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마차 안은 조용했다.
바퀴가 돌바닥을 지나며 내는 규칙적인 소리만 들려왔다.
덜컹, 덜컹.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진동이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손목에 새로 감긴 천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배어 나오지 않도록 여인이 직접 감아준 것이었다.
천의 질감은 조 부인의 저택에서 본 어떤 것과도 달랐다.
결이 곱고 촘촘했다.
'이런 천으로 노예의 상처를 감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마차를 타는 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귀족과 마주 앉는 것도 낯설었다.
좌석의 가죽은 부드러웠고, 앉을 때마다 미세하게 눌리는 감촉이 있었다.
조 부인의 저택에서는 노예가 마차 안에 앉는 일이 없었다.
짐칸에 짐짝처럼 실리는 게 전부였다.
밧줄에 손목이 묶인 채, 흔들리는 나무판자 위에서 멍이 드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안락함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름이 무엇이지?"
여인이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명령이 아니라 질문의 형태를 갖춘 말투였다.
"하나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저는 이서윤이다."
그녀가 말했다.
담담한 어투였지만, 이름을 밝힌다는 행위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노예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주인은 흔치 않았다.
조 부인은 삼 년을 함께 살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저 '주인님'이라 부르라 했을 뿐이다.
'왜 이런 걸 알려주는 걸까.'
호의일까, 아니면 다른 계산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창밖으로 낯선 거리 풍경이 지나갔다.
돌로 포장된 길, 이 층으로 지어진 건물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스쳐 갔다.
청림국에서는 이런 마차를 타본 적이 없었다.
청림국은 산과 숲이 많은 나라였고, 나는 그 숲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약초를 다뤘다.
나무를 다루던 아버지의 손은 늘 톱밥 냄새가 났고, 어머니의 손끝에서는 쑥과 박하 향이 났다.
그 시절의 기억은 이제 다른 사람의 삶처럼 멀게 느껴졌다.
정복군이 마을을 태우던 날,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불타는 지붕 아래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던 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물건이 되었다.
사람에서 물건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또 무엇으로 바뀌는 걸까.'
마차가 큰 대문 앞에서 멈췄다.
대문은 조 부인의 저택보다 세 배는 높았고, 문양이 새겨진 청동 장식이 달려 있었다.
가문의 문장인 듯한 새 모양의 조각이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자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손질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사이로 자갈길이 뻗어 있었다.
나뭇가지는 하나같이 균일한 높이로 다듬어져 있었고, 잡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조 부인의 저택에는 이런 정원이 없었다.
뒷마당에 잡초만 무성했을 뿐이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물을 긷고 빨래를 널었다.
나는 그 대비가 주는 낯선 감각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곳은 도대체 얼마나 큰 곳일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쪽으로."
여인, 이서윤이 앞장서 걸었다.
걸음걸이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발끝부터 뒤꿈치까지, 일정한 속도로 자갈을 밟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나는 반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주인 뒤를 따르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것만은 몸에 새겨진 습관이었다.
시선은 항상 땅을 향하고, 발은 절대 주인보다 앞서지 않는 것.
그것이 조 부인의 저택에서 배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낯익은 냄새가 났다.
밀랍과 마른 꽃을 섞은 향이었다.
조 부인의 저택에서는 곰팡이와 지린내가 났었다.
특히 지하 창고에서는 습기와 쥐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 차이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다른 세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발소리마저 다르게 울리게 만들었다.
복도 끝에서 나이 든 여인이 걸어 나왔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그녀는 걸음걸이만으로도 이 저택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매 끝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고, 손등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허드렛일을 오래 한 손이 아니다. 관리하는 손이다.'
손톱은 짧게 정돈되어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명령을 내리는 손이지, 명령을 받는 손이 아니었다.
"아가씨."
그녀가 이서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가 정확히 절도 있었다.
"박여옥입니다."
이서윤이 나를 향해 그녀를 소개했다.
"제 유모이자 이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박여옥의 시선이 곧바로 내게 옮겨왔다.
그 눈빛은 조 부인의 시선과 완전히 달랐다.
경멸이 아니라 관찰이었다.
그녀의 눈이 내 손목의 천으로, 어깨의 찢어진 옷으로, 발목의 쇠고리 자국으로 차례차례 내려갔다.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미세하게 눈썹이 움직였다.
'이 사람은 나를 상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있다.'
낯선 감각이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누군가에게 관찰당한다는 것이 이렇게 다른 느낌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가씨, 잠시 말씀 나눠도 될까요."
박여옥이 이서윤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몇 걸음 떨어져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박여옥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보였다.
미간이 좁아지고, 입술이 얇게 다물렸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내 손목으로 향했다.
'저 흉터를 봤구나.'
부끄러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몸에 남은 흔적들을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일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지시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느껴졌다.
박여옥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눈매는 생각보다 깊었다.
"몸을 씻고 상처를 돌봐야겠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명령이 아니라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투에 익숙하지 않아 순간 대답을 놓쳤다.
걱정이 담긴 말투라니.
그런 걸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예."
겨우 대답을 짜냈다.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박여옥을 따라 걸으며,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 저택에서의 나는 무엇으로 불릴 것인가.
노예인가, 시녀인가, 그도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조 부인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안심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불러왔다.
'새로운 주인은 언제 얼굴을 바꿀까.'
지금까지의 경험이 내게 가르쳐준 결론이었다.
좋은 시작은 늘 오래가지 않았다.
친절하던 주인이 갑자기 채찍을 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조 부인도 처음에는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맞았었다.
그 기억이 지금의 온기를 자꾸만 의심하게 만들었다.
복도 끝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이서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흔한 소유욕도, 경멸도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깊고 조용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낯선 예감만이 선명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결코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