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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폐쇄 별관 3층, 먼지 쌓인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 햇살 아래에서 나는 방금 목격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원래 이곳엔 올 일이 없었다. 폐쇄 별관은 안전 진단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학생 출입이 금지된 지 오래였고, 나는 그저 체육 창고에서 잃어버린 실내화를 찾으려다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3층 복도 끝, 유일하게 문이 열려 있던 교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 게 잘못이었다. 그 안에서 들려온 건 숨소리였다. 거칠고 불규칙한, 사람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내는 그런 숨소리. 한서윤. 한빛고 전교 1등, 학생회 부회장, 교복조차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입는 걸로 유명한 그 애가 지금 내 앞에서 눈의 초점을 잃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미끄러져 내려앉고 있었다. 완벽하다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던 얼굴이 지금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입술은 살짝 벌어진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손끝은 힘없이 바닥을 향해 늘어져 있었다. 내가 아는 한서윤은 이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조차 등이 곧았고, 발걸음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유독 아끼는 학생이었고, 나 같은 평범한 아이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애가 지금, 아무도 없는 폐쇄 건물 구석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저기, 괜찮아?"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다가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대답은 없었다. 서윤은 그저 나를 올려다보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온 듯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방금까지의 탈진한 모습은 사라지고 그 대신 낯익은 얼음 같은 표정이 자리 잡았다. 그 전환이 너무 빨라서 나는 잠깐 내가 뭘 본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정말 방금 그게 맞나? "이도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름을 불릴 만큼 서윤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 애는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상하게 낯설었다. "너 지금 뭘 본 거야."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아무것도 안 봤어." "거짓말." 서윤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다리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그 손을 차갑게 쳐냈다. "만지지 마." 손끝에 남은 냉기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도움을 거부당한 손이 이렇게 부끄러운 건 처음이었다. 손바닥이 허공에서 잠시 머물다가 어색하게 내려갔다. "나 지금 너 걱정해서 그런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서윤은 다시 벽을 짚고 섰다. 숨소리가 여전히 거칠었지만, 표정만큼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부조화가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몸은 방금 무너질 뻔했는데 눈빛은 이미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이렇게까지 능숙한 사람을 나는 처음 봤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몸은 저렇게 무너지는데 얼굴은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나? 완벽함. 학생회 부회장. 전교 1등. 그 단어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방금 그거, 무슨 상태였던 거야?" 물어보고 나서야 내가 너무 직접적으로 캐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서윤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신경 쓸 거 없어." "쓰러지기 직전이었잖아." "쓰러지지 않았으니까 된 거야." 대화가 자꾸 겉돌았다. 서윤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서 이 자리를 벗어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발끝이 문 쪽을 향해 있었지만 다리에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이 이런 데서 이러고 있는 거, 누가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걸."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서윤이 처음으로 부탁 비슷한 말을 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 그 차이가 이상하게 낯설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서윤이 나에게, 아니 누구에게든 부탁이라는 형태로 말을 건 적이 있었을까. 늘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쪽이었지, 부탁하는 쪽은 아니었을 텐데. "말 안 할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넌 지금 상황을 몰라서 그래." 서윤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눈이 자꾸만 그쪽으로 향했다.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나한테 완벽함이 얼마나 무거운 건지." 그 말을 뱉고 서윤은 스스로도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새어 나온 걸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방금 뭔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의 표정. "방금 그 말, 진짜야?" "신경 쓰지 말라니까." 대화가 다시 벽에 부딪혔다. 나는 이 애가 왜 이렇게까지 방어적인지 이해되지 않았고, 서윤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물러서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나는 궁금해서, 서윤은 아마도 내가 뭔가를 더 캐낼까 두려워서. 창밖으로 낙엽 하나가 스치듯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정적이 잠시 그 사이를 채웠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서윤의 옆얼굴에 얇은 선을 그리고 있었고, 그 선 아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그 표정 아래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한 번 본 균열은, 다시 안 보이는 척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좋아, 안 물을게. 대신 하나만 확인하자." "뭘." "진짜로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니까, 너도 나한테 이상하게 굳지 좀 마." 서윤은 한참 나를 응시했다. 마치 내 진심을 가늠하듯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뭔가를 계산하는 듯한 서윤의 눈빛을 읽었다. 믿을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위험한 존재인가, 아닌가. 그런 계산. 결국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순간,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서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걸음걸이는 다시 완벽했다. 조금 전까지 벽에 기대어 무너져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등이 곧고 발걸음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아 방금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서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상한 긴장을 느끼게 되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갈 때, 급식실에서 우연히 시선이 부딪힐 때, 심지어 전교생 앞에서 학생회 업무를 발표하는 서윤의 완벽한 모습을 볼 때조차, 나는 그 완벽함 아래 숨겨진 균열을 자꾸 떠올렸다. 그리고 그 균열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왜 서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는지, 궁금함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며칠 뒤, 나는 그 답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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