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 부회장의 충전모드

3화

개교기념 행사 당일, 강당은 전교생과 학부모, 교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조명이 환하게 강당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나는 뒤쪽 자리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이상하게 초조했다. 행사장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새로 깐 카펫 냄새와 방향제 냄새, 그리고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뒤섞인, 어딘가 들뜨면서도 답답한 공기였다. 나는 프로그램 순서지를 손에 쥔 채 몇 번이나 서윤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눈으로 훑었다. 학생회 부회장 축사. 짧은 세 글자짜리 순서였지만, 나는 왜인지 그 줄만 눈에 밟혔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벌써 지루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달리 무대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초조하지. 별관에서의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서윤이라는 아이가 완벽해 보이는 껍데기 안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나는 그 애를 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서윤의 순서가 다가왔다. 학생회장이 먼저 짧은 인사를 마치고, 곧이어 서윤이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완벽한 자세, 완벽한 걸음걸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교복 재킷의 단추까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걸음마다 각도가 정해진 것처럼 정확했고,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다.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생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학생회 부회장 한서윤입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시작은 완벽했다. 대본대로 문장들이 흘러나왔고, 청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나 역시 잠시 안심했다. 괜한 걱정이었나. 학교의 역사를 짚고, 선배들의 노고를 언급하고,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문장들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문장 사이사이 적절한 호흡, 적절한 억양. 마치 오랫동안 연습한 배우의 대사 같았다. 나는 잠시 내 걱정이 지나쳤다고 생각하며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연설이 절반쯤 지났을 때, 서윤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떨림이었는데, 점점 그 간격이 좁아지고 있었다. 대본을 쥔 손끝이 하얗게 변해가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졌다. 다음 줄을 읽기 전에 숨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청중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얌전히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 간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별관에서 봤던 그 얼굴, 그 눈빛이 겹쳐졌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조금 일으켰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나는 그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서윤의 눈빛이 순간 초점을 잃는 걸 봤다. 시선이 마이크와 대본 사이를 방황했다. 마치 다음 문장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강당 안의 조명이 유난히 하얗게 그녀를 비추고 있었고, 그 빛 아래서 서윤의 얼굴이 점점 색을 잃어갔다. 그 순간, 서윤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쓰러진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튀어나갔다. 통로를 가로질러 무대 옆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는 동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옆자리 아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도, 앞줄 학부모가 몸을 비틀어 자리를 내주는 것도 다 흐릿하게 지나갔다. 오로지 무대 위에서 기울어지는 서윤의 몸만이 선명했다. 다행히 무대 옆에 서 있던 나는 서윤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 그 팔을 붙잡을 수 있었다. 손끝에 닿은 팔은 놀랄 만큼 차가웠다. 이 더운 강당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차가울 수 있는지. 나는 그 서늘함에 순간 숨이 막혔다. "괜찮으세요?" 일부러 존댓말로, 큰 목소리로 물었다. 청중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내가 급히 다가가 부축하는 모습을 자연스러운 도움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괜찮아." 서윤이 낮게 속삭였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게 보였으니까. "잠깐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재빨리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학생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서윤을 부축한 채 무대 뒤로 이동했다. 다행히 사회를 맡은 선생님이 재빨리 다음 순서로 넘어가며 상황을 수습했다. 무대 뒤로 이어지는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조명이 닿지 않는 그 짧은 통로를 지나는 동안, 서윤은 내 팔에 몸을 온전히 기대고 있었다. 그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워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대 뒤 좁은 공간에서, 서윤은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그 모습이 별관에서 봤던 그날과 겹쳐 보였다. 먼지 쌓인 소품들과 접힌 현수막이 쌓여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이며 켜져 있었고, 그 아래서 서윤의 얼굴은 더 창백해 보였다. 완벽했던 자세는 완전히 무너져, 어깨가 축 늘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물." 나는 근처에 놓인 생수병을 발견하고 급히 뚜껑을 열어 건넸다. 서윤은 손을 떨며 그것을 받아 마셨다. 물병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물을 삼키는 목울대가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미안, 갑자기..." "괜찮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 안 했어." "진짜?" "진짜." 서윤의 눈에 순간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완벽한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눈물은 뚝뚝 떨어지지도 않고, 그저 눈가에 맺힌 채 위태롭게 흔들렸다. 마치 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고 배운 사람처럼, 서윤은 눈물이 넘치지 않게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나 진짜, 너무..."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그 옆에 앉았다. 서윤은 한참을 그렇게 숨을 고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번 이래. 사람들 앞에 서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아." 목을 조르는 것 같아. 그 표현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압박을 견뎌왔던 걸까. 나는 서윤의 완벽함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매순간 스스로를 옥죄는 결과물이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 "근데 오늘은 유난히 심했어." 서윤이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처음으로 방어벽이 아닌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낯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늘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던 시선이, 이제는 흔들리며 오롯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라 잠시 숨을 죽였다. "고마워. 아까 잡아줘서."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서 시선을 돌렸다. "별거 아니었어." "별거 아니었던 게 아니야." 서윤이 단호하게 정정했다. 그 단호함이 오히려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형광등이 다시 한 번 깜박였고, 그 불빛 아래서 서윤은 조금씩 숨을 고르며 원래의 자세로 몸을 세워갔다. 완벽함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나는 이상하게도 안타까웠다. "이제 좀 나아졌어?" "응. 이제 들어가야지." 서윤은 짧게 숨을 내쉬고는 손끝으로 눈가를 슥 닦았다. 그 손짓 하나로 눈물이 다시 어딘가로 숨어들었다. 행사가 끝난 후, 서윤은 다시 완벽한 얼굴로 학생회 임원들과 마무리 정리를 했다. 아무도 그 짧은 순간의 균열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오직 나만이 그 얼굴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남들이 보는 한서윤과 내가 아는 한서윤이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간극을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이, 묘한 책임감처럼 가슴에 얹혔다. 강당을 나서는 사람들 사이로 서윤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걸어갔다. 누구도 그 애가 몇 분 전 무대 뒤에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는 걸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그 완벽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 서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서윤에게서 짧은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내일 방과 후, 별관에서 보자는 한 줄이었다. 화면을 몇 번이나 켜고 끄며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별관.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가 예전과는 달랐다. 처음 그곳에서 서윤의 균열을 목격했을 때는 우연이었지만, 이번엔 서윤이 스스로 그 자리를 지정했다. 그건 분명히 다른 의미였다. 그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나는 뭔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일, 별관에서 서윤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나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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