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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별관에서의 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이 조용한 나날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방과 후 종이 울리면 가방을 챙기고, 일부러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고, 계단을 두 번 정도 오르내리며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야 별관으로 향하는 게 어느새 몸에 익은 습관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눈치챌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이렇게 뜬금없는 순간에 닥칠 줄은 몰랐다. 그날의 급식실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국을 뜨는데, 맞은편에 앉은 준호가 턱을 괴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 숟가락을 움직였다. "너 요즘 방과 후에 어디 가?"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디 안 가는데." "거짓말하지 마. 며칠 전에 별관 쪽에서 나오는 거 봤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한 박자를 건너뛴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다 내 마음을 배신할 것 같아서, 숟가락을 든 손끝에 괜히 힘을 주었다. "별관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거지. 아무것도 없는 데를 왜 매일 가냐고." 준호의 눈빛에는 순수한 궁금증과 약간의 의심이 섞여 있었다. 그 눈빛이 딱히 나쁜 의도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넘어가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서둘러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냈다. "거기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아. 도서관은 사람 많잖아." "공부? 네가?" 준호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친구도 슬쩍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그 반응이 억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였나, 새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공부할 때 있거든." "그래서 뭐 공부하는데." "영어 단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국물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준호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마침 종이 울리는 바람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는 불안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그날 오후, 별관으로 향하는 길에 하필이면 준호와 그 친구 몇 명이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복도 끝에서 마주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늦추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어? 진짜 별관 가네." 준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가리켰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서윤이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진짜 공부하러 가는 거였어?" "그렇다니까."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 최악의 상황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서윤이 안에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도, 이 무리를 자연스럽게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머릿속으로 온갖 변명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어느 것도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았다. "거기 자리 별로 없어. 그리고 먼지 엄청 많아서 알레르기 있는 사람은 힘들걸." "난 알레르기 없는데." 준호의 친구 하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점점 더 다급해졌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이 무리가 3층까지 올라갈 판이었다. 서윤이 창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상상만으로도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사실… 나 거기서 좀 이상한 소리 들었었거든." "이상한 소리?" 준호의 눈이 커졌다. 나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일단 뱉은 말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뭔가 발소리 같은 게 나. 근데 아무도 없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밑도 끝도 없이 지어낸 그 말에 준호와 친구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이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반반이었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진짜야?" "응. 그래서 나도 좀 무서웠는데, 그냥 조용해서 참고 다니는 거야." "에이, 거짓말이지?" "안 믿기면 직접 가보든가." 일부러 대범한 척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속으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무심하게 보이려 애썼다. 준호는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짓다가, 친구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중 한 명이 슬쩍 팔을 잡아끄는 게 보였다. "됐어, 안 가. 괴담 있는 데는 관심 없어." 다행히 그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동안 심장이 아직도 쿵쿵거렸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낡은 계단 난간을 손으로 훑으며 세 층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3층에 도착하자 서윤이 창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서윤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펴놓은 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늦어서 심심했는지, 서윤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문을 열자 고개를 돌렸다. "늦었네." "미안, 좀 일이 있었어." 숨을 몰아쉬며 대충 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숨이 넘어가."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준호와의 대화, 별관까지 따라오려던 무리, 그리고 급하게 지어낸 괴담까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직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져서, 말이 조금 엉키기도 했다. 서윤은 이야기를 듣더니 처음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마지막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괴담? 진짜?" "급해서 그냥 아무거나 지어냈어." "발소리 나는데 아무도 없다니, 그거 완전 클리셰잖아." "통했으니 됐지." 서윤이 웃는 모습을 보니, 아까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오후의 빛이 서윤의 웃음 위에 부드럽게 얹혔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방금까지 곤두서 있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숨기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그리고 언제 들통날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다음에도 이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근데 이렇게 계속 숨기는 거, 괜찮을까?" 내 물음에 서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웃음기가 가시고, 순간 창밖을 향하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냥… 걱정돼서." 서윤이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 "사실 나도 요즘 좀 불안해. 학생회 회장 선거가 다음 학기에 있는데, 부회장 자리 놓고 새로 도전하는 애가 있어서." "도전자?" "응. 이름은 아직 말 안 할래. 근데 걔가 좀… 심상치 않은 애야." 서윤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그 변화가 평소 학교에서 보던 완벽한 부회장의 모습과도, 조금 전까지 별관에서 웃던 모습과도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그 낯선 얼굴을 마주하며, 서윤에게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봐." "나중에. 지금은 그냥… 이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모르겠어서." 서윤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창밖으로는 이미 해가 낮게 기울고 있었고, 교정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이 별관 안, 서윤과 나 사이에만 흐르는 이 시간이 유리처럼 얇고 투명하게 느껴졌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나는 그 순간, 우리 둘 사이의 이 조용한 시간이 곧 어떤 변화를 맞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서윤이 말한 그 도전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올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서윤의 옆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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