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닷새 후, 청하마을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마을 어귀부터 색색의 천이 걸리고, 장터에는 평소보다 세 배는 많은 좌판이 늘어섰다.
붉은색과 노란색 천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좌판마다 떡과 부침개, 삶은 옥수수 냄새가 뒤섞여 골목 안까지 퍼졌다.
올해 풍년을 기념하는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목재소 일을 쉬고, 대신 잔치 마당 설치 일을 맡아 하루 일당 삼백 문을 받기로 했다.
평소보다 백 문이 많았다.
'삼백 문이면 쌀 두 말은 사고도 남는다.'
나는 속으로 계산하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목재소에서 받는 이백 문으로는 겨우 방세와 끼니를 맞추는 정도였으니, 하루 일당이 백 문 늘어난다는 건 나에게는 제법 큰 차이였다.
"오늘은 좀 벌 수 있겠네." 묵룡이 소매 속에서 말했다.
"조용히 있어, 사람들 있을 때는." 내가 낮게 대답했다.
"알겠어, 알겠어." 묵룡이 대답했다.
"삼백 문이면 뭘 살 수 있는데?" 묵룡이 다시 물었다.
"쌀도 사고, 겨울에 이불도 하나 새로 살 수 있어." 내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불? 나도 덮어도 돼?" 묵룡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오전 내내 나는 천막을 세우고 긴 상을 나르는 일을 했다.
천막 기둥은 굵은 소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는데, 하나를 세우는 데도 세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상을 나를 때마다 어깨가 뻐근했고, 손바닥에는 새로 물집이 잡혔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물집 잡힌 손바닥보다 삼백 문이라는 숫자가 더 크게 느껴졌으니까.
일하는 사이사이,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잔치가 잘 되겠네." 옆에서 상을 나르던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네요." 내가 짧게 대답했다.
정오가 지나자 마을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북소리와 장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사탕을 손에 쥐고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벌써부터 막걸리 사발을 손에 든 채 웃고 떠들었다.
그때, 광장 어귀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쾅!"
마차 한 대가 돌부리에 걸려 크게 휘청거린 소리였다.
나는 상을 내려놓고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 칠을 한 마차였는데, 문양으로 보아 청하마을 귀족 가문의 것이 분명했다.
바퀴 하나가 완전히 부서져 마차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바퀴살 몇 개는 완전히 부러진 채 흙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마부석에서 중년 남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최일도였다.
마을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귀족 가문 소속 마부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쉰 줄에 가까운 나이에, 콧수염을 기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젠장!" 최일도가 소리쳤다.
"아씨, 죄송합니다, 바퀴가 부서졌습니다!" 그가 마차 안쪽을 향해 외쳤다.
마차 문이 조금 열리고, 안에서 젊은 여성의 손이 잠깐 보였다.
손목에 옥으로 만든 팔찌를 차고 있었다.
팔찌에 새겨진 문양이 햇빛에 반짝였다.
곧이어 시녀 하나가 마차에서 내려섰다.
소연이었다.
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곱게 땋은 머리에 비단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저고리 자락에는 은실로 수놓은 매화 무늬가 있었는데, 그게 시녀치고는 꽤 값나가는 옷이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소연은 화가 난 얼굴로 최일도를 다그쳤다.
"당장 고쳐요, 잔치에 늦으면 마님께 뭐라고 할 거예요!" 소연이 소리쳤다.
"바퀴가 아예 나갔는데 무슨 수로 고칩니까!" 최일도가 맞받아쳤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짐을 나르다 말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사람들 틈에서 몇몇은 손가락으로 마차를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거지 같은 마을 길이 이렇게 험하니 이런 일이 생기지." 소연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이 동네 길이 원래 이래요." 최일도가 맞장구쳤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요, 길 좀 고치라고." 소연이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저희가 뭐 힘이 있습니까, 마을 어른들한테 말해봐도 소용없던데요." 최일도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가 짐을 내려놓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일도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낡은 삼베옷에 흙먼지 묻은 손, 물집 잡힌 손바닥.
그의 시선이 내 옷차림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됐어, 됐어, 거지 같은 놈이 뭘 안다고." 최일도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저 사람 저번에도 목재소에서 봤어요, 그냥 막일꾼이에요." 소연이 옆에서 덧붙였다.
"거지라니, 목재소에서 일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은 좀." 내가 낮게 말했다.
"거지나 막일꾼이나 그게 그거지 뭐가 다른데." 소연이 쏘아붙였다.
나는 그 말에 잠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소매 속에서 묵룡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참아." 나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저것들 말이 너무 심하잖아." 묵룡이 속삭였다.
"저런 애들 말 한마디에 흔들리면 안 돼." 묵룡이 다시 속삭였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됐고, 저리 가서 다른 사람 불러와." 최일도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이 잔치 마당에 마차 수리할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그가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수레 만드는 목수라도 불러야 하는데, 오늘 같은 날 어디 있겠어." 최일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차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만 얇은 면사포 자락이 창문 틈으로 살짝 흔들리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앉아 있는 여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중 몇몇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저 귀족들 마차 바퀴 하나 부서졌다고 저 난리네." 누군가 말했다.
"그러게, 잔치나 얼른 시작하지." 다른 이가 대꾸했다.
"저러다 잔치 다 놓치는 거 아니야?" 또 다른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
최일도는 여전히 부서진 바퀴를 붙잡고 진땀을 뺐고, 소연은 팔짱을 낀 채 마차 주변을 서성였다.
소연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고, 최일도의 손은 자꾸 바퀴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놓기를 반복했다.
나는 부서진 바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무 축이 완전히 쪼개져 있었고, 쇠 테두리도 반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바퀴살은 여섯 개 중 네 개가 부러졌고, 남은 두 개도 금이 가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오늘 안에 고치기 힘든 상태였다.
'저 정도면 목수를 불러도 하루는 족히 걸릴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조용히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소매 속에서 묵룡이 나지막이 말했다.
"할 거야?"
나는 대답 대신, 천천히 손을 들어 부서진 바퀴를 향해 뻗었다.
그 손끝이 바퀴에 닿기 직전, 주변의 웅성거림이 순간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