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배 속에서 뭔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이렇게 구체적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원래 배가 아프다는 건 위경련이나 급체를 의미하는 거였는데, 지금은 뭔가가 안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꿈틀거리는 것 같은 감각이었고, 그게 통증보다 더 무서웠다. 통증은 익숙했다. 넘어져서 까지고, 굶어서 쓰리고, 맞아서 얼얼한 통증들은 이미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지겹게 겪어봤으니까. 그런데 이건 종류가 달랐다. 마치 내 몸이 내 허락도 없이 뭔가를 하려고 준비하는 느낌, 통제권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괜찮아?" 선우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는데, 그 손길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챙길 사람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하는 생각이 통증 사이로 스쳤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살아남는 데만 급급해서 상대방 안부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배를 부여잡고 있는 것만 보고도 저렇게 얼굴이 굳는다. 사람이 변하는 데는 재난 하나면 충분한 건가.
"뭔가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고, 선우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굳었다. 그도 뭔가 짐작하는 게 있는 얼굴이었는데, 정확히 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 자식, 뭔가 알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거잖아.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잦아들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갑자기 아랫배 쪽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지는 감각이 났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이런 게 무섭다는 감정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정도로 명확하게 몸이 반응했다. 나는 놀라서 옷 사이로 손을 넣었는데, 손끝에 닿은 건 미끈하고 단단한 표면이었다.
"뭐야, 이게." 나는 그것을 꺼내들었고, 손바닥 위에 놓인 물체를 본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게 뭔지 실감했다. 반투명한 회백색 껍질에 은은한 광택이 도는 알이었다. 크기는 주먹만 했고, 표면에 얇은 실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마치 내 손금과 비슷한 패턴이라는 걸 알아채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진짜 내 걸까. 아니 내 것이라는 표현이 맞는 건가. 내가 만든 건가, 아니면 그냥 내 몸에서 튀어나온 건가. 질문이 질문을 낳으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거, 알이야?" 나는 물었지만 사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내 몸에서 알이 나왔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자꾸 되묻는 거였다. 이걸 인정하는 순간 뭔가 되돌릴 수 없는 문턱을 넘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웅얼거렸다. 알이야, 이게, 진짜, 알이라고.
선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알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 침묵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야, 말을 해봐. 이게 뭔지 알아?" 나는 목소리를 높였고, 선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나방형 개체는, 원래 세계에서라면 번식 방식이... 아니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그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우리 몸이 그 종의 본능까지 그대로 가져온 거라면, 지금 상황이 설명이 되잖아."
설명이 되긴 개뻘, 나는 속으로 욕이 나왔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었지만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 몸이 곤충의 몸이 됐다는 건 이미 받아들였는데, 그 몸이 알을 낳는다는 것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나는 트랜스 여성이었다. 원래 세계에서도 내 몸과 정체성 사이의 거리 때문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싸워왔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서류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매번 몸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을 견뎌왔는데, 이제는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른 번식 방식을 가진 몸이 되어버린 거였다.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판단이 안 됐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익숙한 배신감과, 그 몸이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낯선 경이로움이 동시에 뱃속에서 뒤섞이고 있었으니까.
"버릴 거야?" 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그 질문에 당황해서 알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뭐?" "아니, 그게, 상황이 상황이니까. 우리도 살기 힘든 판에 이걸 챙길 여력이 있을까 해서." 그 목소리에는 다그침보다는 걱정이 더 짙게 깔려 있었지만,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결국 버리라는 말을 하는 거잖아.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는 맞았다. 지금 우리는 우리 목숨도 건사하기 힘든 처지였고, 알 하나를 더 지킨다는 건 위험 요소를 하나 더 늘리는 것과 같았다. 짐이 하나 더 생기는 거고, 우는 소리를 낼지도 모르고, 우리 위치를 노출시킬 수도 있고. 머릿속으로는 온갖 계산이 다 돌아갔다.
그런데도 나는 그 알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온기가, 이상하게도 내 것이라는 감각을 강하게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마치 심장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달까.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 알을 놓으면 안 된다고, 뭔가가 내 안에서 자꾸 신호를 보냈다.
"몰라, 일단은." 나는 알을 옷 안쪽 갑각과 피부 사이 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놀랍게도 그 틈이 마치 원래부터 알을 넣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알맹이를 딱 맞게 감쌌는데, 그 사실이 더 소름 돋았다. 내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이 역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잖아. 언제부터.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얼마나 더 많은 걸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내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계획을 몸이 혼자 세우고 있다는 게,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가장 무서운 순간 중 하나였다.
"일단은 데리고 다니고, 나중에 생각할게." 나는 결론을 내렸는데, 사실 결론이라기보다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의 두려움을 미루는 거였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기엔 너무 벅찼다. 나중의 나에게 떠넘기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선우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표정에는 안도와 걱정이 반씩 섞여 있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가 짧게 말했다. 그 담백한 수긍이 오히려 고마웠다. 선택을 존중해준다는 게 이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손바닥 크기의 판이 다시 허공에 떠올랐고, 우리는 동시에 그걸 쳐다봤다.
[개체 상태 변화 감지] [보호 대상 1 등록: 미부화 알] [보호자 지정: 하린]
"보호자 지정이라니, 내가 원한 적도 없는데."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 시스템이란 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역할을 배정해버리는 게 어이가 없었는데, 동시에 그 문구를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뭔가 지켜야 할 게 생겼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까지 방향 없이 떠돌던 나에게 하나의 목표를 던져준 셈이었으니까.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살아야 하는 부담이 하나 더 늘었다고 해야 할까. 둘 다인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선우가 나뭇가지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그래, 계획이 다 무너지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애초에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우리 인생에 계획이란 단어는 사치였다. 그냥 매 순간 닥친 걸 처리하면서 사는 거지, 무슨 장기적인 청사진이 있겠나. 나는 알이 있는 부위를 손으로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기가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것 같았는데, 그게 착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뭘 찾아야 해." 나는 물었고, 선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안전한 곳. 그리고 저 알이 뭘 필요로 하는지."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알이 부화하는 데 며칠이 걸리는지, 온도가 얼마나 맞아야 하는지, 뭘 먹어야 하는지, 아니 먹이긴 해야 하는 건지도. 막막함이 다시 목을 조여왔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다시 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처음보다 훨씬 가까웠다.
나는 숨을 죽였다. 선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리는 마치 이쪽을 향해 곧게 다가오는 것처럼 들렸고, 나는 옷 속의 알을 손으로 더 세게 감쌌다. 지켜야 할 게 생긴 순간,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하나 더 늘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