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그녀의 그 질문 이후로, 나는 방송을 켤 때마다 [화님]의 접속 알림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화면 한 귀퉁이에 떠오르는 그 짧은 문구가, 예전에는 그저 반가운 신호였는데 이제는 심장 어딘가를 콱 움켜쥐는 손아귀처럼 느껴졌다.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다는 것 사이에서, 나는 매번 접속 알림 소리에 손끝이 먼저 얼어붙는 걸 느꼈다.
신화연은 그날부터 매일 밤 아홉 시가 되면 정확히 접속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해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홉 시가 다가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시계 쪽으로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채팅창에는 예전처럼 짧은 인사만 남겼지만, 나는 그 뒤에 숨은 시선을 이제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앎이 서로의 사이에 조용히 얹혀서, 채팅창의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이전과는 다른 무게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방송 안에서는 여전히 시청자와 스트리머로 존재했지만, 학교에서는 완전히 다른 관계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 낙차가, 생각할수록 이상하게 아득했다.
그 주 금요일, 신화연은 종례가 끝나자마자 나를 붙잡고 근처 카페로 이끌었다. 팔을 붙잡는 손길이 생각보다 힘이 세서, 나는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끌려가듯 복도를 빠져나왔다. 학교 앞 카페는 늘 학생들로 붐볐고, 우리가 함께 들어서는 순간 몇몇 시선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 그 시선들이 마치 살갗에 박히는 것 같아 나는 자꾸 고개를 숙였는데, 신화연은 그런 시선 따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 태연함이 낯설어서,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몰래 훔쳐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너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할 생각이었어?" 그녀는 음료를 받아 들며 물었다. 얼음이 컵 안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컵을 매만지다가 짧게 대답했다. "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유가 없다니."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가, 주변을 의식하며 다시 낮아졌다. 그 순간 그녀의 눈매가 살짝 우묵해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우리 아빠는 몇 달을 찾았어. 학교에 몇 번이나 연락했는데."
나는 그 물음에, 체육대회 실격과 그 뒤로 이어진 소외에 대해 설명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설명한다고 해서 지금의 관계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더 무거운 죄책감을 짊어질 것 같아 그게 더 부담스러웠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들을 도로 삼키는 게 익숙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냥,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결국 그렇게만 말했다.
신화연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살짝 좁혔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화제를 방송으로 돌렸다. "방송할 때 목소리, 원래 목소리랑 왜 이렇게 다르게 들려?" "왜곡 필터를 껴서." 나는 존댓말과 반말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대답했고, 그녀는 그걸 눈치챈 듯 픽 웃었다. 웃을 때 눈꼬리가 살짝 휘는 게, 그동안 화면 너머로 짐작만 하던 것보다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존댓말 하지 마. 어차피 나 방송에서 계속 봤잖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왜인지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조여드는 걸 느꼈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내 방송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시청자가 다름 아닌 신화연이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완전히 실감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저 화면 너머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컵을 쥔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근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늦게 켜? 아홉 시 넘어서." "그때가 조용해서." "나도 그때 시간 맞춰서 들어가는 건데."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던졌지만, 나는 그 말이 그냥 흘러가는 문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매일 밤 아홉 시, 그녀가 시간을 맞춰서 접속했다는 것. 그 사실을 직접 듣게 되자 손끝이 다시 차갑게 식었다.
카페를 나설 무렵, 우리는 우연히 같은 반 남학생 무리와 마주쳤다. 그중 하나가 신화연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다가, 내 쪽을 보고는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화연아, 저 새끼랑 뭐 하냐." 대놓고 낮춰 부르는 말투에, 나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떨궜다. 발끝만 바라보며, 익숙한 무기력이 다시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이런 순간에는 늘 그랬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시선을 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신화연이 그 말에 곧바로 날을 세웠다. "뭐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냉기는 분명했다. 남학생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무리 전체가 어색하게 흩어지는 걸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이, 나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신화연이 나를 감싸는 방식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았고, 동시에 그것이 순수한 죄책감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실린 냉기는, 단순히 남학생의 무례함에 대한 반응만은 아닌 것 같았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몇 번이나 그 장면을 되짚어보았다. 그녀의 표정, 목소리의 온도, 그리고 그 순간 나를 향했던 어떤 시선까지.
그날 밤 방송에서, 나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자꾸 끊겼다. 마이크 앞에서 말을 고르다가도, 낮에 있었던 일이 자꾸 머릿속에 끼어들어서 문장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시청자들이 [숨은게님 오늘 왜 그래요] 라고 물어와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화면 속 채팅창이 빠르게 흘러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며 말을 다시 시작하려 애썼다.
그러다 채팅창에 [화님]의 메시지가 떴다. [오늘 고마웠어요.] 나는 그 짧은 문장을 보고, 화면 너머 그녀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일지, 아니면 조금 다른 얼굴일지. 그리고 그 상상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에, 손끝이 다시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언제부터 그녀의 표정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된 걸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방송이 끝나갈 즈음, 나는 개인 메시지 알림을 확인했다. 낯선 계정에서 온 쪽지였다. [숨은게 TV 운영자님, 신화연이랑 무슨 관계세요? 알 만한 사람은 다 궁금해합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화면 속 글자들이 눈앞에서 겹쳐 보일 만큼, 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반 안의 시선들이 이미 우리 두 사람을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실감했다. 그 실감이 몰고 온 한기가, 방송을 끝낸 뒤에도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