나는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지만,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교실 문 쪽에서 소은이 조용히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전히 얼굴은 반쪽 가려진 채였다. 긴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눈매가, 낮게 숙인 고개 사이로 보이는 콧대의 각도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잠깐 나와 마주쳤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뭔가가 스쳤다. 혼란, 그다음엔 경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짙은 두려움.
그녀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고 자리로 걸어갔다. 걸음이 평소보다 빠르고 불안정했다. 마치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어 있었다.
박현우가 옆에서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도, 나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방금 그 눈빛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확신했다.
어젯밤 초인종 너머의 목소리, 그리고 지금 저 애의 두려운 눈빛.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십 년을 함께 봐온 얼굴이었다.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하나까지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앞머리 사이로 숨은 얼굴이, 자꾸만 그 사람과 겹쳐 보였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유나는 대체 왜, 이런 곳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