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울음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우리는 한참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숲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정적이었는데,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무섭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소리가 있을 땐 최소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으니까. 조용해지면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아니 어디로 오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저거 뭔데." 선우가 낮게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움찔거렸는데, 그 순간 발밑 흙 위로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얇은 판, 유리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재질로 만들어진 그것이 허공에 둥 떠 있었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글자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여명숲 진입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실소가 나왔는데, 이게 지금 게임인가, 싶어서였다. 튜토리얼도 아니고 안내창도 아니고, 무슨 알림창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 떡하니 뜨는 건지. 근데 신기하게도 그 뻔뻔한 알림 덕분에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이럴 때 웃음이라도 안 나오면 그냥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3급 포식종 다수 서식 지역입니다. 아그림 늑대, 독가시 두더지, 붉은 이끼 거미 등의 출현이 관측됩니다. 심부에는 등급 미확인 개체가 존재합니다.]
글자가 이어졌고, 선우와 나는 그걸 나란히 읽어 내려가며 서로 눈을 마주쳤다. 눈빛만으로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 계속 있으면 죽는다는 생각.
"등급 미확인이 제일 무서운 거 아니냐." 선우가 중얼거렸는데, 그 말에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미확인이라는 건 아무도 살아서 확인해본 적이 없다는 뜻일 테니까. 아니면 확인은 했는데 그걸 전할 입이 남아 있지 않았다거나. 후자 쪽이 더 그럴듯해서 소름이 돋았다.
"근데 이거, 왜 우리한테만 보이는 거지." 내가 중얼거리자 선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근데 저 나무들 있잖아, 저것도 뭔가 좀 이상해." 그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니, 나무 줄기 표면에 희미하게 빛이 스며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 숲 자체가 뭔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판이 사라지자 선우가 다시 자기 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뾰족하게 뻗은 귀 끝을 신기하다는 듯 눌러보다가, 그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그 말에 그제서야 내가 손을 뻗어 선우의 귀를 만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저 낯선 귀의 감촉이 궁금해서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이 안 됐다. 그냥 저 뾰족한 게 눈에 들어오니까 손이 먼저 나갔다고밖에는. 사람 몸일 때는 상상도 못 할 짓인데, 지금 우리 둘 다 사람이 아니게 됐다고 갑자기 예의도 같이 증발해버린 건가.
"어, 그게, 신기해서." 나는 서둘러 손을 뗐지만 선우의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함부로 만지지 마. 씨발, 놀랐잖아." 그가 귀를 감싸며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 반응이 지나치게 과해서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뭐야, 저게 그렇게 예민한 부위였나.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저런 종족 설정을 만화나 게임에서 스치듯 봤던 것도 같고.
"미안, 몰랐어." 표면적으로는 사과했지만 속으로는 좀 오버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사람이었으면 어깨 한번 툭 치는 정도였을 텐데. 하지만 선우의 눈빛에 서린 경계심을 보니 함부로 웃어넘길 일은 아닌 듯싶었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 다른 종족의 몸이 되어버렸고, 그 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뭐가 예민하고 뭐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니, 이건 뭐 첫 만남도 아니고 재난 상황에서 처음 보는 룸메이트 규칙 정하는 꼴이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조심스레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리를 내려다보니 갑각으로 뒤덮인 종아리 아래로 발끝이 뾰족하게 갈라져 있었고, 손등의 갑각 사이로 미세한 솜털 같은 것이 돋아 있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눈 주위가 오목하게 파여 있었는데, 그 감촉이 사람의 눈매와는 확연히 달랐다. 손끝으로 더듬을 때마다 이물감이 느껴져서 자꾸 인상을 찌푸리게 됐다. 이게 내 얼굴이라니,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됐다.
나방, 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나방을 닮은 몸, 그런데 왜 갑각까지 두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방이면 나방이지 딱정벌레도 아니고 왜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건지, 이건 무슨 생물 도감에도 안 나올 조합이었다. 누가 이런 걸 설계했는지 붙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등 뒤에서 접혀 있던 것을 억지로 움직여봤다. 처음엔 뻣뻣했지만 몇 번 시도하니 서서히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고, 선우가 그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진짜 날개네." 그의 목소리에 놀람과 약간의 흥미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 날개를 완전히 펼치지도 못한 채 다시 접었는데,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몰라서였다. 이걸로 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장식인 건가. 등에 달린 짐짝처럼 무겁기만 하면 그건 진짜 재앙인데.
"펴봐, 좀 더." 선우가 다가와서 재촉했다. 그 말에 나는 다시 어깨 근처의 낯선 근육을 더듬더듬 움직여봤는데, 이번엔 조금 더 넓게 펼쳐졌다. 얇은 막 사이로 빛이 비쳐 들어오는 게 보였고, 그 무늬가 묘하게 화려해서 순간 이런 상황에도 감탄이 나왔다. 예쁘긴 한데, 지금 이게 감탄할 때인가.
"넌 뭐 할 줄 아는 거 있어?" 내가 묻자 선우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근데 뭔가, 눈에 뭐가 자꾸 뜨는 것 같아." 그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응시했는데, 그 시선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너 보니까 뭔가 숫자 같은 게 보이려다 말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게 뭔지 나도 모르는데 선우가 나를 스캔하고 있다는 뜻인가.
"뭐가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내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선우는 답답한 표정으로 자기 관자놀이를 눌렀다. "몰라, 그냥 흐릿하게 뭐가 지나가. 초점을 못 맞추겠어." 그 말에 나는 괜히 등을 곧추세웠다. 남이 내 정보를 몰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면서도, 동시에 저게 제대로 작동하면 우리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럴 때는 뭐든 쓸모 있는 쪽으로 굴려야 하니까.
그때 다시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고, 규칙적으로 땅을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을 옮기는 간격이 일정한 걸 보니 짐승 걸음이 아니라 뭔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무리 같았는데,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짐승은 배가 부르면 그냥 지나가기도 하는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건 사냥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다가온다는 뜻이니까.
나는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걸 느끼며 선우의 팔을 붙잡았고, 선우도 이번엔 뿌리치지 않았다. 아까 그렇게 화를 내던 사람이 지금은 순순히 내 손을 붙잡고 있다는 게 웃기면서도, 그만큼 지금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쪽으로." 선우가 속삭이듯 물었다.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짓만으로 도망칠 방향을 정해야 했는데, 문제는 어느 쪽이 안전한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오른쪽으로 가면 아까 그 울음소리가 났던 방향이고, 왼쪽으로 가면 숲이 더 깊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쪽이든 최악일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왼쪽." 내가 결정을 내렸지만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자신 없이 흔들렸다. 선우는 별다른 반박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 반박이 안 나온다는 건 선우도 답이 없다는 뜻이니까.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규칙적인 리듬 사이로 이따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섞였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나는 온몸이 굳는 걸 느꼈다. 이 숲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런 답도 없이 발소리는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