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시한부 마법사의 각성

1화

흑현과의 전쟁은 이제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청운 마법학교에 입학한 뒤로 나는 그 전쟁이 날씨 예보처럼 취급되는 걸 봤다. 오늘은 남부 결계 쪽에 흑현 잔당이 출몰했으니 외출을 자제하십시오, 그 정도. 다들 우산 챙기듯 방어 부적을 챙긴다. 처음엔 나도 그게 이상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전쟁인데, 왜 다들 저렇게 태연할까 싶었다. 그런데 3년쯤 지내다 보니 알겠더라. 매일 같은 뉴스가 나오면 그것도 결국 배경음악이 된다. 전쟁이 일상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거기에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이하준은 그 전쟁과 별로 상관없는 사람이다. 마법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마력 측정기가 나를 보고 살짝 당황하는 수준이다. 처음 입학 시험 때 측정관이 기계를 두 번이나 다시 켜본 걸 기억한다. "고장이 아닌데." 그가 중얼거렸을 때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측정관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내 손목에 기계를 갖다 댔다. 숫자는 매번 똑같이 바닥을 찍었다. 결국 그는 서류에 뭔가를 적으면서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눈빛이 뭘 뜻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안타깝다는 것도 아니고, 신기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애가 왜 여기 왔지' 하는 표정이었다. 마력이 없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 됐다. 문제는 마력이 없는 것보다 몸이 시한부라는 쪽이 더 크다는 거였는데, 이건 아무리 다독여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의사들은 병명을 설명할 때마다 표현을 바꿨다. 처음엔 '마력 역류로 인한 만성 소모성 질환'이라고 했고, 나중엔 그냥 '몸이 마력을 못 견디는 병'이라고 줄여 말했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병명이 짧아지는 게 웃겼다. 나중엔 의사가 아예 병명도 안 부르고 "그 병"이라고만 했다. 정확한 이름이 없어질수록 오히려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결국 남는 말은 하나였다. 앞으로 살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 약은 하루에 세 번. 아침, 낮, 저녁.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알람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삼키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런데도 나는 이 학교에서 어쨌든 3년째 버티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기 우리 누나가 있으니까. 이수아.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초록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면 삼 학년 짜리 흑현 하수인도 주춤한다는, 그 유명한 대적자 가문의 딸. 나와는 성이 같다는 것만 빼면 아무도 같은 부모에게서 나왔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누나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추는 걸 몇 번이나 봤다. 마치 왕족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작 그 왕족은 급식실에서 나한테 밥투정을 하는데. 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줄이 길었다. 오늘 메뉴가 뭔지도 모르면서 다들 서 있는 걸 보면 학교 밥이 그렇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일 거다. 나는 대충 트레이에 반찬을 담고 자리를 잡았다. 창가 쪽, 늘 앉는 자리였다. "하준아, 약 먹었어?" 식당에서 그녀가 트레이를 내 앞에 탁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국그릇을 앞으로 밀며 대답했다. "먹었어. 세 번이나 물어보는 거 알아?" "모르면 안 물어보지." 누나는 내 맞은편에 앉아 빵을 뜯었다. 학교 전체가 그녀를 영웅처럼 대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런 시선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한테만 관심이 있었다. 그게 나로선 고맙다기보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옆 테이블에서 일 학년 애들이 누나를 흘끔거리며 소곤대는 게 보였다. 누나는 신경도 안 썼다. 나였으면 벌써 얼굴 빨개져서 밥도 못 먹었을 텐데. 하늘이 재능을 나눠줄 때 배짱도 같이 넣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오늘 남부 결계 쪽에 또 뭐 있었다는데." "들었어. 흑현 잔당들, 요즘 뭘 찾는 것 같다고 하더라." "뭘 찾는데?" 내가 물었지만 누나는 대답 없이 빵을 씹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저 표정이 나오면 더 물어봐도 소용없다는 걸 안다. 뭔가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거거나, 아니면 정말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거거나. 둘 중 어느 쪽이든 지금 캐물어서 나올 게 없다는 건 확실했다. 그 표정을 보면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누나는 저렇게 강한데, 나는 이렇게 약한데, 왜 하늘은 한쪽에만 다 몰아줬을까.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라 그냥 국을 떠먹었다. 짰다. 식당 국은 늘 짰다. 짜다고 불평하면서도 매번 다 먹는 걸 보면 이것도 습관인가 싶다. "이 학교 급식 소금 값 아끼는 거 아냐? 아낀 돈으로 결계 강화한다는 소문 진짠가." "쓸데없는 소리." 누나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웃는 얼굴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 누나 표정이 부쩍 딱딱해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원래도 무표정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뭔가 다른 종류의 굳음이었다. 걱정이 얼굴에 눌어붙은 것 같은. "참, 두석 아저씨 봤어?" 누나 질문에 숟가락이 멈췄다. 박두석, 내 대부. 흑암감옥에 갇혀 있다가 몇 달 전에 겨우 풀려난 사람. 어릴 때부터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나를 보면 눈을 피했다. "못 봤어. 요즘 잘 안 보이더라고."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사실은 신경 쓰였다. 마지막으로 마주쳤을 때가 언제였더라. 복도 끝에서 스쳐 지나갔는데, 아저씨가 먼저 방향을 틀었다. 나를 못 본 척한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본 거였다. 그 차이를 모를 만큼 어리지 않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원래 이렇게 되는 건지, 아니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아저씨가 갇혀 있던 몇 년 동안 나는 매달 면회를 신청했었다. 절반은 거절당했고, 나머지 절반은 아저씨가 유리벽 너머에서 별말 없이 웃기만 했다. 그때는 그게 미안해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바쁘신가 보지." 누나는 대충 결론을 내리고 다시 빵을 뜯었다. 나는 그 결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내가 걱정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았다. 국이 짜다는 것, 오후에 약을 한 번 더 먹어야 한다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세계 전부였다. 식판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몇몇 애들이 누나에게 인사했다. 누나는 짧게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쳤다. 나한테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이수아의 남동생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도, 마력 없는 몸에는 다들 눈길을 오래 두지 않았다. 편했다. 가끔은 그 편함이 서운했지만. 식당을 나오며 게시판을 지나쳤다. '이번 주 흑현 관련 경계 등급 상향'이라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고, 붉은 글씨로 강조된 걸 보면 이번엔 진짜로 심각한 모양이었다. 평소엔 흘려보던 걸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읽었다. 그 아래엔 누군가 손글씨로 '결계 안이 더 위험할 수도 있음. 조심'이라고 낙서를 해놓았다. 필체가 다급했다. 삐뚤빼뚤한 글자에 마지막 획은 종이를 뚫을 듯이 눌러 쓴 흔적이 있었다. 누가 이런 장난을 치나 싶었는데, 그 낙서를 본 순간 이상하게 등줄기가 서늘했다. 손끝이 살짝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마력도 없는 몸이 왜 이런 데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뭔가를 먼저 알아채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대개는 안 좋은 일이 뒤따랐다. 그때는 그게 그냥 낙서인 줄 알았다.
첫 화입니다 목록 다음화 ›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