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은인이 방송 속 걔였다니

2화

방송을 시작한 지 팔 개월째, 나는 이제 숨은게 TV의 채팅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면 시청자들의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고, 잠잠하다 싶으면 다들 지쳐 있다는 뜻이었다. 그 미묘한 흐름을 읽어내는 것도 어느새 나만의 재주가 되어 있었다. 구독자 수는 처음 백 명대에서 시작해 지금은 이천 명을 넘겼다. 대단한 숫자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학교에서의 텅 빈 하루를 채워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방송을 켜기 전, 나는 항상 같은 순서를 밟았다. 마이크를 점검하고, 목소리 변조기의 음역대를 확인하고, 조명을 낮춰 화면에 얼굴이 비치지 않도록 각도를 맞췄다. 그 준비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나는 [숨은게]가 되었다. 화면을 가린 채, 왜곡된 음성으로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게임을 하다가 죽으면 욕설 대신 헛웃음을 내뱉었고, 시청자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름의 진심을 담아 답했다. [숨은게님, 저 오늘 진짜 힘든 일 있었어요.] 그런 채팅이 뜨면 나는 잠깐 하던 걸 멈추고 그 얘기에 집중했다. 게임 화면은 그대로 멈춰 있고, 나는 마이크에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대답을 골랐다. 이상하게도, 학교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내가 방송에서는 누구보다 말이 많아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 그 익명성이 나에게는 갑옷이었다. [화님]은 그중에서도 유별났다. 처음 등장한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늘 방송이 시작되고 오 분 안에 접속했고, 밤 열한 시가 넘으면 [저 이제 자러 갈게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특별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저 다른 시청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웃음 이모티콘을 남기거나, 가끔 짧은 위로의 문장을 적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디가 채팅창에 뜨는 순간을 나는 늘 알아챘다. 다른 닉네임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걸리는 두 글자였다. 나는 그 아이디를 볼 때마다 왜인지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늘도 왔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서의 나는 여전히 반 아이들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지냈다. 점심시간이면 급식실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었고, 체육 시간엔 팀을 짜는 순서에서 늘 마지막까지 남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출석을 부를 때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내 이름이 불리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방송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잃어버린 목소리를 방송에서 되찾았다. 반어적이라면 반어적이었다. 얼굴을 가리고서야 비로소 나답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카메라 앞에서는 말을 더듬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문장을 삼키는 일도 없었다. 그날 방송이 끝난 뒤, 나는 침대에 누워 채팅 로그를 다시 훑어보았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하루의 온도가 다시 손끝에 만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화님]이 남긴 한마디가 눈에 밟혔다. [저는 아빠 때문에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아빠가 예전에 큰일을 겪었는데, 그 은인을 아직도 못 찾았대요.]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화면의 불빛이 어두운 방 안에서 유독 하얗게 빛났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넘겼다. 세상에 그런 사연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으면서도 그 문장이 잠깐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나는 그것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은인, 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평소와는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의 이름을 속닥거리고 있었다. 책상 사이사이로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스마트폰 화면을 서로 들이대는 모습이 보였다. [신화연 진짜 예쁘더라, 화보 봤어?] 나는 그 이름을 듣고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신화연은 우리 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패션모델 활동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실제로 SNS에는 화보 사진이 종종 올라왔다. 큰 눈, 곧은 콧대,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모으는 아이였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지금까지 단 한 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나는 그녀를 그저 먼 세계의 인물처럼, 텔레비전 화면 속 사람을 보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종례가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데, 누군가 내 책상 앞에 멈춰 섰다. 발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들려왔고, 나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고개를 들자 신화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매가 서늘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지나치게 또렷해서 마주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 시선 안에는 어떤 흥미와, 그보다 조금 더 짙은 확신이 섞여 있었다. "너, 음케 맞지."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고 나른했지만, 어딘가 낮게 깔린 확신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것 같았다. 음침한 캐릭터라는 뜻의 별명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왜인지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반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던 것과, 지금 이렇게 정면에서 확인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였다. "뭘 그렇게 봐." 신화연은 픽 웃으며 몸을 돌렸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어딘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몇 걸음 걸어가다 다시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교실 창으로 들어오던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옆얼굴을 비추었고, 나는 그 잠깐의 정지된 장면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늘 밤에도 방송해?" 나는 그 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목구멍이 바짝 말라오는 감각이 뒤늦게 따라왔다. 대체 어떻게 안 걸까.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이 얼굴과 그 목소리가 이어져 있었던 걸까.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질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신화연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교실 문을 나섰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닫히는 문 쪽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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