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말단 킬러의 육아일지

3화

한주혁의 시신은 인천 중구의 한 갑산동 창고 지하에서 발견됐는데,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조직 안에서는 두 개의 이름이 돌고 있었다. 김가 조직, 그리고 베트남 계열 조직. 나는 박기범과 함께 갑산동 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경찰 통제선 안쪽에서 몇몇 낯익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한주혁 라인에 속했던 조직원들이었고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창고 앞마당엔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바람에 흔들리며 팔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이상하게 그날의 정적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중 두 명은 한주혁의 동생들이었던 한아준과 한석우였고 둘 다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시신을 실은 이송용 백이 들려 나올 때, 나는 그 안에 든 게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창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계단 모서리마다 남아 있었고, 누군가 그걸 사진으로 찍어가고 있었다. 경찰인지 조직 쪽 정보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셋 다 같은 밤에, 같은 방식으로." 박기범이 담배를 붙이며 중얼거렸는데,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그냥 항구 하나 뺏자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담배 끝이 타들어가는 속도가 유독 빨랐다. 한 번 빨아들이고 반쯤 태워버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이 인간이 지금 얼마나 초조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인천항 3번 게이트를 통과하는 화물선 항로는 황금삼각지에서 넘어오는 물량 전체의 최종 관문이었으며, 그 관문을 지키던 한씨 삼형제가 하룻밤 사이에 전부 제거됐다는 건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니라 항로 자체의 지배권을 완전히 새로 짜겠다는 선언이었다. 김가 조직 혼자서는 이 정도 규모의 동시 작전을 벌일 여력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남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베트남 조직이 뒤에서 자금과 인력을 댔다는 것. 조직 내부에서 통용되는 세력 구도는 대략 이랬다. 인천 항만권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주혁이 관리하던 3번 게이트 라인과 김가 조직이 쥐고 있던 5번 게이트 라인, 그리고 나머지는 소규모 브로커들이 눈치를 보며 끼어 있는 형태였다. 베트남 계열은 원래 물류만 대던 하청 성격의 조직이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자금력이 커지면서 슬금슬금 직접 게이트 지배권까지 넘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그 소문은 사실로 확정된 셈이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속으로 이 씨발 스케일이 왜 이렇게 커지나 싶었다. 다섯 살짜리 하나 지키다가 항구 하나가 걸린 전쟁 한복판에 서게 된 셈이었다. 창고 안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쇠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인,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였다. 나는 애써 그 냄새를 무시하며 박기범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눈은 창고 안쪽이 아니라 계속 도로 끝, 진입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누가 오는지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서아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박기범은 잠시 말없이 담배 연기를 뿜었고, 그 정적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조직이 무너졌다. 남은 애들은 대부분 김가 쪽으로 넘어갈 거고, 일부는 그냥 사라질 거다." "그럼 저희는요." "너랑 서아는... 살아있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애초에 한주혁이 죽은 순간부터 나는 그 조직의 마지막 히든카드였고, 김가나 베트남 쪽에서 보면 언젠가 자기들 목을 노릴 씨앗이었다. 조직이란 게 원래 그런 식이다. 우두머리가 사라지면 그 밑에 남은 것들은 전부 청산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다른 우두머리 밑으로 흡수된다. 어중간하게 남아 있는 놈들이 제일 위험한데, 나와 서아가 딱 그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다. 일주일 뒤, 박기범은 나와 서아를 데리고 부천 외곽의 낡은 다세대주택으로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인맥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신분 서류를 마련해 왔다. 이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트럭 한 대에 짐을 다 실을 수 있을 정도였고, 서아는 이삿짐 사이에 끼어 앉아서도 별 불만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섯 살짜리 애가 자기 삼촌들이 다 죽었다는 걸 이해하기엔 아직 어렸는지, 아니면 뭔가를 감지하고 일부러 조용히 있는 건지 나는 판단이 안 섰다. 부천 외곽의 다세대주택은 낡은 4층 건물이었고,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2층 구석방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빌라들이 늘어서 있었고,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아서 방 안이 늘 어두컴컴했다. 박기범은 이 정도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이도현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쓴다. 신분번호랑 호적, 출생 기록만 바꿨어. 서아도 이름은 그대로다." 박기범이 서류철을 내밀며 말했는데, 나는 그 안에 담긴 종이들을 훑어보며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짐작이 갔다. 호적을 만들려면 정부 전산망 어딘가에 손을 대야 했고, 그건 조직이 그동안 심어둔 인맥 중 가장 값비싼 카드 하나를 완전히 태워버렸다는 뜻이었다. 서류 속에는 새로운 출생증명서, 예방접종 기록, 심지어 초등학교 배정 관련 서류까지 들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인생처럼 자연스럽게 조작된 흔적들이었다. 종이 몇 장으로 사람 하나의 과거를 통째로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게, 나는 그 순간 이 세계가 얼마나 허술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 있는지를 새삼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요." 내가 묻자 박기범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회장님이 남긴 유일한 딸이다. 그리고 너는..." 그는 말을 멈추더니 서아가 방에서 자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회장님이 살려낸 애다. 나도 대충은 안다. 네가 어디서 온 놈인지."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기범이 내 과거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걸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 그는 뭔가를 알면서도 굳이 파고들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게 그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종류의 진실이었을지도 몰랐다. "이제부터 너는 열일곱 살, 부모 없이 이모 손에서 자란 애고, 서아는 네 사촌 여동생이다. 학교는 못 보낸다. 대신 서아는 근처 유치원에 등록시켜야 해." 박기범이 담담하게 새 삶의 규칙을 늘어놓는 동안, 나는 그가 말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모라는 존재는 이미 서류상으로 몇 년 전에 사망 처리가 되어 있어서, 내가 혼자 서아를 키우게 된 경위까지 완벽하게 설명이 가능했다. 박기범은 그 부분을 설명하면서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는 것처럼 억양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이 조작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저 혼자서 애를 키우라는 거예요?" "그래." 박기범이 짧게 답했다. "돈은 매달 조직 남은 자금에서 나갈 거고, 그건 내가 관리한다. 하지만 나는 자주 못 온다. 김가 쪽에서 나도 노리고 있어." 나는 그 순간 이 씨발 이게 무슨 꼴인지 싶었다. 스물세 명, 아니 정확히는 이제 서른 몇 명쯤 되는 사람을 죽여본 열일곱짜리가 갑자기 다섯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 등록 서류를 쓰게 됐다는 게, 어제까지 벌어졌던 일들과 너무 안 어울려서 헛웃음이 나왔다. 유치원 등록 서류에는 보호자란이 있었고, 나는 그 칸에 내 이름을 적어야 했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세는 것조차 귀찮아진 손으로, 이제는 서아의 알레르기 유무를 체크하고 예방접종 완료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이 낙차가 너무 커서 나는 잠깐 서류를 쓰다 손을 멈추고, 이게 실화인가 싶어서 방 안을 한 번 둘러봤다. 낡은 벽지, 곰팡이 자국, 그리고 옆방에서 자고 있는 다섯 살짜리 아이. 이게 지금 내 인생이라는 게 여전히 실감이 안 났다. "그리고 하나 더." 박기범이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있었다. "강서리랑 유나비라는 이름, 들어봤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인천 서쪽에서 뜨는 여자들이다. 정체가 확실치 않은데, 회장님이 살아 계실 때 몇 번 거래를 했었어. 요즘 김가 쪽 애들도 그 둘을 조심스러워한다더라." 박기범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종류의 경계심이 실려 있었다. 그는 김가 조직이나 베트남 조직 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이 두 여자 이름을 말할 때는 뭔가 다른 무게가 느껴졌다. 마치 자기도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미지의 크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둘, 어느 쪽 조직입니까." 내가 묻자 박기범은 고개를 저었다. "소속이 없다. 그게 문제야. 소속이 있으면 상대하기 쉬운데, 소속이 없는 애들은 뭘 원하는지부터 파악이 안 된다." 박기범은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고, 나는 그 이름 두 개를 머릿속에 새겨두면서도 그때는 그게 앞으로 얼마나 중요해질지 짐작조차 못 했다. 문이 닫히고 나서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옆방에서 서아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이 낡은 다세대주택 벽 너머로 어떤 눈이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잠깐 숨을 멈췄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량 헤드라이트가 벽에 그림자를 그리며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이게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 긴장인지, 나는 아직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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