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그날 밤, 나는 — 화연은 — 방송을 켜기 전부터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하나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낮에 그 애 책상 앞에서 던진 말은 그저 반쯤 확인, 반쯤 시비였다. 음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 조용한 남자애가 왜 그렇게 신경 쓰이는지, 그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 애가 늘 창가 쪽 자리에서 혼자 앉아 있는 걸 지나칠 때마다, 뒷목이 이상하게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야, 너 목소리 좀 특이하지 않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그 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무반응이 오히려 나를 더 신경 쓰게 만들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노트북을 켜고, [숨은게 TV]에 접속했다. 방송은 평소처럼 아홉 시에 시작됐다. 화면 속엔 늘 그렇듯 얼굴을 가린 검은 후드와 마스크, 그리고 왜곡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 방송을 몇 달째 챙겨보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제대로 설명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정체 모를 목소리가 밤마다 나를 붙잡아 앉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오늘도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곡을 걷어낸 원래 음색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말투의 습관, 그러니까 문장 끝을 살짝 흐리는 버릇이나, 웃을 때 숨을 짧게 들이켜는 방식 같은 것들이 낮에 들었던 그 애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그런 우연이 있을 리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소설 같은 우연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나는 이미 그걸 몇 번이나 눈치챘어야 했을 텐데.
방송은 게임 얘기로 흘러갔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시청자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을 달아주었고, 채팅창은 그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빠르게 올라갔다. 시청자 중 누군가가 [숨은게님, 요즘 학교는 어때요?] 라고 물었다. 그는 잠깐 침묵했다가, [그냥 그렇죠, 별일 없어요]라고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웃음기 없는 답변이 이상하게도 나를 찔렀다. 별일 없다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눌려 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으면서도, 어쩐지 그 짧은 대답이 낮에 봤던 그 애의 무표정한 얼굴과 겹쳐 보였다. 나는 채팅창에 [화님] 아이디로 로그인한 채,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화면만 바라보았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 올라가 있었지만, 어떤 글자도 눌러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무심코 카메라 각도를 바꾸는 순간, 나는 그의 손목에 있는 작은 화상 흉터를 보았다. 오른쪽 손목 안쪽, 손바닥 쪽에서 십 센티미터쯤 위. 화면이 흔들리며 스쳐 지나간 그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그 흉터의 모양까지 선명하게 눈에 새겨졌다. 나는 그 흉터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흉터를 가진 사람을 아빠가 몇 번이나 언급했었다.
[화연아, 그 학생 손목에 흉터가 있었어. 화상 자국 같은. 찾으면 꼭 알려줘.]
아빠는 청계 저수지에서 정신을 잃고 물에 빠졌던 그날, 자신을 구해준 학생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 채로 정신을 차렸다. 다만 그 팔을 붙잡던 손목에서, 오래된 화상 흉터를 느꼈다고 했다. 아빠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손이 되게 차가웠는데, 그 흉터만 유독 뜨겁게 느껴졌어. 이상하지, 화상 자국이 뜨거울 리가 없는데.] 그 말을 할 때 아빠의 눈은 늘 먼 곳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빠는 그 뒤로 몇 달 동안 학교에 연락해 은인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아빠는 그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어두워졌고, 나는 그 어두운 표정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별생각 없이 넘겼다. 세상에 그런 우연이 있을까 싶었으니까. 저수지에서 사람을 구하고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런 인물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화면 속에서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려 팔을 뻗은 그 학생의 손목에, 나는 분명히 그 흉터를 보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표현이 이렇게 문자 그대로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닫을 뻔했다가 다시 열었다. 화면 속 그는 여전히 왜곡된 목소리로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웃음소리 하나까지도 다시 뜯어 듣기 시작했다. 문장 끝을 흐리는 버릇, 숨을 짧게 들이켜는 습관, 그리고 저 흉터까지. 우연이 세 개나 겹칠 수는 없었다.
어리석었다, 이렇게 뻔한 힌트를 몇 달 동안이나 놓치고 있었던 내가. 매일 같은 반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매일 밤 같은 방송을 챙겨보면서도, 그 둘을 한 번도 연결해 보지 않았다는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묻었다. 이불 속은 후끈했지만, 정작 얼굴에 닿는 부분은 왜인지 서늘했다. 그가 우리 반, 늘 혼자 앉아 있던 그 애일 거라는 생각이 자꾸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그리고 그 확신 뒤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가 함께 따라왔다.
만약 정말 그 애가 아빠를 구한 은인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그를 어떻게 대했던가. 음케라고 불렀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고, 반 아이들이 그를 따돌리는 걸 알면서도 나서지 않았다. 급식 시간에 혼자 먹는 그 애를 보면서도, 그저 [불편하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던 내가, 이제 와서 무슨 얼굴로 그 애를 마주할 수 있을까. 손마디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나는 이불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왜 이제서야 알아챈 걸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다만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그 애를 다시 마주하면, 예전과 같은 태도로는 도저히 대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사실이 두려운지, 반가운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나는 채팅창에 처음으로 긴 글을 남겼다. [숨은게님, 손목에 그 흉터, 언제 생긴 거예요?] 그 문장을 올리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이미 엔터키를 누른 후였는데도, 나는 그 문장을 지울 방법을 찾으려는 듯 마우스를 헛되이 움직였다. 화면 속 그의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그 짧은 정지가, 마치 몇 분처럼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