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도현은 슬쩍 서아를 살폈다.
밥그릇은 반쯤 남아 있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어색하게 멈춰 있었다.
서아도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타타닥.
도현의 심장이 괜히 빠르게 뛰었다.
'왜 나까지 긴장하는 거야.'
이정호가 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둘이 앞으로 잘 지내야 해. 남매 되는 거니까."
"네."
도현과 서아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 오히려 어색했다.
이정호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벌써 호흡이 척척 맞네."
강미영이 웃으며 부엌으로 사라졌다.
이정호도 곧 뒤따라갔다.
식탁 위에는 그릇 몇 개와 물컵만 남았다.
둘만 식탁에 남았다.
정적이 흘렀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거렸다.
서아가 먼저 목소리를 낮췄다.
"저기."
"……왜."
도현이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일부러 시선은 컵에 고정한 채였다.
"아까 그 일,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죠?"
도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무슨 일?"
"골목에서요. 저 도와준 거."
"그게 왜."
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왔다.
겁먹은 강아지처럼 눈치를 살피는 얼굴이었다.
"그냥…… 좀 창피해서요. 저 그렇게 당하는 거 보인 게."
도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겁먹은 토끼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괜히 목이 간질거렸다.
"안 할게. 근데 나도 부탁이 있어."
"뭔데요?"
서아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호기심이 눈빛에 스쳤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말하지 마."
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학교요?"
"……아니,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그냥 서로 오늘 얘긴 없던 걸로 하자."
말끝이 애매하게 흐려졌다.
서아는 잠시 그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도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다행이다. 더 물어봤으면 뭐라고 대답했을지.'
그때 부엌에서 강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아야, 도현아, 이리 와서 과일 좀 먹어."
두 사람은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의자 끄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식탁 앞에 다시 네 사람이 모였다.
접시 위에는 깎은 사과와 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분위기는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이정호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둘이 얘기 좀 했나 보네. 다행이다."
"네, 뭐."
도현이 애매하게 대답했다.
포크로 사과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단맛이 났지만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강미영이 서아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서아야, 앞으로 도현이 오빠라고 불러도 돼."
순간 서아의 눈이 커졌다.
도현도 굳었다.
포크를 쥔 손끝이 살짝 멈췄다.
"오, 오빠요?"
"그럼. 이제 한 가족이잖니."
강미영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서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뺨이 붉게 물들었다.
"네…… 오빠."
작게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이정호와 강미영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어머, 벌써 오빠라고 부르네."
강미영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정호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 내가 뭐랬어. 금방 친해질 거라고."
도현은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관자놀이 근처가 욱신거렸다.
'왜 이렇게 순순히 나오는 거야.'
'차라리 어색하게 굴면 나도 마음이 편할 텐데.'
어색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포크로 배 조각을 콱 찍었다.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이정호가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보기 좋다. 정말."
강미영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진작 이랬어야지."
식사가 끝난 뒤, 도현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등을 문에 대고 스르륵 미끄러져 앉았다.
바닥이 차가웠다.
그 차가움조차 지금은 반가웠다.
머릿속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하루 사이에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고백 함정.
박준혁 무리 앞에서 벌어진 그 거짓 고백.
정확히는 함정에 가까웠던 그 순간.
골목 위기.
낯선 소녀가 벽에 몰려 있던 그 장면.
숨을 헐떡이며 도망칠 곳을 찾던 눈빛.
낯선 소녀 구출.
정신을 차려보니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의붓동생이 되는 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도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말이 되나 이게.'
숨이 턱 막히는 하루였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날 밤, 도현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지이잉.
모르는 번호였다.
[저 서아예요. 엄마가 번호 알려줬어요.]
도현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답장을 눌렀다.
손끝이 액정 위에서 잠깐 머뭇거렸다.
[학교에서는 그냥 모르는 척해.]
[네?]
물음표 하나에 당황이 그대로 묻어났다.
[집에서는 오빠라고 부르고, 학교에서는 선배라고 불러. 절대 섞이면 안 돼.]
짧은 침묵 끝에 답이 왔다.
[왜요?]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눌렀다.
문장을 쓰다 지웠다.
다시 썼다.
[너 우리 학교 다니는 거 알면 다들 신기해할 거고, 나는 원래 조용히 다니는 편이라.]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거짓이었다.
왕따라는 말을 굳이 덧붙일 이유는 없었다.
굳이 그 단어를 입 밖에, 아니 손끝으로라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알겠어요, 선배.]
서아의 답장에 도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배라니. 뭔가 웃기네.'
호칭 하나로 갑자기 거리감이 생기는 게 묘했다.
집에서는 오빠, 학교에서는 선배.
같은 사람인데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서 서아와 마주쳤다.
교문 앞 인파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서아는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같은 학교, 같은 교문.
도현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설마.'
애써 아니길 바랐던 그 설마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저 앞에 박준혁 무리가 서 있었다.
교문 옆 담벼락에 기대선 채로, 낮은 목소리로 뭔가 낄낄대고 있었다.
도현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