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동네에서 문제가 생긴 건 정착한 지 삼 주쯤 됐을 때였다.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평범한 척을 하며 살아보려고 애썼다. 아침이면 서아를 유치원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오후가 되면 다시 데리러 가고, 저녁에는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국을 끓이는 식이었다. 몸에 새겨진 감각들을 애써 무디게 만들려고 했고, 발소리를 죽이는 습관도, 골목 어귀마다 사각을 확인하는 습관도 최대한 억눌러 왔다. 그런데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는지, 나는 여전히 걸을 때마다 주변을 스캔하듯 훑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서아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는 길목에는 재개발이 예정된 낡은 주택가 골목이 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인적이 드물었다. 평소라면 슈퍼 앞에 앉아 부채질하던 노인들도, 골목 어귀에서 담배를 태우던 아저씨들도 그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이상한 정적이 마음에 걸려 걸음을 살짝 늦췄다. 골목 어귀에 세워진 검은 밴 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다.
나는 그 밴을 지나치며 번호판을 슬쩍 확인했는데, 인천 번호가 아니었다. 서울도 아니었고, 경기도 어디쯤의 번호로 보였는데, 그런 지역 번호판을 단 차가 이 좁고 낡은 골목까지 들어와 서 있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밴 안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나오는 걸 봤고, 나는 몸속 어딘가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이 갑자기 깨어나는 걸 느꼈다.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걸음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삼 주 동안 억지로 눌러왔던 그 예민함이 순식간에 되돌아왔다.
유치원 앞에 도착했을 때, 서아는 이미 다른 아이 두 명과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었다. 색연필을 쥐고 도화지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던 서아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잠깐이지만 골목에서 느낀 위화감을 잊어버릴 뻔했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뒤쪽에서 따라붙는 발소리 하나를 감지한 순간, 그 잠깐의 안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한 명이 아니었다.
적어도 셋이었고, 걸음의 리듬을 보니 훈련받은 자들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신경도 안 쓸 정도로 조용한 발소리였는데, 나는 그 안에서 미묘하게 통일된 박자를 읽어냈다. 셋이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좁혀오는 움직임, 그건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몸에 익힌 대로 움직이는 자들 특유의 패턴이었다.
"오빠, 왜 그래?"
서아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고, 나는 애써 웃으며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옮겼다.
"아니야, 그냥 배고파서 그래. 얼른 가서 밥 먹자."
거짓말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밥 생각이 전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골목의 구조를 그리고 있었다. 좌측에 담벼락, 우측에 낡은 철제 대문, 삼 미터 앞에 삼거리, 그리고 그 삼거리를 넘어가면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대로가 나온다는 것까지. 이런 계산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조금 우스웠다. 삼 주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걸 계산할 일이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몸은 이미 예전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골목을 두 번 꺾어 들어가는 사이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는 결국 삼거리 어귀에서 걸음을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서아를 등지고 서서, 아이의 시야를 최대한 가리는 각도를 골랐다.
남자 셋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옷차림은 평범했지만 몸의 균형과 시선의 각도를 보면 이쪽저쪽 대충 짜맞춘 위장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셔츠 아래로 튀어나온 어깨 근육의 결이며, 걸을 때마다 살짝 흔들리는 재킷 안쪽의 무게감이며, 딱 봐도 동네 아저씨 코스프레치고는 너무 노력이 부족했다.
"이도현 씨, 맞으시죠?"
가운데 선 남자가 예의 바르게 물었고, 나는 그 존댓말 안에 깔린 살짝 삐끗한 억양이 원래 이 나라 말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베트남 조직이었다.
하-. 이건 또 어디서 들은 거야.
겉으로는 담담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온갖 경우의 수를 굴리고 있었다. 정보가 새어나간 경로가 어디인지, 이들이 나 하나만 노리고 온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도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상황을 서아 앞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누구세요."
내가 시치미를 떼며 되묻자 남자는 짧게 웃었다.
"그쪽에서 뭘 아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조용히 얘기 좀 하시죠."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정중함 밑에 도사린 계산은 뻔했다. 이런 부류는 보통 처음부터 힘을 쓰지 않는다. 먼저 대화라는 명목으로 거리를 좁히고, 상대가 경계를 조금 풀면 그때 손을 쓴다. 나는 이런 수법을 셀 수도 없이 겪어봤고, 그래서 더더욱 저 웃음이 짜증스러웠다.
나는 서아의 손을 더 세게 붙잡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애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애를 데려가는 게 더 간단하겠네요, 그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손이 재킷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이미 서아를 등 뒤로 밀어붙이며 몸을 낮추고 있었다. 발끝에 힘을 주는 동시에 무게 중심을 낮췄고, 눈은 세 명의 위치와 거리를 동시에 훑고 있었다. 왼쪽 남자는 아직 손을 움직이지 않았고, 가운데 남자는 이미 재킷 속에서 뭔가를 꺼내는 중이었고, 오른쪽 남자는 그새 슬쩍 서아 쪽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오빠!"
서아의 비명이 골목을 울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 억눌러온 그 육 할이라는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후웅-
첫 번째 남자의 손목을 잡아 무기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었고, 놈이 그대로 무너지는 사이 두 번째 남자가 칼을 꺼내들었지만 그 칼이 완전히 뽑히기도 전에 나는 이미 놈의 손목을 밟아 부러뜨리고 있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놈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나왔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들을 겨를도 없이 다음 움직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캬아아악-
세 번째 남자는 도망치려 했는데,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낮춰 놈의 발목을 걷어차 넘어뜨렸고, 쓰러진 놈의 목덜미를 눌러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십 초도 되지 않았다. 세 놈이 전부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을 보자,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게 흥분 때문인지 오랜만에 몸을 제대로 쓴 여파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골목 어귀에 서 있던 사람들 - 지나가던 아주머니 두 명과 편의점에서 나오던 학생 하나 - 이 전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주머니 한 명은 장바구니를 든 채로 입을 벌리고 있었고, 학생은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하-.
나는 그 순간 이 씨발 이게 완전히 망했다는 걸 직감했다. 삼 년 넘게 숨기며 살아온 정체가 삼 주 만에, 그것도 이런 시시한 골목에서 백주대낮에 까발려진 셈이었다. 삼 초쯤 정적이 흘렀고, 그 정적 속에서 누군가 스마트폰을 들어 이쪽을 향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손쓸 방법이 없었다. 카메라 렌즈가 이쪽을 향한 걸 본 순간, 나는 다가가서 그 손을 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상황이 더 커질 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냥 이를 악물고 참았다.
서아는 내 다리를 붙잡은 채 떨고 있었고, 나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들이 마치 낙인처럼 몸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품 안의 서아는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고,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서아는 대답 대신 내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 조그만 팔의 힘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걸음을 옮기는 동안 계속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서아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재우는 과정 하나하나가 평소보다 몇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아이를 재우고 방문을 닫고 나서야 나는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방금 벌어진 일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그리고 그날 밤, 박기범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도현아, 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돌고 있다. 조회수가 벌써 십만이 넘었어."
"...영상이요?"
"네가 오늘 골목에서 세 명 처리하는 거, 누가 찍어서 올렸어. 이미 김가 쪽도 봤고, 베트남 쪽 애들도 봤을 거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숨겨온 정체가, 감춰온 힘이, 결국 이런 식으로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이었다. 박기범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이게 단순히 걱정 수준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조회수가 그렇게 많다고요? 벌써?"
"영상 제목이 뭔지 아냐. '골목에서 벌어진 실전 액션, CG 아니고 실화'. 그 밑에 댓글이 몇백 개가 달렸는데, 벌써 신상 캐는 애들도 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일이 커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아이를 지키려고 몸을 움직인 것뿐인데, 그 결과가 이렇게 크게 번질 줄은.
"그리고 하나 더."
박기범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아졌다.
"방금 강서리 쪽에서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하는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강서리라면 이 바닥에서 그냥 넘어갈 이름이 아니었다. 만나자는 말이 얼마나 무겁게 들리는지, 박기범도 알고 나도 알았다.
"뭐라고 하셨어요?"
"일단 시간은 벌어놨는데, 오래는 못 벌 거다. 도현아, 조심해라. 이게 단순히 영상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야."
전화를 끊고 나는 창밖을 내려다봤고, 어둠 속 골목 어귀에 낯선 세단 한 대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우리 집 창문을 정확히 올려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헤드라이트는 꺼져 있었지만, 운전석 쪽에서 희미하게 담배 불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 불빛이 마치 나를 향해 조준한 총구처럼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숨을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