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막노동하는 옥황상제

3화

그 사건은 내가 즉위한 지 사백 년째 되던 해에 일어났다. 천상계의 사백 년은 인간계로 치면 눈 깜빡할 사이나 다름없었지만, 그해 봄만큼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남해 용궁 소속 시녀 하나가 인간계로 몰래 도망친 일이 있었다. 이름은 소아라 했고, 나이는 오백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선녀였다. 천상계 법도상 시녀가 허락 없이 하계로 내려가는 건 중죄였다. 발각되면 최소 천 년의 유폐, 최악의 경우 소멸형에 처해지는 죄였다. 묵룡은 그 시녀와 오랜 친분이 있었고, 그녀가 도망치는 걸 알면서도 내게 알리지 않았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남해 근처 폭포에서 함께 놀았다는 이야기를 나는 나중에야 들었다. 그 사실이 밝혀진 건 순찰 신장들의 보고 덕분이었다. 신장 셋이 같은 날 밤, 같은 장소에서 묵룡이 소아를 배웅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보고서는 두 장에 걸쳐 자세히 적혀 있었고, 그 끝에는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묵룡이 그 일에 연루됐다는 게 확실합니까?" 형벌을 관장하는 태을진인이 내게 물었다. "확실합니다, 목격자가 셋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전 안의 다른 신선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는 이미 결론이 났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묵룡을 불러들였을 때, 그는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실실 웃으며 내 옷깃을 잡아당길 그였는데, 그날은 손끝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왜 말하지 않았어." 내가 물었다. "말했으면 넌 그 시녀를 벌했을 거잖아." 묵룡이 대답했다. "그게 규율이니까." 내가 말했다. "규율보다 사람이 먼저 아니야?" 묵룡이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났지만, 동시에 부끄러웠다. 사백 년 동안 나는 규율이라는 말 뒤에 숨어 수많은 판단을 내려왔다. 묵룡은 내가 지금껏 잊고 살던 것을 늘 대신 짚어주는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내 앞에서만 그런 말을 서슴없이 던졌다. 다른 신선들은 감히 옥황상제 앞에서 규율을 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규율은 규율이었고, 태을진인은 묵룡의 소멸을 요구했다. "칠정육욕의 화신이라 해도 규율을 어겼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태을진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소멸형은 과합니다." 내가 반박했다. "과하지 않습니다, 전례가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전례가 있다는 게 늘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다시 말했다. 태을진인은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고개를 젓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묵룡을 옥에 가둔 채 홀로 대전에 앉아 있었다. 등불 하나만 켜둔 대전은 넓고 서늘했다. 손이 떨렸다. 권력을 쥔 지 사백 년이 넘었지만, 그 권력으로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의 권좌는 그저 앉아 있으면 되는 자리였다. 그 밤은 처음으로 그 자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태을진인을 다시 불렀다. "소멸형을 취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물었다. "상제의 신력 일부를 봉인하고, 그 대가로 형벌을 감형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신력을 얼마나 잃습니까." 내가 물었다. "칠 할입니다." 그가 말했다. 칠 할이라는 숫자가 귓속에서 울렸다. ‘칠 할이면, 남는 건 삼 할뿐이야.’ ‘삼 할로 사백 년 쌓은 위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신력의 칠 할을 잃으면, 나는 한동안 다른 신선들 앞에서 위엄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권좌를 위협받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태을진인조차 감형이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태을진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제, 그것은 너무 큰 대가입니다." 그가 말했다. "압니다." 내가 대답했다.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신력이 없는 상제는 위태롭습니다." 그가 재차 말했다. "이미 생각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날 나는 대전 한가운데서 신력의 칠 할을 스스로 봉인했다. 봉인의 술식이 몸을 휘감는 순간, 뼈마디마다 불이 붙는 듯했다. 온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지나갔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는 것 같았고, 눈앞이 몇 번이나 하얗게 흐려졌다. 의식이 흐려질 정도의 통증이었지만, 나는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술식을 마무리하는 태을진인의 손끝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봉인이 끝난 뒤, 나는 옥에 갇혀 있던 묵룡을 직접 풀어주러 갔다. 옥으로 향하는 복도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벽을 짚으며 걸어야 했다. "왜 그런 짓을 했어." 묵룡이 옥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몰라,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대답했다. "신력 칠 할을 잃었으면서, 그게 말이 돼?" 묵룡이 되물었다. "네가 소멸하는 것보다 나았다." 내가 대답했다. 묵룡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옥의 창살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에는 화가 나 있는 것도, 고마워하는 것도 아닌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내가 낮게 말했다. "왜, 부끄러운 거야?" 묵룡이 물었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건 우리 둘만 아는 게 나아." 내가 대답했다. "왜 굳이 둘만 알아야 하는데." 묵룡이 다시 물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내가 대답했다. 묵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이 일은 정말로 천상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태을진인조차 그날 이후로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신력은 백 년 만에 원래대로 회복됐다. 그 백 년 동안 나는 다른 신선들 앞에서 몇 번이나 위엄을 잃을 뻔했다. 그때마다 묵룡이 슬쩍 곁에 서서 나를 대신해 언성을 높이곤 했다. 하지만 그 밤 이후, 나와 묵룡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생겼다. 서로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함께 견뎌낸 존재라는 무게였다. 다른 신선들은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묵룡은 그날 이후로 더 자주 내 곁에서 웃었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대전까지 찾아와 내 곁에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나 역시 그가 곁에 있을 때만큼은, 옥황상제가 아니라 그냥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간계로 떨어진 지금까지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