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황금뿔사슴 등심을 손질하고 나니 벌써 오후 세 시였다.
손질이라고 해봐야 이세계 기준으로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지만, 한국 도마 위에서 몬스터 부위를 발라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칼질 한 번 잘못하면 마정석 조각이 육수에 섞인다니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살점을 저미고 있으려니, 옛날 그리핀 해체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는 동료들이 옆에서 창 들고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당 한켠에서 파리채 하나로 버티고 있다.
격세지감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캠핑장에 예약된 손님은 딱 한 팀뿐이었다.
중년 부부, 김선우 씨와 박은정 씨 부부였는데 벌써 3년째 여름마다 오는 단골이었다.
작년에는 텐트 치다가 폴대가 부러져서 내가 대신 손봐줬고, 재작년에는 계곡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짐을 옮겨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부부한테 나는 그냥 '주인집 아들' 겸 '캠핑장 잡부'로 통했다.
몬스터 요리사라는 정체는 당연히 몰랐다.
"오늘 저녁 메뉴 좀 특별하게 준비해봤어요." 나는 능청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 도현 씨! 뭔데요?" 박은정 씨가 눈을 반짝였다.
"등심구이입니다. 근데 좀... 귀한 놈이에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귀한 정도가 아니라 B급 몬스터거든요.'
속으로만 정정하고 겉으로는 시치미를 뗐다.
"귀한 거면... 혹시 한우예요?" 김선우 씨가 은근슬쩍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우보다는 조금 더 특별하다고 해두죠." 나는 대답을 살짝 흐렸다.
'한우가 아니라 던전우거든요.'
말장난 같은 속마음에 나 혼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숯불에 불을 붙이는 동안 나는 살짝 긴장했다.
이세계에서 몬스터 고기를 요리해본 적은 많았다.
오크 스튜, 그리핀 스테이크, 심지어 마왕성 지하에서 잡은 정체불명 슬라임까지 구워 먹어봤다.
그때는 동료들이 다들 배고픔에 미쳐 있어서 뭘 내놔도 환호성이었다.
'그때 기준으로 맛평가를 하면 안 되지.'
하지만 이건 한국이었고, 손님은 진짜 사람이었다.
SNS도 하고, 맛집 리뷰도 쓰고, 나름 미식 기준이 있는 현대인이었다.
'맛없으면 어쩌지.'
괜한 걱정이 들었지만, 고기를 불판에 올리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치이이익-!
기름이 튀는 소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블링이 눈처럼 곱게 퍼져 있어서 불에 닿자마자 향이 확 퍼졌다.
숯불 위에서 지방이 녹아내리며 파직파직 튀는 소리가 마치 작은 폭죽놀이 같았다.
"이야... 이게 무슨 냄새야." 김선우 씨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럼요, 이게 바로 던전 고기 냄새죠.'
나는 겉으로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강원도 산속 사냥꾼한테서 받아온 특산 사슴이에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용사 생활 10년 동안 배운 게 전투 기술만은 아니었나 보다.
'거짓말 스킬도 만렙 찍었나 보네.'
속으로 셀프 태클을 걸면서도 표정 하나 안 변했다.
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자 나는 소금 대신 준비한 특제 강된장 양념을 살짝 발랐다.
이 양념도 사실 옛날 던전 마을에서 배운 조합이었다.
거기 아주머니가 알려준 발효 소스에다 한국식 된장을 섞은 건데, 이게 은근히 궁합이 좋았다.
두릅과 함께 먹으면 딱일 것 같아서 어제 캔 두릅도 살짝 볶아 곁들였다.
접시에 담아놓고 보니 색감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이 정도면 요리 만화 표지 각인데.'
나는 혼자 뿌듯해하며 접시를 들었다.
"자, 드셔보세요." 나는 접시를 내밀었다.
박은정 씨가 먼저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질이 조심스럽다가, 입에 넣는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뭐야 이거."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어때요?" 나는 슬쩍 웃으며 물었다.
"이거... 이거 진짜 미쳤는데?" 김선우 씨도 한 점 넣더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젓가락을 든 채로 눈만 껌뻑거리는 게, 마치 시스템 오류라도 난 사람 같았다.
두 사람의 표정이 마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처럼 변했다.
'그렇지, B급 몬스터 고기가 그럴 리가.'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솔직히 재료 원가만 따지면 이 동네 삼겹살집 열 곳은 문 닫게 만들 수준이었다.
"이거 어디서 파는 거예요? 저희 서울 가서도 시켜 먹고 싶은데!" 박은정 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 이건... 여기서만 드실 수 있어요." 나는 얼른 둘러댔다.
'파는 게 아니라 밀렵이거든요.'
물론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등심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우고 안심까지 추가 주문했다.
"저기, 혹시 더 없어요?" 김선우 씨가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때, 나는 잠깐 갈등했다.
안심은 사실 다음 주 요리 실험용으로 아껴둔 부위였다.
'뭐, 손님이 왕이지.'
결국 안심은 아껴둔 것까지 다 내놨다.
"이 캠핑장, 진짜 물건이네." 김선우 씨가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년에도 여기 예약할게요. 아니, 겨울에도 올까 봐요." 박은정 씨가 덧붙였다.
'겨울엔 좀 곤란한데.'
겨울 사냥은 아직 계획에 없었지만, 일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슬쩍 다가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야, 너 요리 실력이 언제 이렇게 늘었냐?" 할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뭔가 알고 있는데 일부러 안 물어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타고났나 봐요." 나는 눙치듯 웃었다.
'그리고 재료가 좀 남달랐거든요.'
할아버지는 뭔가 미심쩍은 눈치였지만 더 캐묻진 않았다.
대신 등심 한 점을 슬쩍 집어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참 희한하게 맛있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할아버지도 미각은 살아있으시네.'
손님이 좋아하는 게 우선이니까.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그날 밤, 박은정 씨가 스마트폰으로 등심구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마치 프로 사진작가처럼 셔터를 눌러댔다.
"SNS에 올려도 되죠?" 그녀가 물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나는 흔쾌히 답했다.
'설마 이게 뭐 대단한 일 되겠어.'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 사진 한 장이 며칠 뒤 캠핑장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줄은.
부부가 텐트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마당 평상에 앉아 남은 고기 몇 점을 혼자 씹었다.
'맛있다.'
단순한 감상이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숯불이 사그라들며 은은한 온기만 남은 마당은 조용했다.
풀벌레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계곡물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유난히 많았다.
이세계에서도 밤하늘은 예뻤지만, 그때는 항상 다음 전투를 걱정하느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밤하늘 보다가 기습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립긴 한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네.'
지금은 아니었다.
그냥 배부르고 편안했다.
'이런 게 진짜 은퇴 생활이지.'
나는 씹던 고기를 삼키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평상 나무 냄새와 숯불 냄새가 뒤섞여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이런 밤이 며칠만 더 이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남은 등심 조각을 냉장고에 넣으며 다짐했다.
내일도 던전에 가보기로.
어제 봤던 그 큰 그림자가 뭔지,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나는 문득 그 그림자의 크기를 다시 떠올렸다.
'그게 정말 사슴이었을까.'
등심의 마블링만 봐도 예사 놈은 아니었는데, 그 실루엣은 훨씬 더 컸다.
'설마 상위종은 아니겠지.'
애써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이상하게 그 그림자의 잔상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뒤척이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